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맞잡은 손으로 연결된, 희망의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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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맞잡은 손으로 연결된, 희망의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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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가로수는 새잎을 틔우고 가지 꼭대기에서 연둣빛 나뭇 잎이 넘실댄다. 나무 아래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짙은 초록과 대비되는, 막 자라서 연약한 잎새들을 보면서 앞으로 더 무성해지고 결국 아래의 진초록의 나뭇잎과 색을 맞추게 될 시절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바람이 불어서 물결치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무섭게 내리쬐는 태양의 빛살에도 흔들리며 버티는 강인함을 본다. 나무들은 묵묵하다. 그곳이 숲이든 아니면 도로변 열악한 가로수로 살아가든 묵묵하게 자신의 생을 충실히 일궈나간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밀로 원두를 수동으로 갈아서 뜨거운 물로 내리고 커피를 마신다. 손으로 커피를 가는 행위가 귀찮기도 하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졸음을 몰아내고 정성껏 커피를 내리면 하루의 시작이 조금 경건해지는 것을 느낀다. 틈틈이 물을 마시고, 여름이니 얼음을 잔뜩 담은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내 창보다 아래인 가로수들을 내려다보는 것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말 없는 가로수는 반가운 듯 잎사귀를 새처럼 지저귄다. 새들도 지저귄다. 가끔 낮게 나는 새들의 배와 날개 아래를 볼 때도 있다. 도시 한복판의 삶에서도 자연의 경이를 본다. 나무와 새는 소란스러운 자동차 소리, 버스 소리, 오토바이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지만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지워내는 존재감으로 어우러져 비상한다.

바람이 불어서 창으로 스미었다가 나가는 모습을 창에 걸어둔 풍경소리와 커튼의 흔들림으로 먼저 바라보고 피부에 닿는 감촉에 눈을 감는다. 잠시 그대로 좋아서 하늘을 보면 때로는 구름 한 점 없지만 때로는 구름이 형체를 바꿔가며 푸른 공간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늘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망인 내게 무심히 멍하니 있게 하는 하늘은 그대로 좋다. 하늘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적막함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침묵하고 있으면 일상의 고요함이 내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이렇듯 삶의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별것 없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진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을 연결하게 된다. 서로의 연결됨을 인지하고부터는 최대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체로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 때도, 최대한 채식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완전한 실천은 못하더라도, 연결된 우리의 어딘가가 고장 나고 아파지고 있다면, 응당 그에 대한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음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고통받고 뜬 창에 갇혀 고기로서 존재하다가 세상 빛을 본 날 비인도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 숲이 베어지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기후 위기의 또 다른 세상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일터를 빼앗긴 노량진수산시장 사람들, 공간을 빼앗긴 세월호, 불안한 고용으로 생계가 막막한 고용유연화 정책에 희생된 노동자들, 지켜야 할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맨손바닥 발바닥으로 버텨 싸우는 활동가들, 많은 것에서 선택의 여지가 부족해서 강제되는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들, 그리고 모두 거론하지 못했으나 고통받으면서도 울면서도 씩씩하게 주먹 쥐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도 모두 연결돼 있다. 독일의 홍수가, 시베리아의 산불이, 브라질의 역대급 한파와 폭설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 혐오와 인종차별, 그로 인한 무수한 죽음들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없다.

연결된 이 고리 속에서 그 고리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어쩌면 바로 나부터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지평을 넓혀가는 일이고 그 속에서 어느 순간 마주 잡은 손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다시 나는 희망을 꿈꾼다. 연결된 우리로서 햇볕도, 나무도, 바람도, 새도, 케이지에 갇힌 동물도, 노동자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온갖 자연재해도 그걸 바라보며 손 놓고 남의 일이라 생각지 않고 어딘가 있을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미는 일. 시작의 사소함이 연대의 물결 속에서 큰 힘이 되는 것을, 나는 아직 꿈꾼다.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은 사람 프리즘'의 글은 <웹매거진_멍Mun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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