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장규범.김재귀씨 초청 현장 증언 시간도 진행
호헌철폐와 독재타도의 함성이 전국에 울려퍼진 1987년 6월, 국토 최남단인 서귀포시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귀포시내 거리에서도 경찰의 삼엄한 원천봉쇄망을 뚫고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거대한 항쟁이 있었다.
청년들이 주도한 서귀포 항쟁은 들불처럼 확산된 독재권력에 대한 국민들 분노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마침내 독재정권으로 하여금 무릎을 끓게 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현수막을 앞세운 서귀포시 지역 거리시위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6.10 민주항쟁의 열기를 보여주는 국내 중요 사료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37년 전,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이 다시 모였다.
서귀포 6월민주항쟁 정신계승사업회(회장 이영일)는 9일 오후 서귀포축협 흑한우명품관 회의실에서 '37주년 6.10 민주항쟁 서귀포 기념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서귀포항쟁을 기억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고의숙 교육의원 등도 함께 했다.
이날 행사에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해 의미를 더 했다.


서귀포항쟁의 주역이던 이영일 회장은 "당시 1000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한 서귀포항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그로부터 37년이 지났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날의 주역들이) 할아버지가 다 되었는데, 이렇게 기념행사를 갖게 되어 감개 무량하다"고 피력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아직도 민주화가 완전하게 되지 않은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부족하나마 지역사회에서 6월항쟁의 정신을 기리면서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5.18부상자회 김행구 호남지부장은 축사에서 "6월항쟁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 제도를 뿌리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면서 "37년 전, 당시 전국적으로 항쟁이 이어졌는데, 제주도에서, 서귀포시의 가두시위,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현수막을 내건 시위는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서귀포항쟁은 학생 중심이 아니라 청년 중심으로, 청년이 주도하여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항쟁 정신 계승에 함께 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어진 2부 행사에서는 진희종 제주도 사회협약위원장의 사회로 '광주의 오월 무명 용사들의 현장 증언'이 진행됐다. 진희종 위원장 역시 5.18 당시 전남대 대학생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최후의 시민군' 중 한명이다.
현장 증언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학살에 저항하다 총상을 입은 장규범씨,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총상을 입은 김재귀씨 2명이 나와 참혹했던 그날의 상황을 담담히 증언했다.
장규범씨는 1980년 당시 택시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시민 발포가 있었던 5월21일, 그 역시 총상을 입었다.
그는 "택시를 운전하고 있었다. 공수부대 군인들의 시민들 무차별적 폭행 등의 모습을 화가 나 시위에 참여했는데, (계엄군 공격 때) 골목으로 피했는데, 위에서 조준사격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제가 군에서 하사관으로 있다가 제대하고 얼마 안된 때여서, (계엄군의 발포는) 공포탄을 쏘는 줄 알았지 실탄인줄은 몰랐다"며 "나중에 옆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하니... (그때서야 알았다)"고 피력했다.
총상을 입었음에도 반란군에 저항하는 시위에 끝까지 참여한 이유를 묻자, "버스를 타고 가는 시민들도 쥐어패고,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하는 걸 보니 차라리 총에 맞아 죽는게 가장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이 없었다"며 "그래서 (총상을 입은) 손에 붕대를 감고 제가 (시민들에게) 안전사고 등을 감안해 총을 쏘는 방법을 가르켰다"고 말했다.
김재귀씨는 당시 고교생이었다.
그는 마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참혹했던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군인들의 폭행 등 수 없이 봤고, 특히 리어커에 시체 2구를 실고 가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 때부터 시민군에 합류했다고 했다.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포위해 총공세를 펼치던 5월27일 새벽에도 그는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현재 5.18 관련 '최후의시민군'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도청을 사수하다 군인들에 의해 헌병대로 끌려갔고, 거기서 제 등에다 '불순분자' 그런 걸 쓴 거 같았다"며 "저는 총상을 입었고 때문에 국군통합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재판에 회부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로 이감됐다"고 말했다.
장규범씨나 김재귀씨 모두 그날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했다.
미래세대에 전하는 싶은 말을 묻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헤드라인제주>



결의에 판 모습들이 압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