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개털과 뱁새들이여, '명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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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개털과 뱁새들이여, '명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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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1) 소위 '명품'에 대하여

천만 원짜리 입어도
더 더

영혼마저 탕진하는
꽃무늬 걸레들의

부유방분(浮游放糞)


만 원짜리 걸쳐도
널 널

마음마저 내려놓는
주럭 허우대의

유사자향(有麝自香)
-졸시, 「소위 '명품'에 대하여」 전문


‘명품(名品)’이라는 말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으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명품’에 대한 저의 견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이 명품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명품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당의정(糖衣錠) 같은 포장과 그 허장성세를 지극히 혐오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술가나 장인(匠人)의 혼이 스며든 최고의 작품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치품’이거나 ‘호화상품’이라는 의미를 교묘히 포장해서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놓은데 있습니다. 그것에 현혹되어 목매다는 작금의 소비풍조에 있습니다. (앞으로 사용하는 명품이라는 용어는 ‘고가의 호화 사치품’의 의미입니다.)

구찌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아르마니 재킷 같은 명품 하나쯤은 입어야 체면이 선다고 믿는 소위 명품 신드롬 증세가 우리 사회를 뒤덮은 지 꽤 되었습니다. 꼭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남들 가지면 나도 하나쯤’ 명품을 가지려 합니다. 남이 가지니 나도 가져야 한다는 동조심리가 작용되는 것이지요.

진중권은 “명품은 상류층이 자신을 하류층과 구별하는 기호적 행위의 매체다.”라고 했습니다. 상류층이라는 인종들, 특히 재벌가의 유한부인들이 명품으로 치장하면서 또한 자신들의 부의 축적을 위해 명품 시장을 키우고 있습니다. 범털이거나 황새를 자처하는 그들을 쫓아가는 일반 개털이나 뱁새들도 명품을 가짐으로써 자신도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쫓아 카드빚을 내면서까지 구입을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천박성은 남들이 수 백년 걸려서 이룬 일을 불과 몇십 년만에 속도전으로 이뤄낸 데 따른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영혼은 황폐화되고 물질만 과도하게 풍성한 비루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참된 삶의 가치가 영혼의 추구나 공동체성의 함양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나 자기과시를 위한 외향적 가치만 일그러지게 만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소위 명품 열풍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동문시장에서 산 바지 1만원
오일장에서 산 개량한복 윗도리 1만 2천원
마트에서 산 운동화 1만4천5백원
허리띠 6천원
빤스 3천원
난닝구 2천원
양말 1천원

내 몸을 걸치고 있는 표피의 값은 4만8천5백원이다
그건 나에 의해 규정지어진 외부의 평가 값이다

하지만, 옷을 주워다 입고 기워서 입는
전 선생에 비하면 나는 아직 부르주와지다

유행을 따르면 자만심이 커지고 동료의식은 줄어든다*
나의 값은 더욱 싸져야 하고 내 속은 더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졸시, 「나의 값, 요즘의 소위 명품족들과 비교해서」 전문

* 라다크의 변화에 대한 글에서, 노르부, 열살


한강 인공섬에서 모피 패션쇼가 열리던 그 시간에 광화문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라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부자의 특권을 상징하는 명품과 생활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등록금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민들에게 명품의 유혹은 또 하나의 절망일 뿐입니다.

그 절망을 한탄하기에 앞서, 명품을 탐하고 부러워할 시간이 있으면, 잠시 외면을 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부각부각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명품이라는 괴물의 도전 앞에 우리가 응전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상류층들의 유명기업들이 퍼뜨려놓은 허영병에 감염되는 것은 아닌지. 알량한 허례허식 때문에 그들이 쳐 놓은 상술의 함정에 빠져드는 팔푼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명품이든 뭐든 결국 자본제가 만들어놓은 상품의 하나일 뿐입니다. 진정한 명품이나 명작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장인이나 예술가의 혼이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상품과 구별되는 가장 의미있는 가치의 잣대는 바로 혼입니다. 혼을 다한 노력을 결코 배신당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 혼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설마 명품을 위해 당신의 ‘영혼마저 탕진’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이 시대의 모든 개털과 뱁새들에게 다음의 한시를 바칩니다. ‘부유방분’하는 ‘꽃무늬 걸레’ 같은 소위 상류층들의 뒤를 쫓지 말고, ‘주럭 허우대’일지언정 ‘마음마저 내려놓’으며 스스로의 향기를 찾기를 바라면서요. 이 시대의 ‘생활의 달인’이자 ‘명품’이 바로 당신 자신의 혼이라는 것을 가슴속에 새기길 바라면서요.

방복은명주(蚌腹隱明珠) 조개 속에 진주가 들어 있듯
석중장벽옥(石中藏碧玉) 돌 속에 푸른 옥이 감춰져 있듯
유사자연향(有麝自然香) 사향 지녀 절로 향기가 나는데
하필당풍립(何必當風立) 하필 바람 앞에 서야 하리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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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2011-06-16 09:20:39 | 211.***.***.2
김경훈 시인의 글은 언제 읽어도 시원하고 맛갈스럽습니다
우아한 막창의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