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영리병원 허가취소 처분, 결국 '무효화'...재추진 물꼬 '충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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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리병원 허가취소 처분, 결국 '무효화'...재추진 물꼬 '충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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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제주도 상고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심리없이 최종 '패소'
1심 '적법'→ 항소심 '위법', 판결 뒤집힌 후 대법서 그대로 확정
"병원허가 취소처분 위법"...승소한 中녹지그룹, 재추진?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됐던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의 개설 허가 취소 처분과 관련한 소송에서, 제주도가 최종 패소했다. 항소심에서 판결한 "취소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하여야 한다"는 결정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제주도의 패소로 병원개설 허가 처분이 무효화되면서, 영리병원 논란을 둘러싼 갈등은 다시 크게 분출될 전망이다.
 
대법원 특별1부는 지난 13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해, 제주도의 상고에 대해 심리불속행기각 결정을 내렸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타당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이 소송은 중국 녹지그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 
사실상 중국 녹지그룹측의 손을 들어주며 영리병원 개설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준 것이다.  

이번 영리병원 개설허가 취소처분 관련 소송은 지난해 8월 이뤄진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힌 것이어서 충격파가 크게 일고 있다. 1심에서는 '개설허가 취소 처분은 적법하다'는 제주도 승소 판결이 내려졌으나. 항소심에서는 "제주도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 뒤집힌 항소심 판결, '위법' 판단 이유는?

판결은 왜 뒤집혔던 것일까.

이번 소송은 제주도가 지난 2019년 4월 17일 녹지국제병원이 현행 의료법이 정한 기한내 병원 개원 및 진료 개시를 하지 않음에 따라 개설허가를 취소하는 처분을 내린데 대한 대응차원으로 이뤄졌다.

의료법 제64조(개설 허가 취소 등)에는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아니한 때 개설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녹지국제병원은 2018년 12월 개설 허가를 받고도 기간 내(2019년 3월4일까지) 개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제주도는 청문절차를 거쳐 의료법 규정에 따라 개설 허가를 전격 취소했다. 

이에 녹지측은 이 처분이 부당하며 처분을 취소할 것을 주문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녹지측은 재판과정에서 제주도가 병원 개설허가를 내면서 제시한 '내국인 진료금지'의 조건부 허가사항이 위법해 이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기한 내 개설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2020년 10월 열린 1심 재판에서는 원고의 청구가 기각됐다. 설령 조건부 사항이 위법하더라도, 의료법에서 정한 것처럼 기한 내 병원 개설을 하고 업무를 시작했어야 했다는 것으로, 제주도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판단이다.

반면, 지난해 8월 선고가 이뤄진 항소심에서는 녹지그룹측의 주장을 전면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개설 허가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병원을 개원해 업무를 시작하지 못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제주도의 처분은 부당하고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한 마디로 병원개설 허가를 취소할만한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초 제주도는 개설허가 취소처분 사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했다. 첫번째는 2018년 12월 5일 개설 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 두번째는 2019년 2월 27일과 3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병원개설 준비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려던 현장 점검에 대해 녹지국제병원측이 불응한 점을 들었다. 

후자의 경우 2월27일 방문에서는 녹지측이 방문한 의료지도원에 대해 응대도 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확인이 불가능했고, 3월5일 방문에서는 출입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진료개시를 위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처분사유에 명시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제주도가 적시한 이 두가지 처분 사유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첫번째, 3개월 내 병원 개설을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녹지그룹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병원개설 허가 조건으로 붙여진 '내국인 진료금지'와 관련해서는 녹지국제병원 입장에서는 "사업계획이나 개원을 위한 준비게획의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업계획서에는 녹지국제병원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및 미용 목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을 전제로 의료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도 당시 사업계획서 및 제주도 등에서 '내국인 진료' 가능성을 일정부분 염두에 뒀던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병원 설립을 긍정적으로 추진하면서 '내국인이 이용하더라도 건강보험 적용이 제외됨으로써 국민건강보험체계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했다"면서 "또 2018년 3월부터 이뤄진 공론조사 절차에서도 내국인도 외국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이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녹지국제병원은 그 주된 이용 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하면서도 내국인의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녹지국제병원이 진료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립이 추진됐던 것으로 보임에도 피고(제주도)는 원고가 의료기관 개설을 위한 물적, 인적 준비를 마치고 그로부터 15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 5일에서야 진료대상자를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하는 허가조건을 부가해 개설 허가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내국인 진료금지의 허가조건에 대한 위법성에 대해서는 녹지측에서 별도 소송을 제기한 만큼 별도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전제하면서도, 병원 개설 허가가 15개월이 지나서야 이뤄지는등 장기간 지연된 문제는 원고의 귀책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이러한 허가조건 부가에 따라 사업계획 변경 등이 불가피해 3개월 내에 병원 개설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원고는 2017년 9월에 맞춰 건물 건축, 시설 구축, 운영인력 총 134명 채용, 재원 조달, 경제성 및 투자회수기간 분석 등에 관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병원 설립을 추진했으나 사업 진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허가조건이 부가되어 사업계획이나 개원을 위한 준비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또 "더욱이 허가 절차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원고가 채용했던 인력이 이탈하기 시작해, 개설허가 당시에는 채용한 근로자 134명 중 의사 9명 모두를 포함해 70여명이 이탈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고는 개설허가 신청 당시 사업승인을 받았던 대로 물적·인적 조건을 갖췄으나, 허가 결정이 15개월 이상 지연되는 과정에서 채용했던 인력이 대거 이탈해 기간 내에 다시 인력을 충원해 정상적으로 개원하기도 어려웠다"면서 "이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두번째 쟁점인 진료개시일(2019년 3월 4일) 도래에 따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제주도의 준비상황 현지 점검도 위법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제주도는 2019년 2월26일 녹지국제병원에 사업계혹 승인사항 및 부대조건 이행여부, 진료과목별 의료인(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적정여부, 허가 시 제출한 의료보수(진료비) 게시 등에 대한 현지점검을 다음날인 2월27일 실시하겠다고 안내문을 발송했다.

병원측은 '하루 만에 현지점검 준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병원 개원이 늦어지게 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며, 개원 계획을 다시 수립.이행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어 연기를 요청했다. 또 제주도가 2월27일과 3월 5일 실시하려던 현지점검에 응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조사를 실시하고자 하는 행정기관의장은 출석요구서 등을 조사개시 7일 전까지 조사대상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며 "이를 미리 통지해 원고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제주도가 두차례 실시한 현지점검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의 개설허가 취소처분은 그 사유가 존재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 1심 재판부, '적법' 판단 이유는?

이러한 항소심의 판단은 녹지그룹측의 주장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1심의 판단과는 대조적이다.

2020년 10월 이뤄진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허가 조건'의 위법성 주장과 별개로, 병원 개설은 기한 내 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행정처분(허가조건)이 위법하더라도 당연무효가 아닌 한 처분이 취소되기 전에는 위법을 이유로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며 "녹지측은 개설허가처분에 붙인 조건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일단 개설허가 후 3개월 이내에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업무 시작을 거부했으므로, 허가에 위법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개설허가를 취소할 사유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또 녹지측이 주장했던 또다른 이유인 '채용인력 이탈'과 관련해서도, "개설허가가 늦어지는 동안 채용했던 인력이 이탈한 사정이 있더라도, 허가 후 개원 준비를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인력 이탈을 업무시작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3개월 이내 업무 개시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업무정지가 아닌 허가취소의 처분을 한 것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경우 경제성이 없어 병원운영이 어렵다는 주장, 진료거부에 따른 형사처벌의 위험이 있다는 녹지측의 주장도 모두 기각했다.

다만 1심에서는 녹지측이 제기했던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부 사항 관련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취소 청구소송’에 대해서는 선고를 연기했다. 병원 개설허가 취소처분에 따라 소송의 대상인 허가조건은 이미 소멸한 상태여서, 이번 취소처분 소송을 확정한 후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1심의 판결은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혔고, 대법원은 심리 자체를 하지 않고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제주도의 병원개설 허가 취소처분은 무효가 됐다.

16일 열린 대법원의 영리병원 허가취소 판결을 촉구하는 서울-제주 동시 기자회견.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대법원의 영리병원 허가취소 판결을 촉구하는 전국 시민사회단체의 서울-제주 동시 기자회견. ⓒ헤드라인제주

사실상 병원 재추진 여부에 대한 선택권은 녹지국제병원으로 넘어갔다. 영리병원 재추진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의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 한 업체는 의료법인 우리들녹지병원으로 설립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항소심 판결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대법원에 '취소 판결'을 강력히 요구해 온 시민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리병원 개설절차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도 크게 분출될 전망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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