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작곡가들의 곡이 다른 작곡가들과 다른 점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뚜렷이 표나게 다른 점을 대라하면 서슴지 않고 ‘겨울냄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눈덮인 자작나무 숲과 북구의 서정이 느껴진다면 어떤 곡들일까 궁금해진다. 때론 냉랭한 한기가 도는 게 사실이지만 반면 신비스럽다. 러시아의 음률과도 다르고, 동유럽이나 서유럽 등 다른 여타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인해 하루 종일 음악 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이 그러하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그러한 곡 중에 하나다.
더우기 핀란드의 경우는 러시아와 스웨덴 가운데 끼인 나라로 한때는 러시아 영토였던 곳이고 오늘 소개하는 시벨리우스는 바로 그 시기에 활동했던 작곡가다. 연보로 볼 때, 러시아 국민악파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러시아의 침입으로 인해 시기적으로 한참 민족주의 열풍이 강하게 불었을 때다. 어느 나라든지 외세의 침입때는 이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이에 따라서 문화나 역사에도 민족주의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제치하의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고 러시아 침입 시 핀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우기 이때 등장한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라는 민족혼이 듬뿍 담긴 곡을 작곡함으로 핀란드 음악의 국부로 칭송받기에 이른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사랑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얘기다. 시벨리우스는 처음 핀란드 헬싱키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곧 그만 두고 헬싱키 음악원으로 적을 옮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음악원 현악4중주단에서 제2바이올린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연주자의 길 대신 작곡가의 길을 택하게 된 데는 그의 실패가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멘델스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됐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만 공연을 망치게 된다. 이때 그는 자신이 바이올린의 명인이 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작곡가의 길로 돌아서게 된다. 그는 다작의 작곡가는 아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도 단 한 곡만 남겼지만 멘델스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낭만파 바이올린 협주곡의 수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자신이 한때 바이올린 주자였고 또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열망했던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 곡을 작곡할때 마다 곡 속에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자신을 빗대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작곡가보다도 최고의 바이올린 곡을 작곡하려는 그의 노력은 곡의 곳곳에 보인다. 교향시 핀란디아를 비롯해 7개의 교향곡 등 주로 표제음악을 작곡했던 시벨리우스는 이 곡,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해서 발표한 이후, 프랑스 정부로 부터 훈장을 받고 또 빈 왕립음악원교수로, 또한 영국과 미국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때다. 그리고는 거의 모든 작곡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가장 인기 절정의 시기에 뒤도 안 돌아보고 은퇴하기가 사실 어려운 일인데 그는 그렇게 했다.
단 한 곡으로 끝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타 작곡가의 열 곡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최고의 곡이다. 1악장의 알레그로 모데라토는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악장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가느다란 바이올린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사뿐사뿐 걸어가면서 시작된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나타나는 자유로운 형식의 악장이다. 그런데 2악장으로 오면 좀 달라진다. 이 곡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악장으로 아다지오 디 몰토(매우 느리게)는 일종의 로망스다. 북유럽의 정서가 이보다 더 진하게 베어 있는 악장도 드물 것이다. 중성의 톤으로 클라리넷이 북유럽의 황량함을 노래하고 이에 맞추어 독주 바이올린의 호소하는 듯한, 그러나 열정적인 카덴차가 이어진다. 무척 수려하고 깊이가 있는 악장으로 아마 시벨리우스가 유독 2악장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라고 여겨지는 악장이다.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도 그 유명세가 대단한 악장이다. 혹자는 ‘북극곰을 위한 폴로네에즈’라고 명명할 정도로 춤곡풍의 쾌활한 악장이다.
바야흐로 3월이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겨울냄새가 다 가시지 않은 계절이다. 이런 때 신비스럼이 흐르는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을 연상하면 듣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우리 마음에 풍요로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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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칼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