일방적 통보 임기제 공모 무력화...권한남용 조례위배 논란

원희룡 민선 6기 제주도정이 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의 기관장의 전면교체를 위해 '일괄사표 후 재신임 여부 결정' 방법의 초강수를 뒀다.
이 구상은 28일 박영부 제주특별자치도 기획조정실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전격 발표됐다.
내용은 제주도개발공사, 제주에너지공사,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테크노파크,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제주신용보증재단, 제주4․3평화재단, 제주여성가족연구원 등 9개 공공기관장에 대해 29일까지 일괄 사표를 받은 후, 9월5일까지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임기가 1년 미만인 기관장은 물론 취임한지 이제 불과 8개월(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또는 4개월(현혜순 여성가족연구원장) 남짓한 기관장까지 모두 포함됐다.
제주자치도는 무조건적인 사퇴요구가 아니라 해당분야의 전문성, 경력, 능력 유무의 검증을 통해 재신임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좀 더 적합한 인사를 선임해 기관의 경쟁력을 제고해 나가고 아울러 제주발전에 기여토록 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일괄사표를 받기로 한 이유에 대한 이러한 장황한 설명은 뒤로 하더라도, 사실 산하기관장의 전면 교체는 사실 예견됐던 부분이다. 정권이 바뀌면 관행적으로 대폭이든 소폭이든 이뤄져왔고, 원희룡 지사 역시 취임 초 전면교체를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적인 측면에 있다.
그 중에서도 '왜 하필 공개적인 발표인가'라는 점은 적지않은 논란의 소지를 던졌다.
발표시점까지 해당 기관장에게는 사전 귀띔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도록 통보한 셈이다.
사표제출 대상 기관장을 특정해 공개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도록 통보한 사례는 제주 민선자치시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예전 새로운 도정 출범 초기에는 임명권자가 일부 기관장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자진사퇴를 유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자진사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예산지원 문제 등의 방법으로 압박한 사례도 있었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하지만 이번 처럼 전 기관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일괄사표를 받는 것은 전례가 없어, 관가(官街)에서도 다소 충격으로 전해지는 분위기다.
전임도정에서 '비공개'로 해 왔던 것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으나, 상당히 어줍게 다가온다.
이번 원 지사의 '일괄사표' 방침은 취임 초 살짝 언급하면서 예견됐던 일이기는 하나, 기관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퇴를 권고하는 방식은 여러 모로 보아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당사자 입장에서도 '불쾌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설령 이미 사퇴결심을 했던 당사자라 하더라도 강제적 일방적 통보와 자진 결정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개적 발표의 문제와 함께 제기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조례규정의 위배성 논란이다.
현재 각 기관장은 해당 기관의 설립 운영조례에 따라 공모절차를 통해 임명되고 있다. 이번에 사직서 제출이 통보된 공기업이나 출연.출자기관 모두 임원추천위원회, 이사회 등을 통한 임원추천 규정이 있다.
조례 마다 기관장의 임기와 역할이 명시돼 있다. 통보된 기관장 중 컨벤션센터의 경우 자체 이사회 및 주주총회를 통해 임명된다. 전임 도정에서 비공식적 방법으로 부분적 교체를 해온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도지사가 공개적으로 일방적 사직서 제출을 통보하는 것은 공모제 취지의 퇴색은 물론 권한 남용 혹은 조례를 위배하는 것 아니냐는 절차적 정당성에 논란을 불러올 개연성이 크다.
제주자치도는 공공기관 내부 규칙의 한 조항으로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기관장의 임기가 단축 혹은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해 이번 사직서 제출통보가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듯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일의 앞뒤가 잘못됐다.
사직서를 먼저 내면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재신임 여부를 묻기 위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혹은 공모를 하면서 이미 제출받은 성과수행계획서를 토대로 한 목표달성 여부에 대한 평가라도 먼저 했어야 했다.
제주자치도는 이번 기관장 일괄사표 방침은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 관행을 없애고 일과 승부를 겨루는 공직풍토를 만들어 나간다는 원칙 아래 이뤄진 하반기 정기인사와도 흐름을 맞추는 차원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도정이 바뀔 때 마다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산하기관장 인선문제와 관련해, 기관장의 임기만료를 도지사의 임기만료와 일치시키거나 도정과 연동해 설정해 도지사가 바뀔때마다 빚어질 수 있는 갈등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 관행 없애겠다는 취지와, 임기제의 제도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공개적 발표'와 '조례 위반' 논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이번 일괄사표 초강수는 정당성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