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검은 비가 내리는 전쟁을, 소비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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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검은 비가 내리는 전쟁을, 소비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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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선제 타격을 날리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란 내 반정부 시위 세력을 지원하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원천 차단이 목적이라 명분을 내세웠다. 그 결과 최고지도자 외 수많은 정부 인사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란 여자 초등학교를 공습해서 최소 175명의 아동이, 정치와 전쟁과 자본과 상관없이 그저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숨졌다. 테헤란 주변 석유 시설들을 공격하여 마침내 검은 비(검은색 연기와 기름 성분이 섞여 내리는 비)가 내리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 대규모 공습으로 인해 PM2.5 농도의 미세먼지와 블랙카본(그을음), 발암성 화합물인 이산화황과 질소 산화물, 납과 비소, 수은 등의 여러 독성 물질이 포함된 유독가스는 대기 중에 퍼지고 이란 민중과 거주민들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최루탄 공격을 도시 전체가 동시에 받은 것처럼.

타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개입하여 재앙을 몰고 오는 트럼프 정권과 지속적으로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네타냐후 정권이 합작으로 일으킨 결과다. 밤낮없이 유성우처럼 반짝이는 드론, 미사일 온갖 무기들을 쏟아부으며 표적이 된 각 나라들이 부패해서, 핵을 가져서, 자국민에게 위험해서 등 온갖 핑계로 탑을 쌓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자국민들이 자국민의 손으로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데도 타국 정권 교체에 무력 개입을 하고, 자국민에게 위험이 된다는 실질적 근거도 없이 무해한 국민을 굶겨 죽이고 총살해서 죽이고 폭격해서 죽여버리는 것의 근거치고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한숨조차 내뱉기 어렵다.

슬픈 것은, 그렇다 요즘 나는 너무 슬픈데, 이 와중에 자꾸만 보이는 온갖 쇼츠 영상들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방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나라 무기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우리나라 무기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앞다퉈 보고하는 이 천박한 신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맹세와 충성이 헌법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보내야 함에도 인권 단체조차, 행사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자행되는 이 나라에서, 뭐가 돈이 되는지 따지며 전쟁으로 우리나라가 부강해진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결과적으로 보면 이 충성도가 자본력과 동일 선상인가 싶은 값싼 국뽕 때문에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서민이다. 모든 기름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주에 등유를 넣으려 문의했더니 한 드럼에 37만 원이 넘어갔다. 몇 년 사이에 이런저런 이슈들로 계속해서 높아지는 등윳값으로 인해 아찔한데 이번 전쟁으로 인해 가파르게 치솟았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가는 서민들은 더 졸라맬 허리가 있을까 싶을 만큼 모든 것들은 가격이 오르고 있다. 등유나 휘발유뿐 아니라 석유가 안 들어간 제품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품에 거의 없다. 하물며 바셀린조차 석유가 원재료다.

신자본주의에 충실한 사고를 하며 오직 돈을 쓸어 담기 위해서, 전쟁은 발발한다고 단언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 신·구 무기 교환 시기가 됐구나, 신무기 실험장이 필요하구나, 신무기 팔아먹기 위해서 애쓰는구나, 저기 석유가 있구나 하는 등의 생각부터 떠오른다. 오직 천박한 돈벌이와 전능감을 위한 폭력을 감행하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 전쟁을 일으키는 강대국의 최고지도자들. 도파민 팡팡 터지는 게임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실사 게임의 현장. 그러나 사망하고 몸이 망가지고 집과 일터와 기간산업이 망가지는 저 현상들은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고 사람의 터전이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맛있는 거 먹으며 손가락 톡톡 두드리고 말 몇 마디로 박살 내버리는 모든 곳이 다 생명이 살아 뻗어나가는 곳이다.

가끔은 전쟁을 두고 희화화하는 쇼츠도 본다. 가끔은 전쟁은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본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이 죽고 사랑하는 존재들이 죽고 사랑했던 공간들이 소멸하는 그 모든 현장에서 거리를 둘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을 보면, 공감이라는 게 사실은 무언가를 보며 눈물 흘리거나 기뻐하는 등의 감정적 대응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짙어진다. 저 모든 상실의 고통을 일반화하긴 어렵더라도, 살아내면서 우리가 겪은 낱낱의 고통들을 전쟁터에 있는 한 사람에게 대입해 보고 그다음 사람에게 대입해 보고 그걸 확장해서 넓혀가 보면 반드시 보게 되는 지옥도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전쟁을 일으킨 이와 전쟁을 당하는 이를 두고 양쪽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끼도 안 굶은 이와 사흘을 굶은 이에 공평하게 밥 한 그릇 내밀고 자신의 공정함에 뿌듯할 기계적 공평주의자들이 잘하는 말이다.

전쟁이 만들어내는 단상은 추악한 인류의 현재고 잔혹한 삶의 지도가 형성되는 인류의 미래다. 파괴된 곳이 현재 인류가 만들어낸, 생명을 몰살하는 온갖 폭력 방식의 집합으로서의 파괴라는 점에서, 감히 희망을 추측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몇몇은 전쟁 가고 평화 오라고 폭력 가고 자유와 평등 오라고 미움 가고 사랑 오라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인류가 늦게 파멸되는 이유는, 적어도 이들에게 진 빚 때문일 것이다.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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