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옥죄는 '차별'...주차장 임대 '돈벌이'...청년정책 역행
정책 목적.효과 의문...차량 정말 억제됐나...주차난 완화됐나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차고지 증명제'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서민들의 원성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제도의 시행근거(조례)를 마련해 준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제주도의회에서도 폐지 의견이 이어지자, 시민사회에서 '폐지론'도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교통난과 주차난 해결을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지 17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안착은 커녕 거센 폐지 요구에 직면한 것은 어찌보면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제도적으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출발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사실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공평함이나 균등함을 보장하는 보편적 정책이 아니다.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도 차고지 공간까지 완비한 집을 소유한 시민만을 위시해 짜여진 정책이었다. 역으로, 집이 없는 무주택 서민이나, 설령 집은 있어도 차고지가 들어설 공간이 없는 시민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정책이다.
사실상 집 없고, 차고지 없는 시민들에게 "너희들은 차량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선택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반(反) 서민적 정책이자,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현저히 침해하는 차별적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 결함 투성이 제도, 왜 도입했을까
이러한 결함 투성이의 제도는 어떻게 시행하게 된 것일까.
차고지 증명제는 자동차 보유자에게 자동차의 보관 장소 확보를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거나, 차량 소유주가 주소변경, 명의 이전 등록을 하는 경우 차고지를 확보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소유자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관할 관청은 자동차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량 등록대수를 줄임으로써 교통난과 주차난 문제를 완화시켜 나가겠다는 취지다.
정부 차원에서도 급격히 늘어나는 차량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이 제도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1993년, 1995년, 1997년에도 이 제도 도입이 제안돼 논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논의 결과는 언제나 '아니오(NO)'였다. 자동차를 생계수단으로 하는 저소득층의 자동차 보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게 된다는 우려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다.
차고지증명제가 도심 주택가 주차난 해소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무리하게 도입할 경우에는 주차장 확보가 불가능한 도심지역의 주택가를 중심으로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도 도입 불가의 이유로 들었다.
반면, 제주도 차원의 논의에서는 '단계적 도입'이 결정됐다. 첫 시작은 2007년이다. 그해 2월 제주시 동(洞) 지역 대형차(승용 2000cc 이상, 승합 36인승 이상, 적재량 2.5톤 미만·총중량 10톤 이상)를 대상으로 처음 시행됐다.
이어 2017년 1월부터는 중형차(승용 1600cc 이상, 승합 16인승 이상, 적재량 1톤 초과·총중량 3.5톤 이상)까지 확대됐다. 2019년 7월 1일부터는 중·대형 전기차가 추가로 포함됐다.
2022년 1월1일부터는 전 차종으로 확대됐다. 경·소형차(승용 1600cc 미만, 승합 16인승 미만, 적재량 1톤 이하·총중량 3.5톤 이하)도 차고지 증명 대상으로 포함됐다.
제주도와 행정시 관계부서에서는 차고지증명제 시행 후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해 왔다. 가장 큰 성과로 제시한 것이 차량 등록대수를 억제했다는 점을 들었다.
시민들의 원성은 끊이지 않으나, 담당 공무원들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차고지증명제 당위성만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선전전까지 나서고 있다. 정말 차고지 증명제는 차량 억제를 통한 교통난, 주차난 해소라는 시행 취지에 맞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고, 실효성이 입증된 것일까.
하지만 관련 통계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 제도의 시행 효과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오히려 이 제도를 왜 시행해야 했는지, 근본적 의문만 더해간다.
◇ 차량 감소했나?...교통난 완화됐나?
첫째, 제도 시행 후 차량 감소 효과는 과연 있었을까.
지난 2020년 제주도는 전면적 시행을 앞두고 차량등록대수의 증가율이 둔화된 점을 들며 차고지 증명제의 성과로 분석하는 홍보자료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차고지 증명제의 성과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도 시행 이전과 이후 비교해 특정시기의 증가율이 둔화됐다는 시계열적 통계 분석결과를 근거로 들었으나, 이러한 추이가 차고지증명제 때문이라는 상관성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시행한지 수년이 지났어도 당초 1차적 목표로 잡았던 차량 억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차고지 증명제 시행 후 차량 등록대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차고지증명제가 처음 시행되던 2007년 제주지역 자동차 등록대수는 자가용 20만7886대를 포함해 총 22만8858대였다. 그러던 것이 중형차까지 적용대상으로 포함한 2017년에는 46만9392대(자가용 35만5700대)로 갑절 이상 증가했다.
전면적 확대 시행한 2022년 1월 기준으로는 66만1977대(자가용 39만7539대)로 나타났다. 5년 새 20만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올해 8월 기준으로는 70만9995대(자가용 42만6914대)에 달하고 있다.
이는 차고지 증명제가 차고지를 확보할 여력이 없는 서민들의 차량 등록만 강제적으로 제한했을 뿐, 소위 '가진 사람'의 1세대 2차량, 3차량은 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차량의 증가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제도의 가장 큰 시행 취지인 '교통난 완화'라는 목적 실현은 실패한 셈이다.
◇ 주차장 확보율은 '129%'라는데...실제 주차난 완화됐나
둘째, 두번째 시행 목적인 '주차난 완화'는 어느 정도 됐을까.
물론 통계상으로는 주차장 확보율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표한 주차장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영업용 등을 제외한 차량 대수는 36만7000여대, 주차면수는 47만5000여면으로 주차장 확보율은 '129.3%'로 제시됐다.
차량 대수보다 주차공간이 10만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는 2017년 차량 대수는 37만여대인데 반해 주차공간은 35만여면으로, 주차장 확보율이 '96.7%'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주차면수 확보량이 차량 대수를 앞지른 것은 2019년부터로 제시되고 있다. 이 통계가 맞다면, 주차난은 크게 개선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주차난의 현실은 여전히 심각하다. 골목길 주차난이 오히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가나 상점가 일대는 매일 같이 '주차 전쟁'이 빚어지고 있다.
주차장 확보율만 보면 가히 획기적 수준이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이 제도의 '주차난 완화' 효과 역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 서민만 쥐어짜는 '제도적 결함'...이제 결단 내려야
이처럼 실효성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제도적 결함에 대한 단호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쟁점인 서민 차별의 문제에 대한 원성이 들끓고 있으나, 이에 대한 개선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대책'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차고지 없는 서민들을 위해 '대안'으로 내놓았다는 공영주차장 임대 방식이다. 행정시 공무원들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차고지가 없는 경우 인근 공영주차장의 1년 단위 정기주차 요금을 별도로 납부하면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금액이 실로 만만치 않다. 차고지 증명용 공영주차장의 1년 요금은 동(洞) 지역은 90만원, 읍.면지역은 66만원이다. 이는 중.소형 자동차 소유자가 연간 납부하는 자동차세보다도 갑절 많은 금액이다.
문제는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 폭탄'에 다름없는 돈을 내고 공영주차장을 임차하더라도, 실제 주차장 이용도 어렵다는 점이다. 행정당국은 임대료만 챙길뿐, 임차인에게 지정된 주차면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권 공영주차장의 경우 야간 시간대나 공휴일에는 무료로 운영되면서 '만차'가 되는 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도의회에서도 제기됐으나, 현재까지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행정당국이 서민들만 쥐어짜며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는 이유다.
결국 이 정책의 제도적 결함의 본질은 '반 서민적'이라는 것과 '차별'로 요약된다. 차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선택권의 박탈, 무주택 서민들에 대한 공개적 차별,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제약.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실패작'이다. 혁신적 정책이 아니라 제도적 모순점이 명백한 잘못된 정책이자 '나쁜 정책'에 다름 아니다. 차별의 대상이 청년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민선 8기 도정의 청년정책의 방향과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여년 전 정부에서 이 제도의 시행을 검토했다가 안한 이유도 있는 것이다. 이 제도의 치명적 결함, 맹점 때문이 아닌가.
제주도는 이 제도의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부분적 손질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예전 대형 차량 이상에 한해 적용했던 것과 같이 최소한도 선에서 제한적 시행을 검토해야 한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