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4) 오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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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4) 오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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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다. 싱그럽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무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던, 피천득 님의 〈오월〉 그대로다. 오월의 찬란함은 온갖 새뜻한 말을 모아도 모자란다.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것을, 애쓸 게 무언가. 연푸름 향내를 누리며 담백하고 충만한 생명의 너울에 맡겨두면 될 일이다.

오월은 어울림으로 더 아름답다. 하양, 분홍, 빨강, 노랑 꽃들이 연초록 사이를 수놓아 화사한 그림을 완성한다. 나무는 가지를 들어 꽃이 피어날 자리를 내어주고, 숲에 깃든 새들은 저마다 지저귀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산은 나무와 꽃을 품고, 숲은 새를 품고, 새소리는 산을 품는다. 서로 안아 주고받으며 오월은 더없이 향기롭다.

오월 어느 날, 커피나 한잔하자며 문우들이 모였다. 채송화처럼, 수국처럼, 모란처럼 다들 저만의 독특한 향기를 지녔다. 금세 의기투합했다. ‘오월의 향기’라는 이름표도 달았다. 출정식 삼아 후배가 살고 있던 제주로 날아갔다. 앞으로는 한라산이 팔을 벌려 안아주고 뒤에서는 애월 바다가 끊임없이 영감을 실어 나르는 언덕 위 타운하우스. 마당 한쪽을 차지한 나리들 잎새 사이엔 주홍빛 작은 꽃망울이 숨어 있었다.

저녁 무렵, 저마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챙기느라 가방을 뒤적거렸다. 멋스럽다 싶은 모자도 골라 썼다. 한담 해안산책길로 나섰다. 바다로 지는 해넘이를 보러 가는 길은 일곱 여인네의 입심으로 시끌벅적했다. 쪽빛 애월 바닷가, 넓은 찻길 바로 아래지만 절벽이 에워있어 산책길에 들어서면 아늑했다. 바닷가에 늘어선 카페에는 꽤 많은 사람이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탐방객이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친구와 연인과 예쁜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느라 바쁜 그들은 풋풋한 오월이었다.

우리라고 질쏘냐, 모자를 비스듬히 써보기도 하고 모델 흉내도 내가며 그 순간을 담았다. 그래 놓고 다들 자신 있는 건 뒷모습이란다. 아무려나 노을빛이 도와주니 실루엣은 그럴싸했다. 하늘은 붉었다가 주황이었다가 보라색으로 변신하며 서정적인 풍경을 쉼 없이 그려냈다. 늠실거리는 윤슬과 검은 현무암, 무성한 풀숲이 어우러진 산책길은 안온하고 여유로웠다.

수다로 채운 밤이 지나고 삶은 달걀과 샐러드로 제주의 아침을 열었다. 거실에 앉아 바라보니 멀리 한라산 봉우리에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했다. 문득, 오름으로 가고 싶어 서둘러 채비하고 나섰다. 제주에 오면 저절로 오르게 되는 오름이라니, 참 별난 매력을 가졌다. 주섬주섬 챙겨서는 ‘새별오름’으로 달렸다.

사진 = '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 = '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 갈무리

오름 전체에 불을 놓는 세계 하나뿐인 축제, ‘제주 들불 축제’가 열리는 곳이란다. 예전에 사람들은 가축을 방목하는 중산간의 해묵은 풀과 해충을 없애기 위해 들판에 불을 놓았었고, '방애‘라 부르던 그 목축문화를 축제로 되살린 것. 언젠가 치솟는 불꽃이 일렁거리는 새별오름을 보고 싶다. 축제를 여는 취지대로 평화와 만사형통을 기원하고 그 기운이 온 누리로 번져 나가길 바라고도 싶다. 해묵은 것을 태운 자리 어디쯤 희망과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터이니.

제주 들불 축제는 화산섬 제주 생성의 근원인 불에서 유래한다.

화산섬 제주의 불은 한라산을 낳고 삼백예순여덟 오름을 길러냈으며

탐라 천년의 역사와 제주 선인들의 삶의 동력이 되어 왔다.

제주 들불 축제 유래비의 첫머리를 보자 왠지 벅찼다. 탐라 개국의 설화가 서린 삼성혈에서 채화한 불로 들불을 놓는단다. 올림픽 성화를 올림퍼스산에서 가져오는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새별이란 이름도 사랑스럽다. 저문 하늘에 빛나는 샛별 같아 붙여진 것으로 위에서 조망하면 다섯 봉우리가 별 모양 같은 오름이라니…. 숲이 우거진 오름과 달리 새별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속 여인처럼 둥그스름 풍만한 몸매와 자연 그대로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오름 맞은 편 ‘새빌카페’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모습이 중세의 성이나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했다. 넓은 창밖으로 펼쳐진 새별오름의 곡선을 감상하고 있었다.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던 순간, 거짓말처럼 모래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언젠가 상하이 여행 때, 빌딩 사이 큰길을 따라 누렇게 몰려오던 무서운 황사 바람 같았다. 모래바람은 순식간에 새별과 주변 풍경과 오가던 사람들을 삼켜버렸다. 오름은 분명 존재하건만 사라지고 없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말하는 것인가. 모래바람과 구름 저 너머, 사람의 시선 너머를 느낄 줄 알아야 함을 일러주는 걸까. 무엇이든 자의적인 잣대로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건네는 것이 아닐까, 살그머니 나를 돌아보았다.

꼭 가보고 싶었던 들불 축제가 중단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근래 들어 생명 감수성의 문제와 화학약품으로 일부러 불을 놓아 자란 풀이 과연 건강한 풀인가, 하는 비판이 있어서란다. 황홀한 불꽃을 마주하리라 벼르던 내게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우리를 에워싼 삶의 문화는 늘 살아 움직이는 것. 새 들불 축제가 어떤 모양으로 꾸려질지 설렘이 앞선다.

다시 산야는 향기로운 오월이건만, ‘오월의 향기’는 흩날리고 없다. 저마다의 향기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미처 발산하지 못했던 것인가. 향기 너머 존재하는 무언가를 놓쳤던 걸까. 추억만 덩그렇다. 이제 ‘오월의 향기’는 가뭇없으나 여전히, 오월은 푸르고 햇살은 연푸름 사이로 반짝인다. <수필가 배공순>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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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2024-05-20 17:21:26 | 223.***.***.2
오면 갔다가, 또 오기도 하는게 살아가 는 이치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오월이야기인듯 하지만 그속에 뭔가 생각하게 하는군요.
잘 봤습니다.

기억 2024-05-18 10:26:27 | 220.***.***.83
저도 몇해전 친구들과 새별오름에 다녀왔는데 그때 추억이 생각납니다 . 새빌카페는 일정 때문에 멀리서만 보고 지나쳤는데 다음엔 한번 가봐야겠어요 제주 여행 안내자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