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모든 시민에게 길은 평등하고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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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모든 시민에게 길은 평등하고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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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는 장애 남성이 연인인 여성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다. 함께 여행을 갔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장애 남성의 요구 때문에 한밤중 낯선 곳에서 편의점에 술을 사러 나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너무 무서워서이다. 현실적으로 장애인은 술이 먹고 싶거나 요기를 하고 싶어도 밖으로 나가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힘든 실정이다. 밤이든 낮이든 어렵다. 길은 휠체어가 다니기 어렵거나 성가시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단으로 된 건물에는 타인의 지원 없이는 갈 수가 없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은 누구든 어느 때든 접근할 수 있다는 증거처럼 빛을 발한다. 태풍이 불어오는 날에도 꺼지지 않는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누구든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인에겐 계단 하나 때문에 불가능한 곳이 많다. 그러니까 날씨와 시간과 상관없이 혼자서는 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여성에게는 어떠한가. 흔히 말해 ‘묻지마식 살인사건’으로 분류되는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혈연으로 가깝든 지인으로 살아왔든 가리지 않는 게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다. 그런 현실에서 여성에게 밤이란, 그것도 깊은 밤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위험에 위험을 동반한 결정적인 두려움이 되기 일쑤다. 그런 깊은 밤에, 그것도 낯선 곳에서 편의점을 이용한다는 것은 공포가 될 수 있다. 장애 남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매할 이 사회의 기초적인 소비자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여성은 밤의 시간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젠더권력으로 인해 박탈당했다.

가끔 보면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 재활용품을 리어카나 카트에 싣고 걸어가는 노인을 보게 된다. IMF를 거쳐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가계가 파탄 나고 가정이 무너진 빈곤의 현실에서 내 버려진 노인들이 찾아낸 경제 활동이 재활용품 수집인 경우가 많다. 리어카의 무게 자체가 상당하므로 리어카의 경우는 남성 노인이 끄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 노인은 카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난의 문법>(소준철, 푸른숲, p.165~166 참조)에서는 리어카의 무게는 보통 50~70kg,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에서 제공하는 경량리어카는 20~30kg 정도이고 여기에 폐지를 가득 실으면 200~400kg 내외라고 한다. 카트의 무게는 10~20kg이고 여기에 재활용품을 가득 실으면 100kg까지 가능하다. 이들이 짐을 끌 때 울퉁불퉁하고 입간판이나 불법 주차된 인도에서 좌우로 조정하며 제대로 끌고 나가기란 건강한 성인 남성의 힘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짐을 싣고 끌어야 하루 밥벌이가 될까 말까 하는 빈곤 노인들의 매일매일에 도로에서 짐을 끌게 돼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 공포보다 먹고 살지 못하게 될 공포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교통을 위협한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만으로 답이 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건강과 환경을 위해 자전거 타기를 권유하는 사회지만 실제로 자전거 도로를 보면 형편없다. 앞서 언급한 입간판으로 인해 위험하고 울퉁불퉁하고 끊기는 길, 때로는 불법 주차된 자동차로 인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길이 허다하다. 이런 길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가족에게도 위협적이고 불편한 길이다.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위험한 길인데 하물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야 친절할 수 있을까. 그런 환경에서 매연을 줄이고 시민의 건강을 위한다며 자전거를 권유하기엔 어이없는 현실이다. 입간판을 내는 가게도 마찬가로 힘든 현실이다. 입간판을 내 걸어서 어떻게든 장사를 해 먹고 살아야 하는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수많은 전시행정은 입간판을 규제한다고 한들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곧 추석이다 보니 요즘은 “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란 인사를 인상적으로 받고 있다. 이 말은 그만큼 명절의 상황에서 성별에 따라 평등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들이, 여성들이, 빈곤 노인들이, 환경운동가들이, 소상공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외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 평등하지 않은 현실을 상징하는 우리의 ‘길’은 반복해서 찬찬히 더듬어봐야 한다. 가로수를 아름답게 가꾸고 꽃을 조성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길이 아니다. 아름다운 길은, 모두가 평등하게 거닐 수 있는 길에서 비로소 빛살을 드리우지 않을까.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은 사람 프리즘'의 글은 <웹매거진_멍Mun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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