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 앞길도 밝혀주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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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 앞길도 밝혀주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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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9) 되살아오는 유월

6월입니다. 이 6월엔 현충일과 6・25사변일이 있지만, 아무래도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 더 가깝게 와 닿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은 6월항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독재 타도! 민주 쟁취!’의 그 함성이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듯 합니다. 아래의 시는 ‘서귀포 6월민주항쟁 정신계승사업회’ 결성 때 부친 시입니다.

그날 우리는 보았다
그날 우리는 똑똑히 두 눈으로 보았다
그날 우리는 가슴으로 온몸으로 드디어 보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거대한 함성으로
분노로 일렁거리는 팔뚝의 날갯짓으로
저 멀리서부터 구름이 걷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을 보았다

남도의 서귀포에서부터 서울 한복판까지
한반도는 한 하늘이었다
두려워 떨쳐나서지 못했던 무기력을 벗고
오직 광장으로 내닫던 그 함성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 모두 하나의 하늘이었다

그 하늘이 이제 다시 가리워지고 있다
그 하늘이 이제 다시 시커먼 먹구름으로 가리워지고 있다
권력 명예 재산 가질 것 다 가졌다고 자부하면서
그걸 휘두르는 자들에 의해 하늘이 거멓게 덮여지고 있다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에서 기득권 가진 자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가진 것을 더 배불렸다
힘깨나 있고 똥깨나 뀌는 자들에 의해
가진 없는 사람들은 그나마 있던 목숨마저 빼앗겨야 했다

그러나 보아라
‘시간관계상 그 외 거명하지 못한 사람들’이
진짜로 주인 되는 그런 세상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의로운 투쟁으로
진보하고 발전한다

우리가 6월의 거리에서, 눈물로 감격으로 보았던 그 잠깐의 세상
바로 그렇다 그 세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손에 손에 촛불을 밝혀든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 하늘을 불러 온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이다 사람이다 진정이다

단 한 명이라도 시작이다
그 촛불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하늘을 떠받치는 초석을 다진다
그렇다 변혁은 다만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내재한 이런 의미와 가치를 되찾는 것이다

강요된 거짓 차렷이 아니라 자발적 절제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 감동이 세상을 살찌우는 내재적 혁명이다
간직할 소중한 의미와 인간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다

그것이 그 모든 사람들이 보았던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그 하늘이 그런 사람들에 의해 열리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6월의 하늘이 다시 열리고 있다
- 졸시, 「그날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 전문

87년 6월항쟁에서 저는 지도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위 지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깜냥이 변변치 못하여 그냥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 뒷전에서 궂은 일 조금 한 정도입니다. 81학번인 저는 어찌어찌 1987년도에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해서도 별 직장없이 어슬렁거리다가 덜컥 취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저의 지도교수께서 북제주군청 공보실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호의를 아주 고스란히 무시해버리는 몰염치와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1987년 6월의 일이었습니다. 첫 출근을 해서 인사를 하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한 후 다시 거리로 나왔는데 어디선가 둥둥 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좇아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중앙성당 마당에서 진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성당 한복판에서 굿이라니…….' 아마 정모 형이 민주열사 추모굿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굿판은 자연스럽게 투쟁판으로 이어졌고 종국에는 성당 2층을 점거농성하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출근 하루 만에 점거농성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 "지금 국가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상태에 이르렀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직장을 가질 수 없다. 나도 오늘 이 순간부터 농성에 동참하겠다!"고 똥폼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진 좋다고 쳐도 그후엔 자기 말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터. 다음 날부터는 무단결근으로 자동실직 되었으니 그야말로 하루살이 공무원이었던 셈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해 8월경에 「제주문화운동협의회」가 창립되면서 저는 그 산하의 「놀이패 한라산」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마당극 '그날 이후'라는 창립공연을 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라산 한 자리에 서 있는 걸 보면 저도 어지간히 질기긴 질긴 놈인가 봅니다. 그렇게 87년 6월의 경험은 저의 인생과 예술에 커다란 전환기가 된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박정희보다 더 한 폭압의 정치가 지긋지긋하게 오래 갈 것 같이 뻗대던 전두환 정권이 그렇게 민중의 힘에 의해 몰락하는 것을 보며 어찌 저 혼자 감격에 겨워했겠습니까마는, 민중들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활화산 같이 '빛나는 하늘'을 본 것은 저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투명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한 개인에게 영향력을 주었는데, 우리 민중들에게 준 파급력은 어떻게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할 겁니다.

먼저 가신 이들이여
이제 이리로 오십서
눈물로는 오지 마십서
한숨으로도 오지 마십서
분노가 진실한 정의가 되게
참 생명의 희망으로 오십서

다시 살아올 이들이여
우리에게 고운 꿈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허십서
인간세상 하직한 먼저 가신이들이여
이 어두운 세상 빛으로 밝혀주십서
살아남은 자 앞길도 밝혀주십서
- 졸시, 「참 생명의 희망으로 오십서」 중에서

그러나 현실은, ‘먼저 가신’ 열사들의 목숨으로 이룬 민주주의가 참담하게 짓밟히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올’ 선열들의 위대한 귀환은 못된 세력들의 준동 때문에 더욱 미뤄지고 있습니다. 6월항쟁으로 일궈낸 고귀한 민주주의가 독재시절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먹통과 불통의 산성을 둘러쌓고 일방적인 강요만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민중들의 의로운 투쟁으로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말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민주주의의 하늘이 다시 그들에 의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열리리라는 것을,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 밀어붙이기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비민주 반민족 매국노들에게 6월의 활짝 열린 하늘의 맑고맑은 빛의 심판이 내려지리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되살아오는 유월로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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