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또 돌고, 50번 완주...그는 왜 올레길에 푹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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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또 돌고, 50번 완주...그는 왜 올레길에 푹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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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25) 올레길을 오십 번 완주한 사나이 오세흥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미국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올레꾼들

제주올레 걷기 축제가 장장 26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11월 16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에도 단골처럼 매년 나타나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참가자도 많았다. 20, 30세대가 확연하게 늘어난 게 눈에 띄었고, 특이한 참가자도 많았다. 나는 축제 기간 가능하면 길 위에서 서로 다른 참가자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참가했기에, 참가자들의 사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더러 있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3년 전, 20년 만에 귀국한 재미교포가 일주일 제주여행을 왔다가 예정에도 없이 올레길을 완주하고 돌아갔다가 축제 소식을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 접하고 축제 완주를 위해 다시 오기도 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만났던 풍경이 자꾸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단다. 주말마다 골프를 함께 치는 미국 친구가 미국에도 트레일이 있는데 왜 굳이 비싼 비행기 삯과 코로나 19로 인한 번거로운 절차를 무릅쓰고 한국, 그것도 남쪽 섬으로 걸으러 가느냐고 의아해하더란다. 그래서 그는 그냥 덤덤하게 대답했단다. “당신은 몰라, 이곳에 없는 게 그곳엔 있거든.”

그를 비롯해 수많은 인상적인 축제 참가자들을 만났지만, 그중 단연 화제의 중심은 이 남자였다. 이번 축제 완주로 6년 만에 올레길을 50번이나 완주한 오세흥 씨. 이 전설의 올레꾼 이야기는 사무국 스태프들에게서도 48번째 완주중인 최기선 씨-이미 올레 스토리에 소개한 바 있는-를 통해서도 두어 해 전부터 듣고 있었다. 50번 완주를 목표로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육지에서 내려와서 걷는 중년 남자가 있다는 것을.

그런 그를 길 위에서 만난 건 순전히 ‘자갈치 아지매’들 덕분이었다. 부산 출신의 절친 세 여자는 올레 초창기부터 개장행사, 올레축제, 규슈올레나 몽골올레 같은 해외 올레 여행 때마다 늘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그때마다 약간 억세면서도 귀여운 부산 억양으로 얼마나 즐겁고 해맑게 떠들어대는지 나는 그녀들에게 ‘자갈치 아지매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카톡으로 안부 인사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번 축제에도 며칠간 참가한다는 그녀들의 소식을 받고,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들이 걷는다는 17코스 도두봉 앞으로 갔다. 그녀들을 만나서 반갑게 얼싸안고 그간의 안부를 묻던 중, 순임 씨가 한 남자 곁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말로만 듣던 그 전설의 올레꾼이었다. 이번에 축제를 끝내고 나서 섬 3곳을 돌고 나면 ‘인생 버킷 리스트’였던 제주올레 50번째 완주를 달성하게 된다는 게 자갈치 아지매의 설명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말없이 빙그레 웃을 뿐.

#정년퇴직 후 택한 농부 생활, 그리고 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주올레 50번 완주! 사실 길을 처음 내기 시작한 나,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도 그 모든 코스를 50번씩 다 걷지는 못했다. 1코스처럼 개장 전에 47번이나 가본 곳도 있지만, 추자도처럼 대여섯 번도 못 가본 곳도 있으니. 17코스 후반부 해안 길을 걸으면서 슬쩍 탐문한 결과, 그가 사는 곳은 경기도 안성, 정년퇴직 후에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단다. 뜻밖이었다. 대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요, 전원생활에 농사까지 짓는다면 자연은 충분히 만끽하고 살 텐데 굳이 제주도까지,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수백 번이나. 그의 사연이 더더욱 궁금했지만, 어느새 길은 끝나고 말았기에, 다음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그를 다시 만난 건 축제가 끝나고 일주일쯤 흐른 뒤였다. 오십번 완주한 그분이 오후 3시에 완주증을 받으러 제주올레 센터로 온다는 연락이 사무국으로부터 왔다.

길을 낸 여자가 직접 완주증을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부랴부랴 시간에 맞춰 센터로 갔더니 그는 이미 지인들과 함께 와 있었다.

조용히 혼자서 여느 올레꾼처럼 완주증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 사실을 안 한 스태프가 여기저기 소문을 냈단다. 그는 매우 쑥스러워하면서도 한달음에 달려온 제주도내 올레궨당(친척을 일컫는 제주어)들의 응원에 ‘내가 인심을 잃고 살지는 않은 모양’이라면서 흐뭇해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오십 번째 완주를 이룬 만큼 이 길을 그토록 열심히 걸은 그의 사연이 궁금했고, 그 사연을 올레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에게는 그 어떤 극적인 사연도 없었고 기막힌 인연도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무척 심심하고도 담담한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아,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야말로 그의 깊은 내공을 보여주는 것이자 올레길의 엄청난 매력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1952년생인 오세흥 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단다. 한 살 때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내내 서울에서 성장하고 졸업 후에는 은행 직원으로 33년간이나 일했더란다. 사무실에서 숫자와 싸우는 직업을 33년이나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을 그를 상상해봤다. 그에게 물었다. “그런 분이 왜 귀촌, 귀향을 결심하셨나요? 생전 흙 한번 안 묻혀보고 서류만 들추고 살았던 분이?” 그는 대답했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남은 생을 지내고 싶어서요. 그리고 농사일은 정년이 따로 없으니까요.”

귀농 직후 곧바로 올레길을 걸은 건 아니었단다. 도시 사람들이 귀농 귀촌해서 대충대충 하면 지역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이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고향이라고는 하나 친척 하나 없는 60년 만의 귀향이었기에, 5년 동안은 해 뜨면 논과 밭으로 출근하고 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그제서야 비로소 동네분들이 아는 척 말을 건네고, 이웃으로 여기는 눈치 더란다. 어느 시점에서 그는 말을 꺼냈더란다. 이제부터 제주도를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해서 집을 자주 비울 텐데 그래도 되겠느냐고. 동네분들이 아이고, 괜찮다고 하더란다.

2011년 농사일에 함께 매진해온 부인과 제주에서 꿈꾸던 한 달 살이를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올레길을 걸은 건 아니란다. “자전거로 아내와 함께 제주도 일주를 네 번 했어요. 근데 아내가 너무 불안해 보이더라고요. 언덕도, 커브도, 찻길과도 너무 겹치고. 그러던 중 방송 매스컴에서 많이 봤던 올레길이 떠올라 올레길을 걷자 생각한 거지요.”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그들 부부가 맨 처음 걸은 길은 5코스. 길에서 보이는 제주의 속살 풍경에도, 표식의 정성스러움에도, 안정적인 길 관리에도 감동을 크게 받았더란다. 그래서 5코스 안내소에 들러 현금으로 후원금을 냈더니 그런 일이 처음인지 깜짝 놀라더란다.

그는 지금도 걸을 때마다 초보 올레꾼이나 오래 걸었지만 올레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올레꾼들에게 제주올레가 도청이나 시청이 만든 길을 관리하는 길도 아니고 전적으로 사단법인이 어렵사리 내고 정성껏 관리하는 길이라는 걸 누누이 설명하고 다닌단다. 스탬프 간세를 후원한 것도, 패스포트를 오십 차례나 꼬박꼬박 산 것도, 본인에게 기념도 되거니와 후원이나 패스포트 구입 자체가 올레 운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것을 꺼내어 물었다. 대도시도 아니고 전원 지역인 안성에 살면서도 그리 자주 올레길을 찾는 이유가 뭔지를. 그가 대답했다. “안성 저희 집 바로 뒤에도 등산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몇 차례 걸으면 식상해요. 그런데 제주 올레길은 한 달 내내 걸어도 매번 새로워요.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동행에 따라 같은 길도 달리 느껴지고요. 어떨 때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삼일 만에 다시 제주로 내려오기도 하죠.”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주를 하도 자주 찾다 보니 농사 작목마저 바꾸게 되었단다. 올레 이전에는 엽채류와 벼농사를 지었지만, 올레 이후에는 손이 덜 가는 고추, 마늘, 양파를 주로 재배한단다. 참, 남편인 오세흥 씨만 여러 차례 완주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부인도 종종 제주행에 동행하기에 10차례나 완주했단다.

“제 아내는 다른 취미도 있어서요. 전 오직 걷기뿐이거든요.” 은행 일이든, 벼농사든, 올레든. 그는 뭐든지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인 듯하다. “처음엔 50번 완주가 꿈이긴 하지만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싶었는데 6년 만에 이뤘네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두 다리에 힘이 있는 한 올레를 찾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100번 완주도 하게 될는지 누가 압니까. 허허.”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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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심 2021-11-30 10:36:55 | 118.***.***.3
5번도 완주 어려운데 50번이나 완주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걷기에 게으른 1인으로서 도전에 동기 부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