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거위' 막연한 환상 패인...사과 한마디 없이 '퉁'?
지방공기업인 제주관광공사 시내면세점이 160억원이라는 돈만 날린 채 4년만에 문을 닫았다.
제주관광공사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29일부로 시내면세점 특허를 반납하고 사업을 최종 종료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개점한지 4년만이다. 관광공사 시내면세점은 지난 2015년 특허경쟁에 뛰어들어 어렵게 따냈고, 2016년 중문관광단지 롯데호텔 제주에 개점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영업실적이 극도로 부진하자 2018년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로 이전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악화됐고, 지난해 12월 이사회 결의를 통해 '사업 포기' 수순을 밟아왔다.
한 마디로, 영업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사업 철회가 아니다. 시내면세점이 개점한 후 매년 4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4년간 적자액은 160억원에 이른다. 실제 누적 적자액은 26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엄청난 규모의 적자액은 고스란히 도민들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260억원이라는 도민의 소중한 혈세가 허무하게 소진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면세점 운영에 따른 여러 가지 제반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직.간접적 손실액은 이 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
참으로 허탈하기 그지 없다. 사업 실패도 이런 실패가 없다. 민간 사업이었다면 쫄딱 망한 풍비박산 수준이다.
그런데도, 제주관광공사 임원들은 태연스럽다. 23일 시내면세점 사업 철회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도 놀랍다.
기자회견은 제주관광공사 임원이 아닌 면세사업단장이 진행했다. 사업이 망해 문을 닫는다는 발표임에도, 임원 한명 배석하지 않았고, 흔한 사과 입장 밝히는 이 한명 없었다.
실무책임자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한 입장자료도 어처구니가 없다. 160억원이라는 적자, 엄청난 도민혈세를 낭비하는 영업손실을 본채 문을 닫게 됐음에도, 이 내용은 전혀 언급이 없다.
왜 사업에 실패했는지, 영업부진의 세부적 이유는 무엇인지도 명시되지 않았고, 영업손실액 구체적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입장자료에는 '코로나19 극복 지정면세점 집중' 타이틀로 해 시내면세점을 철수하는 이유를 지정면세점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처럼 덫칠했다. 과도한 뻔뻔스러움이 놀라울 따름이다.
실무책임자의 일문일답을 통해 누적 적자규모가 '160억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실 실패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변명 일관이다. 대기업 중심의 면세사업에서 지방공기업인 제주관광공사가 경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롯데나 신라 등 대기업 시내면세점과 비교해 브랜드 유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했고,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이 우리나라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단체관광객 방한 금지령을 내리면서 큰 타격을 입었던 점을 이유로 제시했다.
대기업에서는 소위 중국 보따리상을 일컫는 '따이공'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관광공사의 경우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할 수 없는 지방공기업이란 특성 때문에 고객유치에도 한계가 있었던 이유도 덧붙였다.
"4년여 해보니까 시내면세점 사업은 저희처럼 규모가 작은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문턱이 너무나 높은 그런 부분을 절감한 부분도 있다"고도 했다.
영업부진의 사유는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냈지만, 정작 시내면세점 사업에 뛰어들게 된 당시 판단이 적정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 부분은 짚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 애시당초 문제였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없다.
관광공사가 밝히고 있는 대기업과의 경쟁력, 브랜드 유치의 한계, 고객유치의 한계 등은 시내면세점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판단됐어야 할 부분이다.
리스크 요인에 대한 분석 및 대비를 확실히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 결정적 패인인 것이다.
당시 이 사업을 주도했던 책임자들은 160억원을 날리게 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내면세점 사업철회 기자회견은 철저히 도민들을 무시했다. 마치 지정면세점 사업과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업을 전환하는 것처럼 포장한 입장자료는 그야말로 도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행위에 다름없다.
사업에 실패했다면, 막대한 도민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임원과 이사 전원 사퇴는 못할 망정, 최소한 진솔한 반성, 사과 한 마디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는 관광공사 임원들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