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되지 못한 4.3 상흔..."66년 세월 어떻게 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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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못한 4.3 상흔..."66년 세월 어떻게 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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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가기념일 제주4.3희생자추념식...유족들 마음은?
국가행사 격상 반겨...朴 대통령 불참 섭섭함 토로

"완전한 해결? 난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수 억원정도 챙겨주면 완전한 해결이 되나?"

66년전 그 날, 아버지를 여읜 고모씨(70.여)에게 '4.3의 완전한 해결'은 용어 자체부터 마뜩치 못했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가슴 깊게 베인 상흔은 치유되지 못했다.

3일 제66주기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찾은 4.3유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누이의 비석 앞에서 먹먹한 가슴만 움켜쥐었다.

   
3일 봉행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한 4.3유족. <헤드라인제주>
   
3일 봉행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한 4.3유족. <헤드라인제주>

"온다간다는 말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집을 나섰던 아버지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저기 밭 건너에서 나는 총소리며 동네가 울음바다가 됐던 기억은 생생한데...아버지 얼굴은 이제 생김새도 가물가물해요."

고씨에게 세 남매를 두고 일찍이 떠난 아버지는 측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모진 세월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삶이었기 때문이다.

가세가 기울어지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평생을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분이라고만 머릿속에 새겨졌다.

"멋모를 때는 아버지 원망 많이 했죠. 지금도 그 생각을 해요. 이유나 알았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무얼 하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라도 알면, 시신이라도 찾아지면 억울하지나 않지." 고씨는 차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참았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지만,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위로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하는 분들이 4.3완전한 해결인가 무슨 이야기하는데 난 그거 잘 몰라요. 유족들이요? 입밖에 4.3의 4자도 꺼내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입이 있어도 있는게 아냐. 그런데 그 세월은 어떻게 보상하겠다고? 수 억원 정도 챙겨주면 해결이 되나요?"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간 고씨. "나만 억울한 건 아닐거야. 그건 잘 알아요. 그런데 아직도,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해되지는 않아요. 먹먹하고 원통해요."

4.3당시 형님을 잃은 김모씨(79)는 살아남은 것이 죄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막막하고 기가 막히죠. 죄가 있어서 죽었다면 이해를 하겠는데, 무고한 사람을 무턱대고 죽였어요. 이름만 비슷하면 모조리 끌고 갔어요. 이름에 '병'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끌고 가 죽였죠."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시체가 너무 많으니 큰 구덩이를 파서 다시 사람을 집어넣고...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나마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은 위안이 됐다고 털어놨다. "암울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으니 유족들의 한도 어느정도 풀릴 것 같아요. 제가 죽더라도 누군가가 국가가 제사를 지내준다면 반길 일이죠."

봉안관에는 아버지의 위패를, 행방불명자 묘비에는 작은아버지의 비석을 둔 김모씨(74). 아버지를 비롯한 네 형제가 떠나고, 그의 집안에는 김씨만이 독자로 남게됐다.

   
제66주년 제주4.3희생추념식이 끝난 후 위패봉안소를 찾은 유족들.<헤드라인제주>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제66주년 제주4.3희생추념식.<헤드라인제주>
제66주년 제주4.3희생추념식에서 유족들이 헌화 분향을 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4.3행방불명인 비석이 안치된 광장에서 사방으로 연신 절을 올리던 그는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에 대해 "글자 그대로 10년 묵은 체증이 싹 가라앉는다"고 크게 반겼다.

"그동안은 위령제라고, 우리끼리 영을 위로하는 행사 정도였는데, 세월이 지나 추념식으로 통한의 세월을 보내던 영령들을 해원시켜주고,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하게 됐으니 매우 만족스럽죠."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워했다.

김씨는 "국가추념일로 지정되고 첫 행사기도 하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를 했는데, 섭섭한 기분은 듭니다. 첫 국가 행사인데 참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는데, 기대가 무너졌죠."

추념식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유가족들은 비석과 위패 앞에서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국가의례로 치러진 이날 추념시에는 1만여명이 넘는 유족들과 시민들이 모여들어 4.3원혼들의 넋을 기렸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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