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회에 걸쳐 8·15 해방이후부터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제주사회에서는 어떤 정치사회단체들이 태어나 어떤 활동하다가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간략히 살펴보겠다. 이것은 제주사회에서 출현했던 좌우익의 흥망사이면서, 제주4·3사건의 전사(前史)에 해당된다. 이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이 속에는 제주4.3사건 발발이전에 뿌려진 삐라의 생산 주체들에 관한 이야기와 제주4·3사건의 발생원인과 배경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기에 연재되는 글들은 지난 5월 12일 ‘제주언론학회’·‘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희생자 유족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고영철이 발표한 내용(제주4·3당시 삐라에 관한 연구)가운데, 원고분량 관계로 세미나 자료집에 다 싣지 못했던 내용들 중의 일부임을 밝혀둔다. 이 연재는 자료집에 없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회에 걸쳐 게재된다. 미력하나마 제주4·3사건의 전사(前史)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필자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처음 제시한 '글 싣는 차례'의 순서를 바꿔 '신문형 삐라'부터 계속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필자 주>
1945년 8·15해방이후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내에는 모두 213개(종)의 삐라가 살포되거나 부착되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실제로 살포된 삐라의 종류는 이 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수집해 모아 논 자료집이나 공식문서가 발굴되지 않은 한 본인의 조사결과가 현재로서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총213개 종류의 삐라 가운데 7개(종)는 신문처럼 제호(題號)가 달린 삐라였다.(주1) 좌익진영에서는 자신들이 제작한 일부 삐라에 『혈서(血書)』, 『샛별』, 『새소식』, 『혈화(血火)』, 『전(前)』, 『인민통신(人民通信)』, 『인민일보』 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일반형 삐라와 차별화시키고, 대중의 호감을 얻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호’ 달린 삐라는 일반 삐라에 비해 그 영향력이 더 컷을 것이다. 그리고 이중에 일부는 당원을 대상으로 배포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기관지였을 가능성도 높다.
현재 ‘신문형’ 삐라중에 실물이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이들의 형태, 발행주기, 내용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미흡하나마 여러 문헌의 기록을 근거로 각 삐라 신문들의 특징 등을 7회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1) 혈서『血書』
산쪽에서 제작 살포했던 7개(종)의 제목달린 삐라 가운데 『혈서』는 원문내용이 대부분 남아있는 유일한 삐라 신문이다.
『혈서』에 관한 기록은 『조선중앙일보』1948년 7월 30일자「산사람 요구는 경찰의 무장해제 / 김봉호 경찰청장과 일문일답」제하의 기사와 그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신문사’에서 간행한『신천지』 제3권 제7호(1948년 8월)에 실린「현지보고 ― 유혈의 제주도」라는 제목의 ‘르포’기사에 등장한다. 현지보고 형식의 이 기사는 6월 초에 제주도에 파견된 『조선통신』 특파원 조덕송 기자가 쓴 것이다.
『조선중앙일보』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행(주: 대구 법조기자단 일행)이 다시 제주도 경찰청장 김봉호(金鳳昊)씨를 찾아 본도 난(亂)에 관하여 일문일답 하였다.
(문) 금번 사건의 발생원인은 무엇인가?
(답) 대요(大要)해서 세 가지 있다고 본다.(1)과거 경찰관의 도민에 대한 비행 (2)관공리의 악질배 도량(跳粱) (3)모당(某黨) 모략에 주민이 선동되고 있는 것.
(…중략…)
(문) 산사람들측의 요구조건은 무엇인가?
(답) 그들이 산에서『혈서(血書)』(주2)라는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데 그 신문을 통해 보면 요구조건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본다.(1) 경찰관의 무장해제 (2) 단정반대의 자유 허여(許與)(3) 일체 사설단체의 즉시 해산 (4)제주도내에 모든 행정관리의 기용은 풍속과 관습을 이해하는 본 도민으로 하라는 것 등이다.
(…중략…)
(문) 사태 수습에 어떠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가.
(답) (1) 비행경관의 내부숙청을 단행하고 있다. (2) 최소수의 폭도를 체포하는데 최대다수의 양민을 희생하는 우책(愚策)을 쓰지 않겠다. (3) 모당의 선전술에 주민이 재차 선동되지 않도록 민주경찰의 본의를 주민에게 선무하며 경찰관이 주민에게 쌀 한 알, 계란 한 개라도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하 생략)
『신천지』 제3권 제7호(1948년 8월)(87∼96쪽)에 실린 ‘르포’기사는 『혈서』와 관련 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경비대가 전투행동을 개시한 것은 4월 27일 그동안 삐라로 회견으로 수차 폭도배(暴徒輩)의 귀순을 권고하였으나 이에 불응하는 폭도측은 도리어 血書와 血(주: ?/凶)器로 권고(勸告)에 회답하고 있다
친애하는 장병 제형이여! 제형의 민족적 양심과 정의에 불타는 올바른 행동을 우리들은 믿노라. (중략) 왜 우리들이 총대를 메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우리들에게 무력의 도전과 만행을 그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백만 명이 오더라도 불사하고 싸울 것이다. (중략) 친애하는 제형들이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다음에 우리들의 정당한 요구를 제시하노라.
― 무장경관대의 즉각 해산
― 사설 테러단체의 해산과 처벌
― 도지사 유해진(柳海辰) 즉시 파면하라
― UN조위(朝委) 철거
― 미·소 양군 즉시 철퇴
― 단정반대
― 남북통일 정부 수립 절대추진(하략)
이상의 귀순권고에 대한 폭도측의 회답요지이다(89쪽).
두 개의 기사 내용을 종합해 보면, 『조선중앙일보』와 『신천지』에 등장하는 『혈서』는 같은 삐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두개의 기사에 등장하는 삐라의 내용 ― △ 무장경관대의 즉각 해산 △ 사설 테러단체의 해산 △ 단정반대 또는 단정반대의 자유 허여(許與) 등 ―이다.
그리고 이 『혈서』에 5·10 ‘단선반대’ 구호는 빠지고 △ ‘단정반대’와 △ ‘도지사 유해진 즉시 파면하라’는 요구 사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삐라는 5·10 단독선거이후부터 6월 19일 유해진 도지사의 경질 소식이 발표되기 이전에 모슬포 주둔 국방경비대 안팎에 살포되었던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유 지사의 해임소식은 6월 19일 미군정청 공보원에서 항공기로 제주도내에 대량 살포한 5000부의 호외를 통해서 알려진다. 호외를 보면 그는 6월 3일자로 이미 해임되었지만 그 소식은 뒤늦게 알려진다. 이 『혈서』 전후로 어떤 내용의 삐라들이 몇 호나 더 제작 살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영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주>
주1) 6·25한국전쟁당시 유엔군 총사령부에서 제작 살포했던 삐라가운데 제호가 달린 삐라의 예를 들면, 『자유세계 주간신보』, 『낙하산 뉴스』, 『재건화보』 등이 있다. 『자유세계 주간신보』를 보면 한 장에 5-6개 뉴스를 싣고 있다(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 연구소, 2000).
주2) 여기서 나오는『血書』(혈서)는 자기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쓴 글이 아니라, 남로당 제주도당 산하 여러 선전부에서 간행 살포했던 제호 달린 삐라들 가운데 한 개의 명칭을 말한다. 同기자는 血器(또는 凶 ?)라는 단어를 무슨 의미로 썼는지 모르지만, 경비대의 귀순권고 삐라에 무장대가 이에 대응해 삐라와 각종 무기로 토벌대에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영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필자) 약력
2023년 7월 현재 그는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언론홍보학과)로 활동중이고, 2019년 12월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언론ㆍ출판부문)’을 수상한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제주언론 돌아보기1>, <제주언론의 보도방식과 수용자>(공저), <언론이 변해야 지역이 산다: 지역언론의 정체성과 과제>, <브랜드 홍보론>(공저), <고영철 사회비평집: 구라(口羅)>, <지역신문정책과 지원효과>(공저)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캠페인관련 뉴스 프레임 및 뉴스정보의 출처에 관한 연구: 국내 5대 일간지의 세계7대 자연경관선정캠페인 보도를 중심으로” , “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가?-제주신보 김호진 편집국장과 인민군사령관 이덕구 명의의 삐라인쇄사건 기록을 중심으로”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