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전통모자 '정동벌립' 명인이 전하는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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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전통모자 '정동벌립' 명인이 전하는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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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공예 대한명인 홍양숙씨의 '정동벌립' 전승 44년
"오랜시간 한땀 한땀 ...정동벌립은 시간과 정성의 산물"
ⓒ헤드라인제주
지난 14일 제주시 한라수목원 인근 카페에서 만난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현대사회의 핵심은 속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빠르게 앞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언제든 도태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 탓에 우리는 주변을 꼼꼼하게, 하나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가곤 한다.

반면 '빨리빨리' 문화를 거부하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제주도 정동공예 대한명인인 홍양숙(61) 씨다. 홍 명인은 정동(댕댕이덩굴)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엮어 제주도 전통 모자를 만드는 작업을 17살 때부터 해오고 있다. 작은 정동벌립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단 3개월, 최장 1년 2개월이다.

그녀는 지난 1977년 큰아버지 고(故) 홍만년 옹(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 정동벌립장 기능보유자)으로부터 정동벌립 기.예능을 전수받았다. 제주도무형문화재 제8호 전수교육사인 동시에 지난 2006년에는 정동공예 대한명인으로 지정됐다. 현재 그 기.예능을 며느리 한유리씨에게 전수하고 있다.

‘느림’이라는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길을 걷는 홍 명인. 그녀는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외길을 44년 동안 걷고 있지만 여전히 정동줄기를 잡을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샘 작업하기 일쑤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흐릿한 구름이 낀 지난 14일 제주시 한라수목원 인근 카페에서 홍 명인을 만나 44년을 ‘정동벌립’에 매진해온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연필 대신 정동줄기를 잡게 된 아이

정동벌립은 ‘정동’을 엮어 만든 제주도 전통 모자다. 여름부터 가을에 정동을 채취한 후 이슬을 맞혀가며 햇볕에 한 달 정도 말렸다가 물을 축여 부드럽게 해 엮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정한 틀이 없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오로지 생각과 손의 감각으로만 이뤄진다. 그래서 긴 시간을 인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억센 풀을 촘촘하게 짜다보면 손톱이 남아나지도 않는다. 이 모자는 사계절 내내 사용 가능하다. 세계인들의 눈길을 끄는 등 그 방식과 성격이 독특해 정동벌립 기능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지금은 박물관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됐지만 예전에는 동네마다 정동벌립 없는 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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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홍양숙 명인의 고향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도 한때 정동벌립 부업단지로 지정되는 등 정동벌립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큰아버지는 늘 초가지붕 위에 정동줄기를 널어 말리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린 홍 명인에겐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한 달 가량 낮에는 햇볕에 말리고 밤에는 이슬을 맞히면 정동의 초록빛이 고운 갈색으로 바랬다. 그녀는 긴 시간을 지루할 틈도 없이 넋 놓고 관찰하며 자랐다.

다섯 살 때 경찰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한 순간에 가장이 된 어머니는 공예재료가 필요했던 큰아버지에게 정동 줄기를 캐서 팔았다. 홍 명인은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큰아버지 댁을 찾았다. 그 곁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동줄기를 쥐며 놀았다. 큰아버지는 그 모습을 모른 채 하며 유심히 지켜봐왔다.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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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숙 명인와 홍양숙 명인 어머니.ⓒ헤드라인제주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정동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는 병약한 체질이었고 몸이 아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치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적도 있었다. 그래서 홍 명인의 어머니는 정동줄기만 잡으면 3박 4일을 꼬박 밤새며 노는 딸의 모습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또 정동벌립 제작은 오로지 두 손과 몇 개의 소도구로 하는 수공예이기에 아이의 손톱은 시도 때도 없이 부러지고 손바닥은 고목나무 괭이처럼 굳은살이 배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홍 명인은 “정동벌립을 가지고 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아픈 몸이 정동줄기만 잡으면 아픈 것도 잊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건강한 몸이 돼 있었다. 그래서 정동이 나의 성격과 체질에 맞아 이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7살 때 완성한 첫 정동벌립...본격적으로 걷게 된 ‘시간’과 ‘정성’의 길

홍 명인은 어린시절 치료제도 구하기 힘든 폐결핵에에 걸렸다. 선생님들은 학교에 나오면 다른 애들에게 전염된다며 그녀를 학교에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담벼락 구멍으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숨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홍 명인은 이후에도 방송통신학교 과정과 검정고시 과정으로 공부를 했다.  

그래도 그녀는 정동줄기를 만지는 일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꼈다. 학교는 못가도 제주시 삼성혈 근처에 있는 제주민속박물관에는 매일 버스를 타고 갔다. 카메라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것을 머리로 기억해야만 했다.

집에 오면 곧장 정동줄기를 잡고 흉내를 냈다. 계속 실패했다. 어린 나이에 상심도 컸지만 묵묵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요즘 사람이 볼 땐 세상 태평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홍 명인 스스로는 경쟁자도 없건만 치열하게 작업했다. 오래 작업할 땐 하루에 20시간을 했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손에 물집도 잡히고 무릎과 다리, 허리가 통나무처럼 뻣뻣해지곤 했다. 지금은 그 탓인지 손가락 마디의 연골이 전부 닳아버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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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정동공예 중인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그러다 어느 날 꽤나 그럴싸한 모양이 나왔다. 서툴렀지만 어쨌든 완성은 됐다. 17살,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혼자 터득해 만든 첫 정동벌립이었다. 하지만 홍 명인은 그것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진 않았다. 완성한 정동모자를 큰아버지께 보여줬다. 큰아버지는 “아니! 니가 이걸 어떵 짜져냐?”하며 깜짝 놀랐다. 그 이후로 홍 명인는 큰아버지로부터 정동벌립 제작 기법을 정식으로 배우게 됐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회 수상...정동공예 대한명인까지

그 이후로 홍 명인은 큰아버지로부터 정동벌립을 꾸준히 배우는 한편 자신 스스로 박물관에서 본 오래된 정동벌립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큰아버지는 연로해 더 이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대를 이을 후계자로 일찍이 조카를 점찍어뒀다. 그녀는 20살 때 처음으로 제주도관광공예품경진대회에 출전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한참 어린 나이였고 경험도 부족했다. 장르도 생소하고 지루했다. 누구도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홍 명인은 대회서 우수상을 탔다.

본인 스스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큰 규모의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세상은 홍 명인을 주목했다. 그녀와 그녀가 살던 정동벌립 부업단지 귀덕리가 한 순간에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방송사는 물론이고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찾아왔다. 동네 전체가 얼떨떨했다. 행정기관으로부터 지원까지 받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게 다 양숙이 덕분이다. 이젠 양숙이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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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 중인 홍양숙 명인의 정동벌립전.ⓒ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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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 중인 홍양숙 명인의 정동벌립전.ⓒ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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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 중인 홍양숙 명인의 정동벌립전.ⓒ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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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 중인 홍양숙 명인의 정동벌립전.ⓒ헤드라인제주

그녀는 22살 때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어렸을 적엔 치료를 위해 올라갔지만 이번엔 배움을 위해서였다. 서울 유명 디자이너가 홍 명인에게 디자인의 기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실은 그녀의 작품을 옆에서 직접 보고 싶어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홍 명인은 6개월 만에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역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이후로 그녀는 다신 제주도를 떠나지 않았다.

숱하게 공모전에 나갔고 나가는 족족 상을 받았다. 현재까지 40회 이상의 수상을 했고 국내외서 45회 이상 전시.시연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홍 명인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홍 명인은 양로원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손놀이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진 거 없이, 생사를 오가며 살아서 물욕이나 명예보단 소소하고 진솔한 삶이 좋았던 것이다. 제주도무형문화재 제8호 전수교육사, 정동공예 대한명인도 전통의 계승을 위해 맡아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 탓에 한 것도 없지 않았다.

◇1년 4개월 걸린 ‘정동말총벌립’...“정동벌립은 시간과 정성의 산물"

요즘 정동벌립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석 달. 젊은 시절에는 한달에 하나를 생산해냈지만 나이가 들면서 손가락 연골이 많이 닳은 탓에 세 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것도 밤을 새다시피 할 때 가능하다. 덩굴이 질기다보니 한번 한 줄기 한 줄기 엮는 데 많은 힘과 체력이 필요하다. 정동벌립은 말 그대로 ‘시간’과 ‘정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홍 명인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도 제작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정동말총벌립’이다. 1999년 봄에 시작해 2000년에 완성됐다. 하나 만드는 데 14개월이 걸렸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곤 온통 작업에만 몰두했음에도 일 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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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말총벌립. 오는 19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 중인 홍양숙 명인의 정동벌립전에서 볼 수 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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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정동벌립 작업 중인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정동말총벌립’은 가장 곱고 가는 최상급의 정동줄기에다 최상품의 말총(말꼬리털)을 합작시켜 정동벌립으로 만든 실험적인 작품이다. 뼈는 정동줄기로 살은 말총으로 구성됐다. 이 작품을 만들 때 홍 명인은 몸이 가장 많이 상했다고 한다. 특히 눈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무엇을 하면 이렇게 눈을 혹사시킬 수 있냐고 의사한테 꾸중을 들었다. 그녀는 그저 웃고 말았다.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 그 상태로 작업을 계속했단다.

하지만 홍 명인은 눈보다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그녀는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가는 것이 정동벌립이다. 마음이 혼탁하면 공예도 엄한 길로 빠지고 마음이 평온하면 공예도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홍 명인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점도 여기에 있다. 정동벌립은 시간이 많다고, 빠르게 작업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말총정동벌립을 가장 애정하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가장 마음을 많이 쏟은 작품이었다. 그래서 홍 명인은 작품을 만들고 나서도 한동안 그것을 꼭 껴안고 잠에 들곤 했다.

한 외국인은 이건 절대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작품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이는 큰돈을 줄 테니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홍 명인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시간과 마음을 돈으로 메기는 일에는 한없이 서툴기만 했다.

◇“신구의 조화, 빠름 속에서의 느림 추구...보편적 인간심리”

홍 명인은 44년 동안 단순히 옛 것만을 고집해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걷기 위해선 세상에 맞춰 사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명인은 “한쪽이 팽창하면 한쪽이 허전해지는 풍선효과처럼 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심리가 모두에게 있다”라며 “사람들이 바쁘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종종 옛 것을 들여다보려는 심리의 이유가 이 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 역시도 전통과 느림을 좇으면서도 현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며 “강좌를 하다보면 수강생들이 전통성과 현대성이 한데 어우러진 디자인을 좋아하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생활용 정동모자, 정동바구니, 정동가방, 정동찻잔받침 등 실생활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쉽고 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수공예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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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벌립 시연 중인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그러면서 “전통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신구의 조화가 잘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어받은 건 이어받은 대로 고수하지만 그것은 절대 전부가 될 수 없다. 정동벌립을 오래 보존하려면 요즘 트렌드를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 명인은 “정동벌립을 통해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빠름 속에서도 느림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상이 아무리 팽이 돌 듯 돌아도 사람들은 정서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것 같다”라며 “그래서 느림을 추구하는 것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일이며 이것은 보편적인 인간심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동벌립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며 또한 이율배반적인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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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벌립 시연 중인 홍양숙 명인.ⓒ헤드라인제주

홍 명인은 순수 정동벌립에 대한 보존.계승 방안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녀는 우선 며느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며 큰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정동벌립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또한 오래전 귀덕리 마을 공동 공방인 ‘벌립청’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정동공방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으며, 현재 극심한 확보난을 겪고 있는 정동줄기를 직접 재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실험해보고 있다. 아울러, 정동공예 기술을 가정경제와 연계하고 발전시켜 판로를 넓히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녀는 “집마당에서 정동을 재배해서 재료를 원활히 확보하고, 집에 딸린 공방에서 정동벌립을 짜고, 후계자를 육성하고, 일반에 정동공예를 보급하고, 전시와 판매까지 모든 걸 원스톱으로 할 수만 있다면 정동벌립 전승·육성·보급활동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는 게 현실적으로 참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홍 명인는 “나의 꿈은 제주의 자랑인 100% 수공예 제품 정동벌립과 정동공예품을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제주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특히 정동제품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살아 있는 전통이면서 또한 그 안에는 여러 의미있는 가치들과 아름다움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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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2024-03-25 20:02:55 | 106.***.***.6
정동모자짜는 것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로 연락하나요?

주디 2021-06-08 21:18:22 | 27.***.***.200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홍명인을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처음 알게된 공예입니다. 빠름속에서도 느림을 추구하고 정서의 균형을 잡아가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당연한 것인긋 새삼스럽게 인식했어요

박원철 2021-05-19 22:15:41 | 14.***.***.187
홍양숙명인님.. 시간내서 돌문화공원 전시장에 가서 봤는데
정성과 섬세한 대단하네요..이런 전통이 오래 오래 계승빌전
했으면 합니다..감탄했네요...축하합니다.

어흥이 2021-05-18 09:44:15 | 121.***.***.139
정말 좋은 기사네욤...^^ 기회가 된다면 이런 명인 분들의 강연도 주최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주 지역 내의 명인분들에 대한 연속 기획기사를 내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