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감독 조엘 코엔·에단 코엘, 2014)은 1960년대 한 포크싱어의 기구한 삶을 다룬 작품이다. 당대 뮤지션 데이브 반 롱크의 이야기를 일부 차용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전기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 역)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가 걷는 인생길은 화려하지도, 고결하지도 않다. 영화는 ‘떠돌이 삶’을 살아가는 인간 실존을 지루할 정도로 현실적이게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어떤 울림을 담고 있다. 왜일까. ‘인사이드 르윈’, 제목 안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르윈이 걸어가는 여정에 함께 동행하게 된다.
영화는 르윈이 뉴욕의 낡은 가스등 카페에서 ‘Hang me oh hang me’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카페에서 포크송을 부르며 받은 푼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집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뮤지션이다. 성공하기 위해 길을 떠난 르윈은 조력자가 되어줄 버드 그로스먼을 만나고자 힘겹게 시카고의 ‘뿔의 문’에 당도하지만, 솔로는 힘들겠다는 답변만 받고 허무하게 되돌아온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녹음 세션에 참여한 곡이 후일 큰 성공을 거둘 것을 모르고서, 저작권료를 포기하고 소액의 현금을 수령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르윈이 걷는 7일간의 여정은 아무런 수확 없이 허무하게 끝맺는다.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마침내 음악 인생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선원이 되길 결심하지만, 항해사 자격증을 버렸기에 그마저도 이루지 못한다. 실로 답답하고 암울한 인생이다.
그런 그를 내내 따라다니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다. 감독이 “영화에 플롯이 없기에 집어넣었다”는 고양이는 영화 속에서 무수히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르윈과 마찬가지로 길을 떠나면서도 그와 달리 돌아갈 곳이 있는, 르윈의 지향점이자 끊임없이 대조를 이루는 표상이다. 르윈이 음악을 포기하려던 그때, 사라졌던 골파인 교수 댁의 고양이는 제 발로 다시 집에 돌아온다. 결정적으로 르윈은 그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스’(오뒷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임을 알게 된다.
그 옛날, 트로이 원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향길에 올랐던 그리스의 영웅은 왜 온갖 시련 속에서 오랫동안 떠돌아 다녀야 했나. 영화는 르윈의 삶을 <오뒷세이아> 초반 “그 남자”라고 지칭되며 아직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했던 오뒷세우스의 모습에 겹쳐놓는다. 르윈은 음악을 통해 세간의 인정을 받길 원했지만 사람들은 르윈의 이름을 고양이의 이름으로, ‘루엔’ 따위로 잘못 알아들었고, 힘들게 도착한 시카고에서는 자신의 음악이 아닌 극장에서 관객을 위한 노래를 부를 것을 요구받았다. 이처럼 르윈에게 닥치는 시련은 계속해서 자기 정체성을 의심받는 과정의 연속이다.
고난 끝에 오뒷세우스는 마침내 귀향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세상에서 명성을 얻었다. 르윈 역시 먼 길 돌아 제자리에 왔지만, 오뒷세우스와 달리 그의 삶은 여전히 기구하다. 르윈의 귀착점은 결국 처음의 낡은 가스등 카페 무대 위.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 역시 겹친다. “포크송이 거기서 거기”라고 가볍게 말하는 장면도, 노래를 마친 뒤 전날 르윈의 모욕을 받은 여가수의 남편이 찾아와 그를 폭행하는 장면도 같다. 그럼에도 온전히 같은 자리는 아니다. 이제 그는 처음과 달리, 떠나는 여가수 남편의 등에 대고 “또 봅시다” 하고 인사한다. 듀엣하던 친구가 죽은 뒤 부를 수 없었던 ‘If we had wing(Fare thee well)’을 비로소 ‘we’에서 ‘I’로 바꿔 부를 수 있게 됐다. 고된 여정을 거쳐 마침내 르윈은 ‘포크싱어의 삶’을 자기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인사이드 르윈’, 자기 내면으로 철저하게 파고든 노래는 그가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정체성이 됐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오뒷세이아>의 또 다른 변주다.
우리는 살아가는 한 늘 떠돌이일 수밖에 없다. 르윈이 부르는 노래들은 그의 내면을 노래하는 동시에, 삶의 길 위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이들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의 노래는 한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걸어가는 삶의 궤적을 덤덤히 좇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련을 헤쳐 나가 마침내 자기 길을 찾는 이를 보면서 감동을 느낀다. 이는 저 먼 <오뒷세이아>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경외일 것이다. 르윈의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헤드라인제주>
<김소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