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업체 관계자들과 실랑이...3시간만에 무사히 마무리
최근 출입금지 논란이 일고 있는 강정 구럼비 해안에서 제주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이하 군사기지 범대위)는 16일 오전 11시 50분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서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군사기지 범대위 소속 단체의 대표자들인 배기철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를 비롯해 김정렬 서귀포 시민연대 대표, 오영덕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 김정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제주연맹 회장, 김동도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등 6명이 참여했다.
이들 대표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적인 구럼비 해안 공사를 즉각 중단할 것과 함께 제주도가 해군에 공유수면 공사 중지를 명령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갖기는 했지만 해군기지 공사현장으로 인해 육상 진입로가 모두 막혀있어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오전 10시 강정포구로 집결한 이들은 구명동의를 입은 후 카약을 타고 바닷길을 이용해 구럼비 해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평소 카약을 타본 경험이 없는데다 해안가 방향으로 바람까지 불면서 파도를 헤치며 포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거기다 카약과 함께 운영할 예정이었던 고무보트의 엔진이 고장나면서 당초 진입키로 했던 인원수마저 줄여야 했다.
당시 현장에 나와 있던 서귀포해경 관계자는 "오늘 바람이 불고 있어 카약을 타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반드시 구명동의를 착용할 것을 권유했으나 이들의 구럼비행을 막지는 않았다.
노를 저어 앞으로 가면 파도에 다시 밀리는 악전고투 끝에 오전 11시 30분에야 겨우 도착한 구럼비 해안. 지난해 9월 2일 중덕 삼거리에서 강정해안가로 진입하는 도로에 펜스가 설치된 후 5개월만에 다시 찾은 구럼비의 모습에 대표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주변에는 해군기지 공사업체 관계자 20여명과 이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10여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구럼비 해안과 공사현장의 경계에 서서 대표자들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기자회견은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돌멩이 하나, 꽃 한송이도 건드리지 마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시작한 대표자들은 불법적인 구럼비 해안에 대한 공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대표자들은 "구럼비 해안은 수천년동안 제주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이 담긴 신성한 곳으로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닌 우리 모두의 공간이며, 우리 후손들의 공간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지금 해군기지 건설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는 해군의 점령지가 되어버렸다"고 비난했다.
또 "공유수면의 사용과 매립에 대한 허가권과 더불어 관리권이 있는 제주도가 자기 임무를 충실히 했는지 대답해야 한다"며 "7대경관 행사에 정신이 팔려 그보다 더 소중한 제주의 자연경관이 파괴되고 있고, 다양한 생물종들이 절멸위기에 처해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지금 구럼비 해안과 멧부리 해안이 파괴된다면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면서 "결국 두고두고 제주도민의 수치로, 제주도정의 무능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멧부리 해안 공사와 관련해 제주도정의 태도를 강하게 규탄했다.
"위법한 행위를 저지르는 해군을 충분히 저지하고 막을 권한이 있음에도 책임을 방기하고 오히려 도움을 준 제주도정에 더 큰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 대표자들은 "해군과 공사업체가 자기 멋대로 공유수면에 철조망을 치고 아무런 협의없이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도 제주도는 뒷짐만 질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들 대표자들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정부가 정부답지 못하고, 해군이 해군답지 못하고, 경찰이 경찰답지 못하고, 제주도가 특별자치도 답지 못한 불행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정부와 해군은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제주도는 도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것이며, 경찰은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해군기지 공사의 즉각적인 중단과 함께 제주도가 공우수면 공사중단을 명령할 것과 경찰이 공권력 남용을 멈추고, 강정주민과 활동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현재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제주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고, 제주지역 총선 후보자들이 해군기지 공사의 중단과 원점재검토를 공약화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자들은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기원하는 큰절을 하며 구럼비 바위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자들은 "우리는 불법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해군기지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가로질러 공사장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에 대표자들은 현수막을 앞에 잡고 6명이 나란히 서서 공사현장 정문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표자들이 구럼비 해안을 벗어나는 순간 공사업체 관계자들은 "여기는 제주해군기지 공사현장이기 때문에 지나갈 수 없다"면서 앞을 가로 막았고 결국 실랑이가 벌어졌다.
공사업체 관계자들에게 막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 대표자들은 "왜 길을 막느냐. 우리는 공사를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길을 따라 나가려는 것 뿐이다"고 항의했으나 공사업체 관계자들은 "공사현장은 위험하기 때문에 걸어갈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을 본 경찰이 중재에 나섰다. 현장에 나와있던 서귀포경찰서 정보계장은 "현재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무단침입했다"면서 "무단침입에 따른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받으면 차량을 이용해 정문까지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표자들은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걸어서 나가겠다"며 버텼고, 결국 정문 앞에서 범칙금 고지서를 받부받기로 하고 그대로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공사업체 관계자 일부가 대표자들을 막아서기도 했지만 경찰은 이미 고지서 발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만큼 뒤로 물러선 상태였고, 결국 공사업체 관계자들도 길을 열어줘야 했다.
대표자들이 공사현장 정문 앞에 도착한 순간 경찰은 도주를 우려한 것인지 전의경 대원 100여명을 동원해 앞뒤로 길을 막아선 후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기 시작했다. 배기철 대표를 비롯해 5명의 대표자들은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았지만 강정임 여성농민회 제주연맹 회장은 끝까지 고지서 발부를 거부했다.
결국 경찰은 배기철 대표를 비롯한 5명에게만 고지서를 발부한 후 공사현장 밖으로 대표자들을 내보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정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이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 박수로 맞이했다.
한편, 배기철 대표는 밖에서 기다리던 마을주민들에게 "오늘 우리는 무사히 구럼비 해안에 다녀왔다. 앞으로 이 구럼비 해안을 돌려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