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인기, '명량'은 대중과 정치인에게 무엇을 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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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인기, '명량'은 대중과 정치인에게 무엇을 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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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 (4) 영화 '명량'
영화 '명량'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최근 무서운 기세로 흥행몰이 중인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 역대 최고 일일 스코어, 최단 기간 100만 돌파 등에 이어, 개봉 10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최단 기간 천만 관객 돌파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전례 없는 신기록이다. ‘명량’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으는 요인은 무엇일까?

2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연출한 화려한 해상 전투신, 주연 최민식을 비롯해 쟁쟁한 배우들이 펼치는 열연, 뿌리 깊은 반일감정 등. 많은 흥행 요소를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극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에 있다.

영화 ‘명량’은 조선 중기 정유재란 당시 명장 이순신이 열약한 규모의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적의 침입에 맞서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 이순신은 실존인물이면서도 이상적인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지략으로 기적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리 녹록치많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명량’의 흥행을,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대중들의 바람이 시국과 맞물려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이순신이 보여주는 탁월한 전략가적 면모와 함께, 백성을 ‘천행’으로 여기며 죽음도 불사르고 싸우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영화 '명량'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위대한 지도자라면 우선적으로 지녀야 할 것이 뛰어난 안목이다. 단 12척의 배를 보유한 조선 수군이 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일본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의 지략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좁은 지형, 빠르고 급변하는 조류, 단단한 배와 대포라는 흩어져 있던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 최적의 전략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좁은 지형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조류를 이용해 일본군을 옭아맨 뒤 충파로 돌파하면서 상상도 못한 대승을 거둔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성적 계산뿐 아니라 사람들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내재한 원초적인 감정들까지도 고려했다. 이순신은 인간이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역이용해서 전술을 짰다. 위기의 상황에서 혈혈단신으로 나서 죽을 각오로 싸우는 리더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전의를 끓게 한다. 두려움이 용기로 전환되면서 부하와 민중들의 열정은 이전의 배가 되어 나타났다.

대중적 정치인들은 이 점을 잘 간파하고 이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파시즘이다. 멀게는 히틀러가 그랬고, 가까이는 박정희가 그랬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대중 동원’의 전략이란 종종 가치 판단의 영역을 배제한다. 이순신이 아무리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던들, 그 목적이 민중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민중들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는 오늘날까지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 속 이순신에게 진정으로 감동하는 것은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백성이 곧 충(忠)이요 천행(天幸)’이라는 메시지가 그를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민중을 이용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해 나섰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파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백성을 지키려는 사람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의 진정성을 더는 의심하지 못한다.

영화 '명량'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오늘날 위정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이순신과는 놀랍도록 대조적이다.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은커녕 최소한의 신뢰도 주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매번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도민을 위해, 하고 말하지만 자신의 것은 단 하나도 놓지 못하면서 내뱉는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 의해 비롯되는 정치적 혐오감은 나아가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오고, 난세를 타파할 단 하나의 위대한 지도자만을 갈망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있다. 곧 영화 ‘명량’의 흥행은 위대한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들의 갈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아직도 메시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이면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단 한 명이었다. 이순신조차도 선조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지 않았다면 나설 수 없었다. 반면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민중들이다. 그것이 실제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리더를 임명하고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위대한 지도자가 출현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 진정한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시대에, 지도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나올 만한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나온다.

명량을 본 관객들 전부가 뜻을 갖고 투표만 해도, 어쩌면 이순신 같은 지도자의 출현은 지금보단 쉬워질 수도 있는 일이다. 천만 관객을 앞둔 명량의 인기는, 정치에 나서는 이들,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들 모두에게 고민해볼 여지를 남긴다. <헤드라인제주>

영화 '명량' 공식포스터. <헤드라인제주>

<김소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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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행 2014-08-10 11:32:28 | 175.***.***.23
김소영 기자님 명량 영화평 대담한 필력에또한번 감탄합니다

진드르 2014-08-08 11:30:20 | 14.***.***.232
이 영화는 얼마나 사람들이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꺼라고 당연히 믿고 지내던 국민들이 이번 세월호사건에서 우리 정부이 무능을 다 확인해버렸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들을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출현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와 맞물리면서 이 영화가 인기몰이 중인데 우리 스스로 안전한 국가시스템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