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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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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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3) 분노하라!

오늘 새벽에 대문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나가 봤더니, 글쎄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저의 차를 완전히 박살내고는 감쪽같이 달아나버렸습니다. 간간이 흩뿌리는 빗방울 속에 잠이 싹 달아나면서 분노가 확 밀려왔습니다. ‘이놈을 잡고야 말리라’고 쓰레빠를 신은 채 동네 주변을 뛰어다녀도 당연히 허탕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화가 치밀려 와서 혼자 분노하고 혼자 발광하고 혼자 분개하고 혼자 지랄을 떨었습니다.

“도대체가 말이야, 인간들이 말이야,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야, 사고를 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하고 차를 제대로 고쳐줘야 할 게 아니냔 말이야, 사람이 안 본다고 뺑소니 도망치면 그게 다야, 도대체가 말이야, 세상 온통 인간답지 않은 것들뿐이니 말이야, 에이, 아침부터 재수 뭐 같네!” 작다면 작은 일이고 크다면 큰일인데, 분을 삭이지 못해 애꿎은 저의 차만 발길질을 당했습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로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위의 시는 5・16군사정변으로 세워진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바른 말 하지 못하고 숨어서 살 수 밖에 없는 시인 자신을 자학하는 시입니다. '모래'나 ‘바람’, '먼지'와 '풀'에게도 ‘나는 얼마큼 적으냐’고 질문을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적음’을 한탄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적음’에 대해서 역설적으로 힐난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이 말은 ‘사적인 분기憤氣’인 사분私憤이 아니라 ‘공적인 의분義憤’인 공분公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사로운 개인적 분기가 아니라 좀 덩치가 큰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를 일깨워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옹졸하게 욕을 하고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분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분노하라!’ 이 말은 2차대전 당시 반 나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프랑스의 노투사 스테판 에셀의 외침입니다. 그가 말하는 분노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 등에 맞서서 분노하고 참여하고 저항하고 평화적으로 봉기하라는 의미입니다.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 스탕스에 동참한 형제자매들의 희생과 파시즘의 야만에 맞선 여러 나라들의 단결 덕분에 나치 즘은 궤멸되었다. 그러나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 불의에 맞서는 우리의 분노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 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 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나는 여러분 모 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 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우리는 역시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 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중에서

다시금 ‘분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이 분노와 연관된 말들도 하나하나 생각해봅니다. 가령, 의분, 격분 공분, 사분, 울분, 분기, 노기, 분개 등등. 오늘 아침의 저의 분노는 당연히 개인적인 노기이자 분개이고 울분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분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성내는 마음, 곧 진심嗔心일 뿐입니다. 마음 수련으로 삭여야 하는 그런 것일 뿐이지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변영로의 시, 「논개」 중에서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박두진 작사, 「6・25의 노래」 중에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언제나 세상 모든 불의와 맞서
그대 분노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다!
-「체 게바라 어록」 중에서

이 분노의 최대의 적은 바로 무관심이라고 스테판 에셀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라고 말하는 방관자적인 태도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방관, 그것은 모든 개인이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세상을 뒤로 후퇴시키는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에서 이런 방관자적인 태도는 모든 침략과 압제에 대한 순응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조차도 상실하게 됨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약간의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면서 우리가 분노하고 참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존엄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촛불을 하나 들고 광장에 서서
파병 반대를 외치다
문득 어느 시인의 제안을 떠올린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과연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감수할 수 있는가
갑자기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오 바칠 게 없는
나의 가난한 행복이여
나의 옹졸한 평화주의여
아니다
시인의 몫은
단지 평화를 외치는 것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이여
나는 절필을 걸겠다
정치인이라면 정계은퇴라도 걸자
노동자라면 임금인상 파업이라도 유보라도 걸자
숭고함은 무엇인가를 감수할 때 탄생하는 것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조금만 불행해지자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조금만 아프게 살자.
-조기조 시인, 「감수한다는 것」

자동차 정비공업사로 견인된 차는 견적만도 저의 월급의 반이 넘는 액수가 나왔습니다. 에고, 하지만 돈이 죽지 사람이 죽겠습니까. 이제 저의 차를 박살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조금만 불행해지’고 그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조금만 아프게 살’아야겠습니다. 이제 개인적인 분기를 가라앉히고 ‘무엇인가를 감수할 때 탄생하는’ 그 ‘숭고함’을 위해 우선은 이 경제적 손실부터 ‘감수’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 울분이 다 삭여지지는 않은 것 같아, 술 한잔으로 석석한 가슴 달랠까 합니다. ‘5천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에게 옹졸한 분개도 좀 하면서 말입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술 마시고 싶은 때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거라’고 노래도 한 자락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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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우 2011-07-04 15:00:32 | 122.***.***.183
잘 읽었습니다. 위로를 보냅니다.^^

분노하라 2011-06-30 19:31:39 | 112.***.***.36
잘 읽고 갑니다.액땜했다고 여기시고 더 큰 분노로 보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