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향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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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향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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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오월이 오면 인문대 입구부터 향내가 풍겨왔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인문대 홀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 향 내음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벽으로 보이는 모든 곳에 그게 천장이든 바닥이든 난간이든 간에 자리하고 있을 끔찍한 풍경과 구호들, 그리고 끊임없이 재생되며 상영되고 있을 다큐멘터리, 사물함이 있는 곳을 가려면, 강의를 들으러 가려면, 하다못해 화장실을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그 작은 광장 같은 인문대 홀에서 흩어지지도 않고 회오리치는 향 내음을 미리 맡으며 처음엔 눈을 감았다가 나중에는 반만 눈을 감고서 그곳을 스쳐 지나갔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 단 하나의 학회나 동아리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각 학회 방에서 오월이 오면 서로 나눠보고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던 그 시간은 물론 그 다큐멘터리를 본 적도 없다. 다른 방법을 이용해 마음을 크게 먹고 보려고 해도 이내 구토를 하며 문밖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오월이 오면 등교하던 길에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라일락 향에 행복하게 젖어 들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성당 담벼락에서 흘러내리던 라일락꽃 자락처럼 물결치던 그 향기에 유영하듯 앞서 걸어 나가 뒷걸음치며 걸었고 다시 돌아보았다. 꽃향기에 황홀하며 내 청춘을 마음껏 누리고 봄처럼 싱그럽게 촉촉한 살결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오월의 그 날을 알게 되고 영원처럼 사라졌다. 꽃이 고와서 들여다보다가, 내 방 책상에 올려두고 싶은 마음에 꺾었다가,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건 마치 상징 같은 것인데, 무수히 꺾여나가는 인생들, 무심코 혹은 당연한 내 힘을 무의도로 과시하는 순간이자 생명 하나가 무참히 잘려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 송이 꽃도 꺾을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오월, 인문대를 가득 채운 영상과 사진과 언어를 읽고, 듣고, 맡는다는 것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의미했다.

- 우울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무슨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나를 진료하는 의사가 무심히 침을 꽂으며 두런두런 나누던 대화 끝에 작정한 듯 질문했다.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을 잊어버리곤 했다. 뭐라 말할 수 있는가….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눈물을 꾹꾹 눌러대며 대답했다.

- 전태일을 만나고서요.

- 그때가 몇 살 때인가요?

- 고등학생 때요.

전태일을 만나고 무너졌던 세상은 5‧18을 알게 되고서는 모두 불타올라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 사막 작열하는 불길만 남은 인생이 되었다. 나는 그 불길 속에 스스로 가둬두고 철저하게 철벽을 쌓아 살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마음이라 생각했다. 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장하며 마치 빛을 반사해 위장하는 비행접시처럼 타인에게는 늘 웃으며 지탱했다. 그러나, 그러나, 가끔씩 너무나 견디기 힘겨운 날이 오기 마련이고, 그래서 삶을 더는 유예하지 못하겠다고 다짐하며 쓸쓸해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네가 부러워.

- 어떻게 하면 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살 수 있을까?!

봄이 오는 게 참 싫었다. 어린 시절에는 수양 버드나무 가지에서 삶의 희망을 뿜으며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리는 꽃씨 때문에 괴로웠기 때문이고 전태일을 만난 이후는, 살았으나 죽은 나의 상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 촉촉하고 싱그러운 생명력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목련꽃 아래에서 혼자 울고 벚꽃이 흩날리면 거짓말처럼 웃었다.

-5월만 버티면 돼. 저 잔인한 5월만 지나면, 그러면 또 살아질 거야.

그러나 우리에겐 그게 과도한 욕심이었던 걸까? 우리는 왜 수십 년 전의 실패와 실수와 상처와 고통과 지옥을 반복하는 걸까. 4‧3의 피 묻은 동백꽃을 지나 5‧18의 장미 덤불을 지나 다시 돌이켜 4·16 유채꽃 시절을 기어이 죽음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 지독한 무감각은 무엇 때문인가. 반복적 혐오와 모멸의 언어들로 이어지고 설킨 욕망은 기어코 존재에 대한 환멸을 부르는가. 숨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얼굴과 내 목덜미를 힘주어 막는 듯했고 내 팔과 다리를 잡아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 손들은 살아있지 않으나 살아있어서 살아내는 내내 더 강력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는 버틸 수 없어서 뭍을 떠나왔다. 평생 살았던 곳을 떠나서 마침내 환상과 낭만과 꿈과 희망과 오욕과 차별과 모멸과 고통의 섬에 발을 디디니, 그제야 숨통이 터졌다.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다시, 꽃향기 사이사이 피비린내 스며든 4·3을 지나고 4·16을 지나고 기어코 세월은 흘러 오월이 왔다. 오랜 시간 눈을 감고 입을 막고 통곡하던 오월이 올해도 되돌아왔다. 이제는 11월이 오면 서서히 가루처럼 스러지던 마음을 지나서 오월이 오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산사를 찾아 헤매던 마음을 지나서 사월이 오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름다워서 더 눈물겹던 마음을 지나서, 지나서, 지나와서, 아직도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아파서 매번 무너지면서, 마지막인 것처럼 무너지면서 결국 일으켜 세우는 나를 본다. 이팝나무도 예쁘고 작약도 예쁘고 장미는 더욱더 예뻐서 아프기만 한 나를 본다. 낫지 않는 병이라서, 어쩌면 이 평생이, 아픔으로 인해서 살아지는 역설을 보면서, 오월은 그저 내게 온통 5‧18이다.<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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