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나눈 사랑' 묵자의 철학과 정본청원(正本淸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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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나눈 사랑' 묵자의 철학과 정본청원(正本淸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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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년세대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명과 암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교수들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지난해를 반성하고 정본청원(正本淸源)의 올해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사자성어를 뽑은 것은 교수들이지만, 여기에 담긴 뜻은 모든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지난해 우리사회는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졌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관피아들의 먹이사슬, 담배 값 인상, 공무원 연금개혁, 비선실제 국정농단,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까지 우리사회의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제주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협치를 내건 새로운 도백의 등장으로 자못 주목과 기대가 컸지만 드림타워, 신화역사공원, 강정해군기지 군관사, 인사를 둘러싼 의혹과 실패, 년 말의 예산의회까지 속 시원히 갈등이 치유되고 위선이 걷히기보다는 진실과 정의가 호도될 뿐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산하에 인문정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국가에 걸맞지 않는 사회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강봉수 제주대 교수,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원장.<헤드라인제주>

비판적 성찰과 반성이 없는 사회는 암울하다. 정본청원에는 이러한 뜻이 담겼겠다. 근본을 바로 세우고 근원을 맑게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을 주장하지 말고, ‘정본청원’하는 한 해가 되기 위해 그에 걸맞는 성찰과 반성과 소통이 위로부터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하다. 인문학이란 나와 너,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학문이고, 소통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부터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과 강단의 인문학을 다 죽여 놓고서 뜬금없이 대통령부터 나서서 인문학을 말하고 채용시장에서 인문역량을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마도 미국 애플사 사장인 스티브 잡스가 “애플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돼 있다.”라는 발언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21세기는 휴먼경영의 시대다.” “인간의 감성, 내밀한 욕망을 꿰뚫지 못하면 신개념의 상품도, 시장전략도 나오지 않는다.”고 기업들이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체를 중심으로 경영자를 위한 인문학이 등장하고, 기술개발에도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신입사원을 뽑는데도 인문역량을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21세기가 휴먼경영시대라는 말에 동의한다.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와 기업체를 이끌고, 신기술을 개발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사고가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휴먼경영과 시장의 인간화에도 기여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사회를 보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 채용시장에서 인문역량을 평가하는데 대해 우려스럽기도 하다. 한 때 우리사회에서는 자기계발서와 처세술, ‘힐링’과 ‘웰빙’류의 책들이 유행했다. 왜 유행했는가?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불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청년실업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와 힐링서를 읽으며 위안도 받고 성공적인 인생역전도 꿈꿨다. 청년들이 스펙 쌓기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자기계발과 스펙을 쌓았다고 인생역전을 가져온 것도 취직이 마냥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책들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실패한 원인을 모두 개인에게 돌렸다. 앞서 말한 여러 문제들은 개인의 탓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측면도 있는데, 자기계발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구조의 문제에 대해 눈감게 만들었다.

나는 솔직히 지금 채용시장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일종의 또 다른 스펙 쌓기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은 갑자기 키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용시장의 방식이 훨씬 더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한, 취업희망자들은 전공과 토익 등의 스펙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까지 쌓아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그러한 소양을 길러준 적이 없는데, 갑자기 채용시장에서 인문역량을 요구하는 꼴이다. 그래서 취업준비생들은 인문역량을 갖추기 위해 벼락치기로 인문학 과외를 받고 문제풀이식 인문학 참고서를 뒤진다. 이래서는 안 된다. 또 하나의 획일적인 답을 찾는 것일 뿐, 인문학 공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이폰 인문학, 취업을 위한 인문학, 이윤의 확대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조장할 뿐이다. 채용시장의 인문학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산업화•실용화하자는 것인데, 이러한 응용이나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우선 필요한 것은 기초 토대 연구이다. 역설적으로 대학과 강단의 인문학은 위기이다. 인문관련 학과가 통폐합되고 실용성있는 인문학과로 명칭을 변경하고 있기도 하다. 인문학을 내실 있게 발전시키려면 인문학 전공자들의 토대를 구축하고 강화해야 하며, 인문학의 대중화도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된 삶의 이상과 원리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따라 오로지 성장과 경쟁만을 강요해왔다. 국가도 시장도 학벌과 스펙을 가지고 사람들을 채용해왔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웠다. 중등교육이 그렇고 대학도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해왔다. 한마디로 우리사회는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당장의 실용성만을 가지고 삶의 척도와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모든 진리도 학문도 여기에 복무하지 않은 것은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왔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무엇이 좋은 삶인지, 바람직한 사회의 이상은 무엇인지 비판적 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록위마로 점철된 지난해의 사건들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을미년을 정본청원하는 새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거듭 인문학의 본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인문학은 사람 그 자체를 사유의 테마로 삼는 학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다운 삶의 모습인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들이 꿈꾸고 달성해야 할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은 무엇인가? 타자들과 더불어 삶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인문학에서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이다. 이러한 물음들에 답을 찾고 성찰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시대의 사상가나 인문학자들의 책을 읽는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문•사•철에 국한되지 않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실존적 삶을 살았던 위인들을 만나고, 문학을 통하여 삶의 정서와 인격들의 전형을 탐색하고, 철학을 통하여 인간다운 삶의 모습과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을 사유하게 된다. 인문학은 이러한 본질적 물음에 복무해야 한다. 인문학 공부야말로 근본을 바로 세우고 근원을 맑게 하는 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채용시장 밖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측면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인문학 강좌를 하면서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시작한 강좌에서 내가 만난 수강생들은 대체로 40대 전후의 분들이 많았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이를 두고 공자가 40이 되어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40대에 유혹이 많으니까 거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오늘날 심리학자들도 40대 전반을 “중년변화기”로 부른다.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정신없이 살아온 나의 삶이 제대로 된 삶인지를 성찰한다. 이제 주변과 사회도 돌아보고, 어떤 사람은 직업을 바꾸기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모색한다. 중년세대에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이러한 사정과 관련 있다고 보며, 이점에서 매우 긍정적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인문학은 나이를 넘어 모든 학교와 대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유행처럼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평소에 부는 맑은 바람이길 바란다. 내일부터 “밥을 나눈 사랑” 묵자의 철학사상으로 다시 시민들을 만난다. 너무나 설레고 긴장된다. <강봉수 제주대 교수 /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원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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