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막는 겁니까?"..."이건 밥통이오. 밥이 들었단 말이오"
무릇 전쟁에서 최고의 관심사는 ‘보급’이다. 강력한 병력과 첨단의 무기가 승리를 가져오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패의 관건은 바로 ‘보급’이다.
보급선이 차단된 군대는 이미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전투의 목적이 적의 전투력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전술적 측면에서 1차적인 목표는 적의 병력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난 9일(화) 강정마을에서 나는 이러한 전투교리에 충실한 해군과 경찰을 보았다. 그들은 해군기지 반대세력을 봉쇄하고 고사시키기 위해서 취해여야 하는 방법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부하 병력들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전술교리를 제대로 배웠다.’는 찬사를 보낸다.
다만 그 방향이 적군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길러주고, 먹여주고,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향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 정도야 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문제이다. 29만원이 전 재산인 양반도 있지 않은가?
상황이 발생한 것은 점심을 앞 둔 시점이었다. 태풍 복구작업에 지친 사람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기 위해 이동하던 보급차량을 경찰 병력이 막아선 것이다. 경찰 병력 뒤에서는 해군 장교가 지휘하고 있었다.
"왜 막는 것입니까?"
"상부 지시사항입니다."
"무슨 지시입니까?"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뭘 안다는 말이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경찰이 해군의 지휘를 받게 되었습니까?"
"아무튼 통과 할 수 없습니다."
"이거 밥통이오. 밥이 들어있단 말이오. 한번 확인해볼까요?"
"......"
"최소한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닙니까? 저 안에서 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무튼 안됩니다."

에라 이 한심한 밥통들아. 밥통 하나 머리에 이고 1km를 걸어가라고....차라리 차를 돌리고 말지. 그리고 저 안에는 아침부터 열심히 일해서 배고픔에 애타게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밥통을 실은 차량은 다른 길을 찾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리의 경찰병력에게 다시 제지당했다.
"아, 또 왜 막습니까?"
"불법시위 용품 차단을 위해.... 공공의 질서 확립... 공무수행....(아무튼 경찰에게 따지지 마십시오)."
"아이고 알았습니다. 밥통 내려 놓을께요(그래 내가 졌다!)."
"아니 밥통과 같이 있는 이것은 비닐이 아닙니까? 불법시위 물품입니다."
"이게 문제가 됩니까?"
"막아!!!!!"
결국 마을 주민들과 경찰은 서로 병력을 증원해가면서 3시간 동안 대치하였다.


밥통 하나가 만들어낸 상황의 전말이다. 밥통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단 말인가? 지금까지 걸핏하면 내뱉어 온 ‘이 밥통같은 X’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다. 세상의 밥통들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겠다고 다짐한 명예로운 해군 장교들과 민중의 지팡이로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경찰 간부들이 막아서야만 할 정도로 중대한 불법시위 물품이니 말이다.
앞으로 밥통을 만드는 회사들은 반드시 사용설명서에 이러한 문구를 넣어야만 한다. ‘중대한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물품으로 변신이 가능하니 유사시 적군을 향해 사용할 것.’
나중에 누가 이런 얘기를 덧붙여 주었다.
해군이 ‘밥통’을 증오하는 것은 천안함 침몰이후 러시아 조사단으로부터 ‘이 밥통같은 X들’ 이라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자존심이 구겨져 있기 때문이고, 경찰 경비병력이 밥통을 증오하는 이유는 자기들은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는데 너희들은 왜 따스한 밥을 먹는냐면서 질투하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그런 이유였을까? <헤드라인제주>
<김국상 / 제주주민자치연대 정책실장>
김국상의 '강정현장 이야기'는... |
||||||
현재 제주주민자치연대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국상님은 몇달째 강정마을에 있습니다. 강정을 꼭 지켜야 한다는 그의 희망이 간절합니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강정현장 이야기>는 지금 강정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언제까지 이 이야기가 이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진행과정과 끝, 그것이 바로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당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