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서 '멘붕'..."환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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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서 '멘붕'..."환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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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진료실 창가에서] <23>내전의 상처 아물지 않은 스리랑카를 가다

필자는 이번 2012년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7박 8일 동안 스리랑카를 다녀왔습니다. 스리랑카는 수단, 소말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처럼 세계적인 내전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났던 지역이었고, 정부군과 싸우는 타밀반군은 용맹하기로 유명해서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내전은 2009년에 종식되어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타밀 반군의 점령지는 황폐화되어서 복구가 되지 않고 있고, 난민들은 세계 각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나날들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스리랑카 영부인이 운영하는 복지재단의 요청으로 긴급 의료지원을 가게 되었으며,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간의 기록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오느라고 넉넉하게 잡아놓은 하루의 시간이 날아가 버렸다. 예정대로 하면 하루 먼저 와서 준비를 마치고 여유 있게 진료를 해야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부리나케 진료지로 가서 진료 준비를 하게 되었다. 여러 번 해외 진료를 다녀온 전문가들답게 뚝딱뚝딱하더니 잠시 후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신경과, 치과에 약국까지 갖춰지면서 미니 종합병원을 만들어냈다.

숙소에서 나가 진료할 곳까지 가는 것도 역시 군부대 차량 호위를 받으며 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근처 초등학교로, 우리 같으면 분교 크기인 곳이다. 교실도 몇 개 안 되었고, 교장실과 그 옆방 빼고 온 교실에 전기가 안 들어와서 다소 껌껌한 실내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다. 20제곱미터 조금 안 되는 교실마다 진료실을 만들고, 치과 진료실과 약국은 전기가 들어오는 방으로 배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약속된 통역원들이 오지 않고 있다. 주민들을 기다리는 우리는 요새 말로 멘붕! 원래 영어를 할 줄 아는 장교들을 통역원으로 구성했는데, 갑자기 부대 행사가 생겨서 우리 일정에 합류하지 못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근 지역에 있는 영어 가능 민간인들을 급히 모은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북부 지역의 킬리노치(Killinochchi)는 타밀족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영어를 할 줄 알면서 타밀족 언어를 쓰는 사람이어야 했다. 힘들게 왔는데 첫날부터 공치는 것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2시간 정도 기다렸더니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통역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으로 안내되고 있었다.


의료 혜택은 절실하지만 부족한 의료 인프라

지역 주민 중에서 급조된 통역원들은 대부분 은퇴한 분들로 나이가 70대 초반들이었다. 워낙에 인도나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 상태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흔히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오늘 이 분들은 그나마 학교 선생님 출신들이거나 다소 교육을 잘 받은 분들이라고 한다.

예정 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어졌더니 밖에 만들어진 대기 장소에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일을 하면서도 좀 숫자가 줄었나싶어 밖을 내다보니까 군인들이 버스를 이용해서 한 차량씩 멀리 있는 주민들까지 데리고 오다보니 대기자가 줄어들 생각을 않는다. 점심 먹을 때가 되서 엉덩이를 들고 허리를 한번 쭉 펴고 나서는 물병을 찾았다. 물병 뚜껑이 따져 있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걸로 봐서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상태였다. 

대기 중인 주민들

다른 나라로 진료 봉사를 갈 때도 그랬듯이 어디서든지 진료 받는 주민들이 많았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실제로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안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스리랑카는 개발도상국으로 아직은 의료시설이나 의사, 간호사들이 절대 부족하다. OECD 국가들의 평균 활동의사 수가 인구 1,000명당 3.2명이고, 한국이 2명(2011년) 수준으로 적은 편인데, 스리랑카는 0.5명(2006년 수치이지만, 아직도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고 함) 정도밖에 안 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01.명이었다고 하니 의사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을 것이다. 해외 진료 다닐 때마다 그렇듯이 스리랑카에서 진료 활동할 때도 환자들이 많은 것이 이해가 간다.

WHO 자료 인용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수)
우리가 와 있는 킬리노치에는 종합병원도 하나 있지만, 규모가 작을뿐더러 널리 퍼져있는 밀림이나 드문드문 산재한 마을들에서 찾아오기에는 지역적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도 의료 혜택을 못 받는 큰 이유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국가에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의료시설들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개인 병원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작은 마을에는 안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환자 분포

사전에 스리랑카와 같은 열대지역이면서 개발도상국의 보건문제나 질환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준비는 했지만, 진료를 하다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피부가 우리보다 훨씬 까매서 익숙치 않다보니 피부질환을 감별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황달로 보이기 쉬웠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알러지 비염이나 천식 환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 어루러기 환자들이 많았던 점들을 들 수 있다.

특히 천식 환자들이 많다는 것은 진료를 하면서 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알러지 비염과 천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무 많았다. 요즘 우스개 소리로 “많아도 너무 많아.” 그러다보니 진료 시작한 첫날인데도 기관지 확장제나 그와 관련된 약들이 너무 많이 소모됐다고 약사님들이 급히 연락을 돌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원래 이 지역이 선진국처럼 점점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아지곤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전염병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기생충으로 인한 피부병이나 간염같은 것들을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왔는데, 전혀 예상치 않은 알러지 질환이 많을 줄이야.....

숙소 근처에서 반딧불이가 보일 정도로 공기가 맑을 텐데,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 보면 이 나라가 밀림이 많고 나무나 풀이 많아서 꽃가루 알러지 때문 아닐까 한다. 돌아가서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어루러기는 영어 이름으로 Tinea versicolor라고 하는데, 가슴이나 겨드랑이 주변에 얼룩얼룩 반점들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발에 생기는 무좀과 같은 진균들이 원인으로 몸에 땀이 많이 나는 것 때문일 것 같다.

뜻하지 않은 일들

점심때가 지나서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 보았다. 이럴 때마다 한 번씩 사고가 나서 응급 수술을 하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했다.

“수처 세트(suture set), 빨리,”
“거즈부터 가져와요, 피를 너무 흘려.”

다친 사람은 마을 주민이 아니라 정00 약사였다. 정약사는 약이 떨어질 때마다 급히 진료실을 돌며 처방을 조절하느라고 뛰어다니다가 처마 끝에 달려있던 쇳덩이에 부딪혀서 이마가 찢어졌던 것이다. 땅바닥에 피를 쏟고 있는 것을 빨리 침대에 눕히고, 지혈을 시키면서 정형외과 선생이 봉합을 했다. 7바늘을 꿰맸으니 많이 찢어진 셈이다.

오후 진료를 거의 마치고, 약국을 지나면서 창살 사이로 보니까 누워 있어야 할 정약사는 땀을 삘삘 흘리면서 약 봉투에 열심히 약을 담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지러울 테니까 좀 누워있어야 해요.”
“어휴, 죄송합니다. 다들 바쁜데, 일을 만들어서.....”

마음씨가 착한 건지, 미련곰탱이인지..... 어휴.....

약사의 부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더니, 잠시 후에는 일부 약들이 너무 모자라다고 급한 전갈을 해왔다. 생각지도 못한 질환들이 집중적으로 많다보니 기관지 계통 약들이나 알러지 관련 약들이 일찍 동이 나기 시작해서 우리는 관련된 질환들에서 처방 일수를 줄여야 했다. 그뿐 아니라 약을 담아 줄 약봉지도 모자랐다. 오늘까지야 그렇다 치고 내일부터는.....? 약이 없으면 고생 끝에 온 우리의 활동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진료를 마친 후 걱정하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나는 약사 두 분, 봉사팀 스텝과 함께 스리랑카 안내인에게 부탁해서 약을 구하러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갔다. 킬리노치 시내라고는 우리나라 같으면 군 단위 정도도 안 되는 작은 곳이기는 해도 많은 분량의 약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거리는 이미 어두워졌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근처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구하는 것.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결국 스리랑카 안내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약이 떨어졌다고 말하자니 창피하기도 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실망할까봐 얘기를 안 했던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현지 안내인 닐 미니(Nil Mini Cabral)씨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옆에서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밝아지는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결국 스리랑카 보건복지부에서 약을 구해서 보내주기로 했단다. 어떻게 그 늦은 저녁에 그렇게 빨리 약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스리랑카로 오게 된 것부터 연관이 있었다. 스리랑카 대통령은 빈부의 차가 심한 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여러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었다. 영부인은 복지와 의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와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신경을 쓰는 일이 있는데, ‘칼튼 수어 우다나(Calton Suwa Udana, Calton Social Health Service)’라는 조직으로 영부인이 직접 운영하는 국민건강 프로그램 운영 조직이다.

우리가 스리랑카로 오게 된 것도 영부인이 운영하는 조직과 우리 봉사단체가 연결되어 급히 팀을 꾸려서 오게 됐는데, 영부인이 각별히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신변 보장에서부터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이 벌어지자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릴 수가 있었다. 우리는 킬리노치의 어두운 거리에서 환호를 질렀고, 밝은 얼굴을 하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에는 약을 구하고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약이 준비됐다는 기쁨에 늦게까지 약봉지를 접으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헤드라인제주>

고병수 365일의원 원장 그는...

   
고병수 원장.<헤드라인제주>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시 '탑동365일의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과 '구로건강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온국민주치의제도'가 있고,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진료실 창가에서> 칼럼은 영국 의료제도와 국내 영리병원 도입 논란과 관련한 주제에서부터 직접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점 등을 글로 풀어내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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