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세대' 총선 라이벌 고창후-문대림, 결국 '단일화'
상태바
'486세대' 총선 라이벌 고창후-문대림, 결국 '단일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점] 후보단일화 고창후와 문대림, "우린 '각별한 사이'"
486 선후배→'젊은 시장'과 '젊은 의장'→총선라이벌→'단일화'

4.11 총선 출마 후보 중 많은 관심을 끌었던 서귀포시선거구의 고창후 후보(48. 전 서귀포시장)과 문대림 후보(47. 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가 12일 문 후보로의 '후보단일화'를 선언했다.

지난달 24일 민주통합당이 서귀포시선거구를 국민경선 없이 현역인 김재윤 후보를 단수공천자로 결정한지, 꼭 17일만이다.

12일 무소속 후보단일화 결과가 발표된 후, 손을 맞잡은 문대림 후보와 고창후 후보. <헤드라인제주>

국민경선이 무산되면서 크게 반발하며 고 후보는 '희망대장정'의 민생투어로, 문 후보는 중앙당 공천 재심을 통해 단수공천의 부당성을 항변해왔다.

공천심사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총선 후보경합 과정에서 라이벌 관계였던 두 사람이 민주당 공천파문을 계기로 해 '연대'를 이뤄내고, 그리고 결국 단일후보를 결정하면서 한 길을 가게 됐다.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된 무소속 단일후보의 선정결과는 이영일 서귀포6월민주항쟁 기념사업회장이 발표했다. 그가 단일후보 결과를 발표하게 된 것은 두 후보의 '각별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에 함께 '486세대'의 두 후보가 정치적 라이벌의 경쟁관계에서 결국 한 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중간 역할을 한 것이다. 
 
이번 서귀포시 총선에서 두 후보가 유난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대학시절 함께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비슷한 성향의 대표적 '486세대'의 총선주자이기 때문이다.

두명 모두 군사독재정권 말기인 1986년에 제주대에서 학생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둘다 법학과 출신으로, 고 후보가 문 후보 보다 한살 위 선배다.

대학시절 문 후보는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공개된 조직'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면, 고 후보는 비공개 학습소모임인 소위 '언더그룹'에서 활동했다.

문 후보는 당시 총학보생회장인 박희수 현 제주도의회 의원과 더불어 4.3분향소 설치 및 학내 및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섰다.

고 후보도 같은해 '장기집권 음모 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연행됐는데, 그 해 12월 민정당사 화염병 투척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학내에서는 제명됐다.

대학시절에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이후에는 조금씩 방향이 달라진다.

문 후보는 졸업 후 법학과 조교로 일하다가 곧바로 대중정치 속으로 뛰어든다. 민주당 서귀포시지구당 정책실장을 맡아 활동하다, 이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수년간 일했다.

그리고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정읍 지역구에서 출마해 도의원에 첫 당선되면서 대중정치를 시작했다.

투옥되면서 대학에서 제명처분을 받은 고 후보는 복학의 길이 열리면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1988년 졸업했다. 그리고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에 잠시 투신했다가 사법시험 준비에 전념해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 후보는 대중정치 속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입지를 다진 반면, 고 후보는 판사생활을 한 후 제주에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둘은 선후배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치적 '라이벌' 관계로의 진전을 가져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지방선거.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문 후보는 대정읍 선거구에서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올리며 재선에 성공한 뒤 제9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다. 첫 '40대 젊은 의장'의 탄생이었다.

고 후보는 이 지방선거에서 우근민 후보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민선 5기 우근민 도정 출범 후 첫 서귀포시장에 임명됐다. 그 역시 첫 '40대 젊은 시장'의 탄생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젊은 의장과 젊은 시장으로 주목받은 두 사람은 시장과 의장을 수행함 속에서도 제주정가의 관심이 됐다. 그러나 둘 간의 분위기는 썩 좋지 못했다. 이미 총선을 겨냥해 두 후보가 맞붙게 될 것이란 예상 속에서 이따금씩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많았다.

처음엔 문 후보는 민주통합당 공천경쟁을 통해, 고 후보는 무소속을 통해 선거전에 나설 것처럼 보였으나, 고 후보가 지난해 말 시장직을 사퇴하면서 민주당에 입당, 이번에 나란히 공천신청을 하게 됐던 것이다.

민주당 공천경합관계에 서게 된 두 후보는 지난 1월 각각 출판기념회를 갖는 자리에서 "의리를 지키겠다"는 공개적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이 서귀포시를 국민경선 지역구로 결정했다면 '486세대' 라이벌의 한판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민주당 공심위가 단수공천 지역구로 결정하면서 국민경선은 무산됐다.

시장직과 의장직을 사퇴하는 초강수를 두며 총선에 뛰어든 두 후보는 큰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었다.

국민경선이 무산된 직후 두 후보는 긴급 회동해 '후보연대'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쉽지 않았다.

민주당에 입당한지 불과 얼마되지 않는 고 후보는 곧바로 탈당을 하겠다고 선언하며, 문 후보에게 후보단일화를 통해 빠른 '총선직행'의 길을 갈 것을 제안했지만 문 후보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민주당에 20년 가까이 몸을 담았던 문 후보는 중앙당에 재심신청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재심위원회로부터 재심신청의 타당성을 인정받았지만, 최고위원회에서 '일괄 기각'이란 결정이 내려지면서 국민경선은 끝내 무산됐다.

그러나 곧바로 후보단일화 논의가 시작됐고, 지난주 두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해 무소속 단일후보를 결정하기로 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12일 두 후보 진영은 문대림 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했다.

고창후 후보는 "사실 문 후보와 저는 각별한 사이이고,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라며 "문 후보가 꼭 당선되어서 서귀포시민의 자존심을 살려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선거에 문 후보 캠프에서 함께 선거운동에 나설 뜻도 밝혔다.

문 후보는 "고창후 선배님의 그간의 땀과 열정, 그리고 비전, 그 모든 것을 끝까지 함께 하겠다"면서 "총선 승리를 통해 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짓밟혀진 서귀포시 시민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화답했다.

당면한 현안 중 두 후보의 공통적 인식은 '제주해군기지 문제'로 맞춰졌다. 도지사와 도의회의 공사중단 요청, 제주사회의 한결같은 요구에도 강행되고 있는 구럼비 발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영일 6월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은 "한 때 민주화운동에 함께 했던 두 후보가 해군기지라는 긴박한 현실적 문제 앞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뤄내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후보의 단일화 결정으로 이제 서귀포시 선거구는 공천이 확정된 새누리당의 강지용 후보,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김재윤 후보와 통합진보당의 현애자 후보의 야권연대 결과에 따라 '3파전' 총선구도가 펼쳐지게 됐다. <헤드라인제주>

고창후-문대림 단일후보 결정 기자회견, 어떤 입장 밝혔나

이영일 서귀포6월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 고창후-문대림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12일 무소속 후보단일화 결과가 발표된 후, 손을 맞잡은 문대림 후보와 고창후 후보.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유일한 희망 2012-03-12 14:05:41 | 110.***.***.29
잘 하셨습니다. 함 합쳐야죠
문대림 후보는 의장시절 뱨짱과 파워로. 해군기지 꼭 해결해주오

단일화다시 2012-03-12 16:52:55 | 121.***.***.113
지금 전국이 서귀포시를 보고 있다. 주민들이 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 그러니 해군기지 전면 철회를 기치로 후보 단일화해서, 새누리당에 압도적인 표차로 이겨줘야. 서귀포시민들의 뜻을 알릴 수 있다! 대의를 가지고 모두 단일화해라..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