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시대, 화려하지만 덧없는 우리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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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시대, 화려하지만 덧없는 우리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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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 (1)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공식사이트 캡처. <헤드라인제주>

가볍고 또 가벼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허망하다. 연속되지 않고 단선적으로 끊어진 시간 속에서, 삶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지 못하고 순간순간에 머문다. 근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 안에서 일회적인 쾌락만을 만끽한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들에는 무엇이 남는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우리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감독 웨스 앤더슨, 2014)은 가상의 세계 ‘주브로브카 공화국’ 안에서 중심 이야기가 전개되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의 영화다. 쇠락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방문한 작가가 노신사 제로(토리 레볼로리 역)를 만나면서, 그가 30여 년 전 호텔의 로비보이로 일할 당시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역)와 함께 겪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듣게 된다. 영화 속 주 배경이 되는 ‘주브로브카 공화국’은 사실상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다. 그러나 군인들의 강경한 진압 장면,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콧수염과 복장 등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의 시대상을 연상시킨다. 클림트, 에곤 쉴레, 브론지노 등 당대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들도 곳곳에 숨어 있어 허구와 현실을 맞닿게 한다.

제로가 당대 상황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27년, 평소 지배인 구스타브와 내연관계에 있던 마담 D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방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졸지에 D의 유언에 따라 당대 최고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물려받게 된 구스타브는 마담의 아들 드미트리에 의해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된다. 사실 이는 어머니의 유산과 함께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까지도 차지하기 위해 드미트리가 꾸민 계략이다. 누명을 벗기 위해 구스타프는 그의 충실한 로비보이였던 이민자 출신 제로와 함께 쫓고 쫓기는 모험담을 펼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공식사이트 캡처. <헤드라인제주>

두 사람이 함께 펼치는 모험담은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구스타브가 감옥을 빠져 나가는 과정,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도망 과정, 드미트리가 고용한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 역)과 벌이는 스키 경기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 등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져 헛웃음을 자아낸다. 배경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분위기 역시 영화의 비현실성에 일조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놀랍도록 화려하며, 지배인 구스타브 역시 외적인 것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다. 생사를 오가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그는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향수를 뿌리는 희극을 연출한다.

심지어 영화는 죽음마저도 너무나 가볍게 다룬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야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킬러를 고용해 마담 D의 고문 변호사, 집사 서지X, 심지어 그의 여동생까지 가차 없이 죽인다. 관객들은 그들의 죽음을 보며 어떤 숙연한 감정을 가질 겨를이 없다. 2초 남짓의 묵념이면 그들의 죽음은 어렵지 않게 잊혀진다. 마치 컴퓨터 게임 속에서 클릭 한 번이면 쓰러지는 개체들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희극적 요소가 될 뿐이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비현실적인 전개 속에서 우리들은 쉽게 영화를 보며 웃고 즐긴다. 그러나 분명 어딘가 찝찝한 구석은 남아 있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는 허구인 동시에,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환상 속에 사로잡힌 채 개인에 대한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모습을 지금도 우리는 발견한다. 물질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정신적인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 심지어 가장 끈끈해야 할 관계인 가족 관계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아들을 믿지 못해 유언장을 숨겼고, 그의 아들 드미트리는 돈을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다. 영화는 교양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의 교양인 츠바이크는 죽음과 폭력, 비교양의 만연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살했다.

여전히 우리는 그런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돈과 성공을 최상의 가치로 간주하며, 성공에 방해되는 것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혹하다. 정신적인 것이 끊어진 삶은 오직 일회적인 쾌락 속에 몸을 맡긴다. 그런데 왜일까, 여전히 우리는 갈증을 느낀다. 구스타브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으로 화려하게 군림했지만, 업무가 끝난 뒤에 혼자 방에 남아 밥을 먹는 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그 근원적인 허망함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무언가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을 저변에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외로웠던 구스타브와,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난민 출신의 제로가 서로에게 갖게 되는 유대감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제는 낡은 유물이 되어 시대 속에서 잊혀져 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끝내 제로가 버리지 못하듯이 말이다.<헤드라인제주>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공식포스터. <헤드라인제주>

<김소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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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망 2014-06-23 10:31:02 | 14.***.***.203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거 같은데 보지 못해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