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주민 "예산 아예 빼달라"...찬성주민 "외지인이 문제"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제기되는 일련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12일 제주를 방문한 국회 야5당의 해군기지 진상조사단(단장 이미경, 간사 김재윤)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해 찬성측 주민과 반대측 주민, 그리고 해군을 대상으로 각각 사실관계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해군측은 조사단의 공사중단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미루며 나중에 답변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제주를 방문한 해군참모총장이 "공사중단은 안된다"며 거절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 해군기지 반대 주민 "내년 해군기지 관련 예산 동결해달라"
강정마을 의례회관에 도착한 조사단은 먼저 해군기지 반대주민들과 면담을 가졌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고권일 해군기지 반대위원회 집행위원장 등으로부터 중덕 해안 반대투쟁 경과를 비롯해 자연 파괴 등 피해 사례, 이간질 등 주민갈등 양상, 고소.고발 사례 등을 청취하고 사실관계를 체크했다.
이어 "진상조사단에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제주도민들이 해군기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싸워온 우리 강정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해아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회장을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비롯해 내년 해군기지 관련 예산의 동결,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국회청문회 및 공청회 개최, 지역발전계획 관련 예산 전액 삭감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해군기지가 국가안보사업임에도 도지사가 입지선정을 주도한 점과 입지선정 과정에서의 비리, 여론조사방식의 문제점,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한 경위 등을 밝히기 위해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와 제주해군기지 사업본부장, 제주지방경찰청장 등을 소환해 국회에서 청문회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역발전계획 관련 예산의 경우 "해군이 해군기지 주변지역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빌미로 해군기지 건설을 합리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역발전계획 수립에 결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만일 지역발전계획 관련 예산한이 국회에 산정되는 경우 진상조사단이 나서 전액 삭감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어 "진상조사단이 조사한 내용에 대해서는 문건으로만 남기지 않고 공개하겠으며, 해군기지 진행과정에서 어떻게 계획이 변해왔는지, 그리고 해군기지 갈등해결 등을 위해 제주도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도 조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예산결산 문제나 공청회 문제에 대해서는 진상조사를 마친 후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가진 후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해군기지 강정추진위 "왜 지금 진상조사에 나서는거냐? 내년 총선 나서나?"
반대측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후에는 찬성측 주민들과의 면담이 있었다.
진상조사단은 이날 오후 3시 해군홍보관에서 윤태정 전 강정마을회장과 강희상 해군기지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등으로부터 해군기지 건설 수용 입장, 입지선정 과정 및 보상 문제, 강정 마을발전 계획, 주민갈등 및 공동체 파괴 입장 등을 들었다.
이날 찬성측 주민들은 진상조사단에 해군기지 유치 당시 강정마을 주민 698명의 동의서를 받았다면서 강정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강정마을을 비롯한 서귀포시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 따라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군기지가 유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태정 해군기지 강정추진위원장은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대답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국회의원들이 강정마을을 방문해 해군기지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강정마을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라면서 "차라리 강정에 앞으로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 달라"고 말했다.
강희상 해군기지 추진위 사무국장은 "지금의 강정 주민들의 경우 해군기지로 인한 갈등이 많이 해소되고 있는 상황으로 문제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며 "마치 강정이 '인간철새 도래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도대체 정치인들과 NGO관계자들은 언제부터 강정마을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면서 "철새들은 강정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국회 진상조사위가 강정을 방문한 것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개인적인 인기 등을 생각하지 말고 국가안위를 생각해 해군기지가 진척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왜 굳이 지금 진상조사를 온 것이냐? 혹시 내년에 총선에 출마하는 거냐"고 말했다.
추진위 관계자의 발언과 관련해 진상조사단 참여 의원들은 "우리는 찬성이나 반대측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해군기지 사업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고 발끈하며 발언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 일순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러자 추진위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말했고, 이어 김재윤 의원이 중재에 나서며 간신히 상황이 진정됐다.
# 진상조사단의 해군기지 공사중단 요청에, 해군 "생각해 보겠다"
해군기지 강정추진위를 비롯한 찬성측 주민들과 이야기를 마친 진상조사단은 해군기지사업단으로 자리를 옮겨 해군의 입장을 들었다.
이은국 해군기지사업단장과 삼성건설 현장소장 등으로부터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과 현장사무소 개소 및 공사강행 이유, 공사개요 및 진척상황, 공사 향후 계획, 절대보전지역 훼손에 따른 입장, 고소.고발 등 공사 과정에서의 마찰, 공사 지연 또는 피해 상황 등에 대해 조사했다.
특히 이 의원은 "지금 양윤모씨가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외치며 37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해군에서도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진상조사단은 오늘 찬성측과 반대측, 해군의 이야기와 자료 등을 종합해 논의를 한 후 빠른시일내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면서 "그때까지만이라도 공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은국 대령은 "꼭 이 자리에서 답변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이 의원은 "잘 생각해 보고 빠른시일내 답변을 해달라"면서 나중에 공사중단에 대한 해군의 입장을 전달받기로 했다.
그러나 해군측이 공사중단 여부에 대한 즉답을 피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한달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사중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완강했던 자세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어서 최종 답변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