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옥의 시선: 삶과 경제] (20) 계약과 선택의 자유, 주 120시간 노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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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의 시선: 삶과 경제] (20) 계약과 선택의 자유, 주 120시간 노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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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IT(Information Technology) 업계를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주장 즉 “당사자들(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자발적 계약을 전제로 주당 120시간을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수정하자는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자발적 계약에 의한 노동계약을 주창하기 전에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법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함양하고,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하여,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는 데 있다. 이 법은 임금, 노동시간, 유급 휴가, 안전 위생 및 재해보상 등에 관한 최저의 노동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또한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일지라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 기준에 미달한다면, 그 내용에 한하여 효력이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의 한도를 1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되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노조와의 합의를 전제로 주당 최대 45시간을 허용하고 있고 이를 어겼을 경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사용자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약한 노동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법이라고 볼 수 있다.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을 주창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법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균형이 잡힌 사고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논의를 경제학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우리나라 노동자가 처한 노동강도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선진국에 비교하여 노동을 과도하게 생산 활동에 공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2020년 현재 1908시간으로 삼위를 마크하고 있다. 회원국 중에서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는 콜롬비아(Colombia)와 멕시코(Mexico)이고 각각 2172시간과 2124시간이다.

우리나라와 1인당 GDP 수준이 엇비슷한(대미 달러 균형환율로 평가했을 때) 일본과 영국은 각각 1598시간과 1367시간이다. 이 데이터는 영국과 일본이 우리나라 노동자보다 생산성이 높고 고부가가치 생산을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선진국 노동자들과 비교하여 많은 시간을 노동으로 생산에 공급하고 있다는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데이터는 1인당 GDP는 영국과 또는 일본과 엇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 공급으로 여가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이들 국가에 비교하여 아주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 조건을 양 당사자 간에 자율적으로 맡기자고 하는 야당의 유력 대선 주자. 그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배경으로 밀톤 프리드먼의 경제적 자유를 들먹이고 있다. 프리드먼의 경제적 자유를 노동시장에 액면 그대로 적용할 경우, 노동시장은 약육강식의 시장이 되어, 사용자는 노동자의 이익을 완전하게 갈취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개별 노동자의 능력을 완전하게 식별할 수 있다면, 사용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고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는 노동자가 가져가야 하는 노동 공급에 따른 이익을 완전하게 갈취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개별 노동자의 능력을 완전하게 식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노동시장은 요소독점적 시장(Monopsony)이 된다. 이 경우에도 사용자는 노동자와의 노동계약에서 노동자보다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는 교섭력의 비대칭성이 필연적으로 내재한다.

이러한 노동시장에서는 우월한 교섭력을 가진 사용자가 임금을 낮게 설정하거나 사업체가 필요로 하는 노동량보다 덜 고용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경제학자들은 요소 독점적 시장을 경쟁적 시장으로 만들면서, 노동시장에 개입하여 임금을 증가시키고 고용을 증대시킬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최저임금법을 도입하는 경제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 경제이론은 임금과 고용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에 관한 단순 논리이다. 여기에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고려가 배제되어 있다. 실제로 노동시장은 이러한 경제 논리로 풀기에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혹사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례를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하여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위에 주어진 경제 논리에서 당연한 귀결은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교섭력(Bargainging Power)을 크게 가졌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노동자와 사용자가 설사 동등한 교섭력을 갖고 노동계약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고용이 된 상태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 비교하여 우월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우월적인 위치에 놓인 사용자는 자기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법정 시간 외 노동을 묵시적으로 요구하고, 근로 환경을 개선하지도 않고, 업무 이외의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부호 빌게이츠(Bill Gates)의 경우 부하 여직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인격 모독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경제 논리를 설파하기 전에 그 논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하기 바란다. 정치인의 경우에는 경제적 논리 이전에 다른 사회 과학자(심리학, 윤리학, 철학, 사학 등)들이 권하고 있는 도덕적 철학적 가치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경영은 기업을 소유한 자본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고르게 살게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국가의 경영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야당이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고자 하는 전직 고위 행정가들은 너무 우경화되어 있고, 자본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이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경제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뇌리에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은 없고 비즈니스만 있을 뿐이다. Not for human first, but for business first.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야당에도 정치적 검증을 통과하고, 시대정신을 읽으면서 균형감이 있는 대통령 후보감들이 많은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현 정부의 요직을 거치고,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권 심판론적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정제되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고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깡통인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학문의 경우에도 공부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정치의 경우에도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가의 경영을 조그만 자연과학 실험으로 여길 수는 없다. 국가 경영의 실패가 가져오는 역효과는 조그만 실험 실패가 가져오는 피해와 비할 바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진옥 /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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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2021-08-11 19:18:50 | 211.***.***.214
윤짜장이
한때는 정의롭고 헌법정신 실현하는 줄 알았는데 잡놈수순.

1일1망언 2021-08-11 13:14:52 | 175.***.***.151
입만 열먼 망언 쏟아내는 자에게 어찌 나라를 맡길수 있나??? 뚜껑여니 완전 함량 미달, 당외 사람 빨리 포기하고 당내에서 결판지어라

ㅎㅎ 2021-08-11 11:01:35 | 121.***.***.253
'법정 시간 외 노동을 묵시적으로 요구하고, 근로 환경을 개선하지도 않고, 업무 이외의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구시대의 의식에 길들여져 아직도 이런 요구를 묵시적으로 하는 사용자들이 많습니다. 국가경영을 맡을 사람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막말을 하니 함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유권자들이 예민하게 듣고 판단해야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