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이념에 빠진 감귤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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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이념에 빠진 감귤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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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감귤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시대흐름에 따라 새로워진 기술이 개발되어야 되고, 사람들도 인격수양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섬에 갇혀 있는 탓이지는 몰라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옛 것을 익히고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에 젖어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달라져야 된다는 의도에서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이 세계에 살면서 생존을 효과적으로 잘 도모하고, 자신만의 의미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가장 근본적으로 선진국의 사람들이 움직임을 알아채고 느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자기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주인행세를 하는 기존의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이다.

이미 있는 것들은 항상 주인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새로 전개되는 상황을 그 상황이 가지는 맥락 속에서 투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 있는 것들의 해석 체계로 받아들이게 해버리는 것이다. 이미 있는 것들은 사람을 콘크리트처럼 굳게 만들어 객관적이거나 투명하거나 청명한 태도로 세계와 관계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마치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성공기억이다. 성공기억이 너무 강하면 새로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그린 그것 자체의 맥락으로 보지 못하고 항상 성공했을 때의 그 맥락으로 보게 된다. 지난 시대의 기억으로 새 시대를 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두 번째 성공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념은 원래부터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것이다. 조작된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세계를 토양으로 해서 빚어진 것이다. 이념은 자신이 빚어진 실재하는 토양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념을 스스로 창조하지 않고 수입하거나 빌려 쓰이는 곳에서는 이 연관성을 상실한 채 사용한다. 이런 이념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 능력이 없으니까 우리 자신의 토양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것을 진리화해서 들여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개념의 구조로 실재의 세계를 제압하려는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진리로 취급되는 것은 죽어라 지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세계를 토양으로 해서 이념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세계와 이념 사이에 존재하는 유기적 연결 관계를 잘 알기 때문에 토양이나 환경이 변하면 이념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적인 수준의 느낌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정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이념을 수입한 사람들은 구체적인 세계와 이념 사이의 연결 고리를 모르기 때문에 토양과 환경이 변해도 이념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념을 바꿀 수 있는 비밀번호를 모르는 격이다. 죽어라 지키는 일만 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이념은 영원불변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꾸는 것을 변화로 바꾸지 못하고 변절이라고 비난만 할 뿐이다.

우리나라가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주자학을 들여와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할 때, 중국은 이미 명나라라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토양 속에서 양명학으로 넘어갈 때였다. 중국 송나라라는 특정한 토양에서 만들어진 주자학이라는 이념을 조선에 수입하여 사용한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냐 하면. 중국은 토양이 달라지니까 이념도 거기에 맞추어 변화시켰다. 조선은 어땠나요. 조선은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수입품으로서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변화시킬 능력이 없었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사용해야 할 어떤 것으로 있었지만, 조선인에게는 그것을 모셔야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국인에게는 주도권이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 있었지만, 조선인에게 주도권은 주자학이라는 이념에 있었던 것이다. 실재하는 구체적 현실 세계는 이제 실재적 존재성을 갖고 있지도 않은 이념에 의해서 제어되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념의 생산자들은 왜 자신들이 만든 이념을 변경할 수 있다고 했을까요. 그 사람들은 자기 토양에서, 자기의 구체적인 세계에서,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 지 안다.. 그런데 그것을 수입해 온 사람들은 비밀번호를 알 턱이 없다. 왜?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흠집 없이 지키는 데만 목을 맨다는 것이다.

오늘날 감귤에 대한 이념의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이다. 바로 자기가 제일 많이 안다는 것이다. 바로 선생이 많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이념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대개는 수입된 것인데 그것을 우리 토양에 맞게 변경시킬 힘을 우리가 차지 못한 것이다. 그건 뭐냐? 왜 힘을 갖지 못했느냐? 인문적 자아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자아란 무엇이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기억,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벗고 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오직 자기 자신만 남는다. 자기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자기로만 남은 이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꿈은 무엇일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어떤 폭으로 움직일까? 꿈꿔 볼 수 있다. 활동하는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상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존에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은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오직 부교재 내지 자료로서만 행세하게 된다.

자아가 이념이나 신념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변화하는 세계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아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념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본다. 보고 싶은 대로 본다. 하지만 보이는 대로 볼 수는 없게 된다. 인문적 통찰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었을 때 실현된다. 그래야만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이념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념을 보위하는 자가 아니라 내 실정에 맞게 이념을 수선할 수 있다.

남이 연주하는 음악만 기계적으로 흡수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쏙 들게 변주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우리 스스로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우리는 딱 여기까지일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타인이 만든 비전과 메시지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삶을 살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비전과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 수 있으려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토양에서부터 사유를 출발시켜야 한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 힘을 가져야 한다. 이론 먼저 문제 나중이 아니라, 문제 먼저 이론이 나중이어야 한다. 이런 것이 다 무엇과 관련이 있느냐 하면 상상력과 창의성이다. 주도적인 삶이다. 감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각자가 우리가 아니라 나로 존재하고 나로 활동해야 한다.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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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24-01-16 20:39:42 | 114.***.***.66
횡설수설. 님이나 잘하세요

도올 2023-12-24 09:14:15 | 211.***.***.57
미깡에 왠 빨갱이이념
니양반 사상이 오팔육인가

돌하루비 2023-12-21 16:29:25 | 211.***.***.57
이냥반 먼소리 하는지 알아먹는사롬 이싱가!
지성인이라는사람이.먼말인지 알아듣게 골아사


감귤사랑 2023-08-22 16:32:57 | 106.***.***.186
송.명 시대부터 끌어와야하는 문제인가?
"감귤산업 종사자가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감귤산업을 이끌어야한다"를 너무 어렵게 풀어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