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수형인 7명 재심, '무죄' 선고...70년 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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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수형인 7명 재심, '무죄' 선고...70년 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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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불법군사재판' 억울한 옥살이 2차 재심 선고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모진 고초...72년만에 명예회복
재판부 "이념의 굴레 씌워 실형 선고한 사건...굴레 벗겨지길"
4.3생존수형인 7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장병식 할아버지(사진 왼쪽)가 재판이 끝난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생존수형인 7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장병식 할아버지(사진 왼쪽)가 재판이 끝난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72년 전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투옥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구순의 4.3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21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열린 4.3생존수형인 7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불법군사재판 피해자는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의 김묘생 할머니(92. 서귀포시 성산읍)를 비롯해, 김영숙(90. 제주시), 김정추(89. 부산시), 송순희(95. 인천시) 할머니와 장병식(90. 서울) 할아버지, 그리고 지난 3월과 7월 타계한 고(故) 변연옥 할머니(향년 91세. 경기도 안양)와 고 송석진 할아버지(향년 94세. 일본 도쿄) 7명이다.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에 대한 무죄 선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재판에 김정추 할머니와 송순희 할머니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했다.

재판부는 선고 연기를 잠시 고심했으나 변호인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심신장애를 인정했고,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정상적으로 선고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는 '최초' 공소가 제기된 공소사실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은) 여러 사정으로 공소장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그 밖에 공소사실의 특정을 의심할 정황이 있다는 것만으로 검사의 공소제기에 관해 명확한 검증 없이 섣부르게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칫 재판이라는 사법작용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소제기는 사법작용의 하나인 만큼 단순 위법을 넘어 무효라는 판단에는 신중해야 하고, 객관적인 증거에 다른 명확한 자료가 없는 이상 섣불리 무효라고 판단할 수 없다"면서 "이 사건 공소제기 절차가 비록 위법하더라도 이를 넘어 무효에 이른다고까지는 바로 말하기 어렵다"며 공소기각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공소장에 제기된 행위를 피고인들이 저질렀는지를 봐야 하는데, 피고인들은 '그와 같은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검사가 이를 입증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어 무죄를 구형했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해방 직후 4.3사건 사건과 관련한 극심한 혼란기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념의 굴레를 씌워서 실형을 선고한 사건이라는 것"이라며 "국가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시기에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개인이 희생됐고, 그로 인해 피고인들의 삶은 피폐됐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와 유족들은 오랜 기간 연좌제 굴레에 갖혀 지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피해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피고인들이 국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몇 번을 곱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면서 "부디 이 판결로 피고인들의 굴레가 벗겨지고, 나아가 생존한 피고인들에게는 여생 동안 하루하루 평온한 삶이 이어지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묘생 할머니는 18살때인 1949년  표선면 가시리 마을 인근 동굴에 숨어있다가 잡혀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전주형무소로 끌려가 옥살이를 했다.

김영숙 할머니도 18살 때인 1948년 제주시 영평리에 부모님과 살다가 소개령으로 집이 불타면서 살 곳이 없어 제주시 남문통으로 내려왔다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김정추 할머니는 17살때인 1948년 서귀포시 하효 집에 있다가 동네 노인단장에게 끌려간 후 서귀포경찰서로 잡혀갔다. 조사과정에서 동네에서 해녀모집을 하면서 명단에 손도장을 찍은 것이 이유였다. 

고 변연옥 할머니는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신으로, 19살때 산에서 겨울을 나면서 장티푸스에 걸렸고, 봄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합류에 산에서 내려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전기고문을 받고 전무형무소로 수감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 송석진 할아버지는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출신으로, 22살때인 1948년 이유도 모른채 관덕정 쪽 경찰서로 끌려가 구금됐다가 목포형무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그는 배에 태우니 그때서야 형무소에 끌려간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순희 할머니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출신으로, 23살때인 1948년 겨울 딸을 업고 시어머니와 산에 피신해 있다가 토벌대에 잡혀 끌려간 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누명이 씌워진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장병식 할아버지는 제주시 이도동 한짓골 출신으로, 1948년 집에 가던 중 서북청년단에 의해 끌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구타를 당하고, 죄명도 모른채 인천형무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이러한 '억울한 옥살이' 내용은 검찰도 인정해, 지난 결심공판에서 모두에게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앞서, 일반재판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았던 김두황 할아버지(92)의 경우 지난 7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편, 4.3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의 '초사법적 처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민 4.3수형인은 약 25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일괄적 재심 및 명예회복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에는 불법군법회의를 통해 옥살이를 한 수형인 18명에 대해 전원 무죄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재심을 통해 무죄(공소기각 판결 포함)를 선고받은 수형인은 26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2500명의 수형인이 남아있고, 이들 대부분이 구순을 넘긴 고령이어서 불법 군법회의 판결의 무효화 또는 일괄적 재심 진행 등의 법적 조치가 필요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가 요구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자, 2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김묘생 할머니와 딸 정순애씨가 기뻐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자, 2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김묘생 할머니와 딸 정순애씨가 기뻐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자, 2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재심을 청구했던 4.3수형인들과 가족, 유족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자, 2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재심을 청구했던 4.3수형인들과 가족, 유족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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