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공포', 조강지차(糟糠之車)를 뒤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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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공포', 조강지차(糟糠之車)를 뒤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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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4) 속도에 대하여

그날 난 음주운전을 했다
눈이 펑펑 눈보라로 몰아치는 날
이런 날씨에 대한민국 교통경찰이 검문을 한다면 당연히
무한한 존경심으로 딱지를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나는 거나하게 음주를 하고 당연하게 운전을 했다
양보하면 양보를 받고
새치기하면 새치기 당하는 것이 순리이고
음주운전은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항변을
나는 의당 무시하고 십수 년 운전 실력으로 당당히 더 달린다
92년식 그레이스 6인승 봉고차
나의 조강지차(糟糠之車)는 여전히 달린다
잔 고장과 크고 작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가자는 대로 간다
그러나 이제 16만 킬로미터 주행이니 앞으로 몇 년이나 버틸까
차는 1년에 한번 씩 정기검사라도 받는데
그러면 나는 43년 동안 건강검진 한 번 안 받고
경유만 받아먹으면 잘 굴러가는 차처럼
술이나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면 나는 또 얼마나 버틸까
이제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릴 나이
요즘은 내 차와 내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잔 고장에 시달리고 있다
웬만한 접촉사고는 카센터에 가지도 않는 내 차처럼
나도 그렇게 병을 참으며 살아가는가
내 삶의 운전대는
내가 가기로 작심한 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덜덜거리는 고물차를 몰고 서둘러 출근을 한다
외관에는 의연해버린 제 주인처럼 내 차는
구질구질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주차장 한 칸 당당히 차지한다
- 졸시, 「운전에 대하여」 전문

지난 주에 차 사고를 당한 후 일주일째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차 운전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운전을 하면서 흔히 경험을 하는 과속과 추월, 그 말이 지니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요즘 그 ‘속도’에 대해 일종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번의 교통사고로 체득한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속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고 1
회천 자동차검사소 사거리. 새벽 시간이라 신호등도 멈추어 있다. 한라산 방향에서 내려오는 트럭과 서쪽으로 직진하는 내 차가 충돌했다. 내 차가 세 바퀴 정도 회전하며 튕겨져 나갔다. 옆 좌석에 앉은 아내가 의식을 잃었다. 분명 운전석 쪽으로 부딪쳤는데 나는 찰과상만 약간 입 었을 뿐 멀쩡했다. 견적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 차는 폐차됐다.

사고 2
표선면 세화2리 들판. 어스름 저녁 무렵. 볼 일이 있어 평소보다 좀 더 밟았는데 급커브 길에 서 차가 전복됐다. 다행히 안전띠를 매고 있었는데, 차가 두 번 전복되어 천정에 동동 매달린 때 ‘아, 이 정도로는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에 확 불이 붙 었다. 몇 분 빨리 가려다가 몇 시간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3
교래리 내리막 길. 콩밭에 농약을 치려고 세렉스에 100말들이 통에 물을 잔뜩 싣고 가는데 내 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제멋대로 지그재그로 가다가 길옆 도랑에 추락했다. 폐차 수준으로 차가 박살나고 물통이 깨져 주위에 물이 벙벙했다. 문을 열고 기어 나오자 뒤따라 오던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멍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이러니, 저가 속도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는 건 당연합니다. 과속과 추월을 즐겨 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이렇게 피해를 경험한 후에야, ‘지가 겪어봐야’ 나옵니다. 이제는 시속 60km만 넘어가면 두 손으로 핸들을 꼭 부여잡게 됩니다. 마치 운전을 처음 시작하는 아줌마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저는 ‘속도’에서 이탈하여 ‘빠른 직선’에서 ‘느린 곡선’의 삶으로 서서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속도’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성장의 신화를 만드느라 엄청난 ‘속도전쟁’으로 치달아왔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수백 년 걸쳐서 이루어낸 일을 수십 년만에 뚝딱 이루어내고 그걸 자랑삼아 말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속도’는 ‘빨리빨리’라는 다급한 환상으로 우리의 정신과 몸에까지 침투하여 알게 모르게 우리를 중독시켜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선대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돈을 버는 기계와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근대화’가 된 이후에는 우리는 여전히 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따지거나 인생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눈앞의 목표만 보며 무한질주해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과속과 추월을 일삼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새치기’도 합리화하고 ‘음주운전’도 하며 교통법규도 적당히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돈을 벌고 빠르게 출세하기 위해 질주를 하는 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폐해만 남을 뿐입니다. 그 폐해가 한국사회에 이제 만연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빨리빨리’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절단되고 건물이 무너지기가 예사입니다. 또한 ‘빨리빨리’ 자연을 훼손하고,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든 자원을 낭비하는 바람에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인간성이나 공동체는 파괴되었습니다.


보다 높게 멀리 빠르게
살면
얼마나

보다 낮게 가깝게 느리게
천천히

같이
숨쉬며
비우며
- 졸시 「느리게 삽시다」 전문

이제, 느리게 사는 삶을 생각합니다. 빠름의 수직적인 상승이 아니라 느림의 수평적인 완강, 그 ‘자유로운 영혼’으로써의 삶을 생각합니다. 탐욕과 탕진의 무한경쟁을 버리고, 나눔과 베풂의 공동체의 삶을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질박함을 껴안으며, 사사로움과 욕심을 적게 하는’ 그런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희구가 이제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의 차 대신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 가던 것과는 달리 유유자적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버스나 기차여행을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를 놔두고 올레길을 걷는 것인가 봅니다. 버스의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운전에 대해 생각합니다.

몇 분 먼저 가려고 신호위반에 과속과 추월을 예사로 하고, 더디 가는 차에게 더러 욕도 하고 끼어드는 차 저주하면서 도달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무작정 앞만 보며 저돌적으로 전진하지 말고 가끔 곁눈질도 하고 뒤도 돌아보며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안 될까요? 차량번호로 사람들의 전화번호 생각하며 사람 얼굴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가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그러다가 곁눈질이 과하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 운전에 소홀하지는 마십시오. 사고는 저가 책임 못 집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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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살아 2011-07-07 10:34:19 | 59.***.***.65
좋은 세상을 보려면 건강하셔야 됩니다.느림의 미학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