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달라' 간절한 바람 담긴 베트남참전위령탑...'무관심'에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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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달라' 간절한 바람 담긴 베트남참전위령탑...'무관심'에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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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전국 하나뿐인 베트남참전위령탑, 용사들 설움 폭발 이유는?
"안내판도 없고 초라해...제대로 된 위령탑 보는 것, 마지막 소원”
ⓒ헤드라인제주
지난 1일 오후 취재진과 만난, 대한민국베트남참전현충회 서창완 회장(75), 홍수찬 사무처장(75), 문창영 부회장(75). ⓒ헤드라인제주

6월 호국보훈의달 및 제67회 현충일을 앞둔 어느날, 취재진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고, 수화기 너머에선 하염없이 ‘감사하다’는 말만 흘러나왔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잊은 채 연신 감사의 말만 전하던 그는 대한민국베트남참전현충회 서창완(75) 회장이었다.

지난 4월 12일자로 보도된 <제주 '베트남참전위령탑' 사후관리 엉망..."정비 안하나요?">사를 보고 연락했다는 것인데, 위령탑 관련해 그동안 말 못했던 애달픈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일 오후 1시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헤드라인제주> 취재진과 만난 서 회장 및 문창영 부회장(75), 홍수찬 사무처장(75)은, 위령탑은 단순 기념비가 아닌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온갖 비극, 애환, 영광이 담긴 전국 유일 상징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그 모습이 매우 보잘 것 없이 초라한데, 이를 볼 때마다 서럽고 또 서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자세한 내막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베트남참전현충회는 약 40년 전인 1986년 5월 ‘월남참전맹호전우회’라는 이름으로 발기, 1987년 8월 공식 출범했다. 제주에서 출범했지만 활동 지역은 전국구였다. 사회단체로 등록된 시기는 1994년 5월이며, 서창완 씨가 이때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단체명은 여러 번 변경됐는데, 2019년 1월부터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제주 출신 참전용사 약 7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나눴던 전우 몇몇은 고령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월남참전 용사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해달라는 시위를 포함해, 전국 월남참전 용사 만남의 장 추진, 일본 각료 독도망언 규탄대회, 제주 유일 월남참전용사 위령제 등의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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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18일, 제주시충훈묘지 입구에 있던 베트남참전위령탑 앞에서 진행된 제1회 월남참전 전사자 위령제. ⓒ헤드라인제주

모두가 고령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이들은 큰 결심을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젊은 청춘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다 바쳤으나, 그들에게 돌아온 건 무관심. 떠나간 이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희생을 자체적으로라도 기억하고자 전국 유일 ‘베트남참전위령탑’을 제주에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고 지난 2006년 5월 5억 4200만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제주시 충혼묘지 입구에 준공된 위령탑. 하지만 참전용사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찌는 더위 속 생사가 오가던 전투가 이어지던 어느날 단비가 내렸죠. 모두들 조금은 살 것 같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피부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우거진 숲의 풀들을 제거하기 위해 군 헬기가 뿌린 고엽제였죠. 사람이 한 순간에 죽고 살았던, 전쟁의 온갖 사연이 한 곳에 담겨 있습니다, 베트남참전위령탑에는요.”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용사들은 당시를 상기할 때마다 말끝을 흐렸다. 기나긴 시간이 지났지만 전쟁의 비극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했다.

지난해 10월 18일, 제주시 연동 산 132-2번지로 이설된 위령탑에서 진행된 제4회 월남참전 전사자 위령제. ⓒ헤드라인제주

◇“한 순간에 죽고 살았던, 전쟁의 온갖 사연이 담겨있어요, 위령탑 하나에.”

이들은 “참전 용사 모두 전쟁을 겪으면서 각자만의 사연을 안고 있다. 누구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는 영광으로, 누구에게는 사람을 죽이고 생사를 오간 크나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고엽제를 맞았던 순간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피부가 썩어 들었고 아직까지 후유증으로 남아있다”며 “총알과 포탄 속에서 삶과 죽음이 일순간에 교차했다.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국민들과 국가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다들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말은 하지만...실질적으로 우리를 기억하고, 예우해주는 사람들, 그러한 제도들, 거의 없어요. 한 달에 30만원의 지원금이 나오긴 하는데 우린 그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현충회는 스스로 나서 2000년 베트남참전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해달라는 시위를 직접 주도했다. 1년 후에는 ‘전국 월남참전 전우 만남의 장’을 추진했다. 그리고 2003년, 전국 월남참전 용사들의 비극, 슬픔, 영광 등 모든 사연을 한 곳에 담고, 떠나간 사람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기리고자 큰 규모의 사업을 추진했다. 베트남참전위령탑 건립이었다.

2003년 3월 ‘베트남참전위령탑 및 고(故) 송서규대령동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창립됐다. 이어 2005년 1월 제주시충훈묘지 입구에 위령탑 건립 공사가 시작됐으며, 약 1년 4개월 이후인 2006년 5월 준공됐다.

보훈처 2억 1200만원, 제주도 2억, 현충회 자부담 1억 4000만원 등 총 5억 4200만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으며, 국가보훈처 관리번호 45-2-46호로 지정돼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이 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만 있는 베트남참전용사위령탑의 건립 배경이다.

현충회는 지난 2018년 10월 처음으로 이곳에서 위령제를 봉행했다. 400여명의 인원이 참석했는데, 다음해 제2회 위령제에서는 이보다 2배쯤 되는 7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참석했다. 월남참전 용사들의 잊혀진 명예와 전쟁에서 겪은 애달픈 사연들. 국가묘지에 자리 잡은 이 위령탑 하나로 점차 회복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국립제주호국원이 개원하면서 제주시충훈묘지와 함께 베트남참전위령탑도 이설됐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위령탑 이설공사 1년 넘었는데, 무관심 속 방치...“없는 것만도 못해요”

베트남참전위령탑은 지난해 12월 전국 첫 독립투사, 호국영웅, 민주열사 통합형 국립묘지인 국립제주호국원 개원으로, 제주시충혼묘지가 이설되는 과정에서 함께 옮겨졌다. 이설된 날은 지난해 6월.

그러나 제주시 연동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입구에 자리를 잡은 위령탑의 현재 모습은 이설공사가 끝난지 1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모습이었다.

제주시 연동 산 132-2번지 소재 베트남참전위령탑 전경. ⓒ헤드라인제주
지난 4월 10일 방문했던 베트남참전위령탑 전경. ⓒ헤드라인제주
위령탑 진입로. 기본적인 포장공사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흙과 돌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다. ⓒ헤드라인제주
지난 4월 10일 방문했던 베트남참전위령탑 진입로. 기본적인 포장공사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흙과 돌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이 지난 4월 10일 방문했을 때 위령탑의 모습은, 안내판 하나 없고, 진입로는 포장도 안 돼 크고 작은 자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외벽도 없어 주변 흙먼지가 그대로 날려 위령탑에 소복히 쌓여있었고, 임의 명각 논란이 있었던 위령탑은 초록색 테이프로 보기 싫게 임시방편 가려져 있었다.

월남참전 개요, 부대가, 사령관 기림가, 현충회 개요 등 위령탑 전반을 설명하는 내용은 1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비석에 새겨지지 않았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8년 8개월 참전했다 해서 조성된 전체 비석 8개. 전면과 후면 총 16면 중 무언가가 새겨진 면은 4개뿐이었다.

“바위 하나 어엿한 거 찾기 위해 중국까지 다녀왔고요, 충혼묘지에 있었을 때도 손봐야 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설공사를 하고 나서 지금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힘에 부친다는 핑계로 손을 놓기에는 하늘에서 보고 있을 전우들에게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서 회장과 현충회 임원들은 사업보완계획서를 스스로 작성했다. 대선 즈음 세종시에 있는 보훈처를 직접 찾아갔고 이를 제시했는데, 제주도 예산을 추가로 더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권한대행 체재였고 코로나도 극심할 때였으며, 이에 의회에서도 당연히 관심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는 6월 1일 이후로 다시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으나, 전전긍긍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몇 달인 시간이 이들에게는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작은 공사 하나라도...마음을 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기사가 보도된 후 제주도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서 회장은 말했다. 예산이 많이 부족해 모든 정비 공사를 단번에 진행할 수는 없으나 진입로 포장공사라도 해보자고.

“뭐라도 신경을 써주니까 쓴 소리는 못했어요. 하지만 제안을 거부했어요. 작은 거 하나라도 진지하게 의논하고 협의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진솔한 마음을 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이들은 “이거 하나 저거 하나 땜질식 공사를 하다 보면 분명 또 문제가 발생한다. 이 지역이 어떤 날씨를 보이는지, 지반은 어떠한지 조사를 해봤는데, 마을 아스팔트 공사하는 것처럼 하면 결국 금방 파손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마음 놓을 수 있도록 제대로 공사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위령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나 결국 참전용사들의 바람은, 관심과 기억이었다. 참혹하고 애달팠던 전쟁터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젊은 날의 삶이 오늘날까지도 이들만의 비극, 영광이 되고만 있는 상황.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관심의 끈은 놓지 말라는, 기억에서 멀어질 수는 있지만 잊히는 것은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이 바로 ‘베트남참전위령탑’인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취재진에게 말했다. “제주 2400여 명을 포함한 전국 모든 월남참전 용사들, 그들의 희생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그래도 한 축은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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