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과 시민참여가 함께 하는 한국형 민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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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31) 한국형 대통령제

대의정으로서 민주정에는 의회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적합성을 갖는다. 대통령 1인의 직관적 판단이나 효율적인 의사결정 보다는 수백명의 국회의원이 집단적 지혜와 협의적 조율이  민주주의 원리에 더 부합해서이다. 협치와 협의민주주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산뜻하게 전국민의 단순다수결로 뽑힌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거는 위임민주주의에 머물고 있다.  그리곤 기대에 어긋난다면서 단임제 대통령의 례임덕을 부추긴다. 

1987년 이후 7분의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줄곧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정작 단임 대통령제를 손보는 데는 실패했다. 숫자가 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추궁 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대통령에게는 모든 걸 책임지도록 몰아부치기가 쉽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우리는 대통령에게 전지전능의 마법을 기대한다. 일자리든, 코로나든, 부동산이든, 온갖 대형참사든,  다 대통령을 윽박지른다. 

정치적으로 편한 방식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정말 해먹기 힘들다. 

그런데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머리 아픈 일이지만,  그만큼 도전할 만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위는 이미 공직에 선출된 이들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엘리트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선출직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선거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법제화하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대통령 되는 큰 일만이 아닌,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일도 많지 않은가. 

국민 다수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기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의원내각제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현행 우리의 대통령은 현대판 제왕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로마에서 왔듯이, 우리의 대통령은 국정의 모든 책임을 지며, 강력한 국가 통수권을 갖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임을 제한하는 우리의 단임제는 나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벚꽃처럼 반짝 만발하는 강력한 단임제 대통령이 아니라 부문별 책임을 지는 분권형  의회제로 바꾸어 보는 건 어떤지.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최선이 어디 있으며, 완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부족함이 지나침보다 낫다는 고언을 따르는 게 현명한 건 아닐는지. 우리는 정치와 대통령에게 너무 과한 기대와 요구를 하는 건 아니는지. 진실되게 열심히 했으면 되었지, 무슨 도깨비 방망이를 찾지는 말자.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과한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했지 않는가. 그렇다고 '선의를 가지고 올바른 가치를 표방했지만 역량이 부족한' 문재인 정부를 마냥 감싸자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단임의 제왕적이라는 한국형 대통령제의 연속성 상에 존재한다. 정치가 민심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고까지 규정할 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대가인  고려대 최창집 교수가 제주에 와서 설파한  최소민주주의론은 무언가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얘기이다. 과잉이나 최대보다 2%의 부족에 방점을 두고, 최교수는 평소의 지론대로 직접민주주의 보다는  대의제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강조한 것이다.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제도권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 속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책임정치를 구현해 나갈 정치적 기제로서 정당의 효능성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정당에게 상당한 국고보조금을 주면서 정당 육성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정당도 그게 이념이든, 지역이든, 종교든, 특정의 지지기반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현실이다. 영어로 '부분'을 뜻하는 party가 아닌가. 애초에 정당은 부분인데도 툭하면 국민ㆍ국가ㆍ민족 등 전체를 아우르려고 한다. 그러한 모순적 기제에 민주정의 모든 걸 맡길 수는 없다. 

결국은 정당만이 아니라 다양한 그룹의 깨어있는 시민에게서  동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정당 속에서 커나가는 직업정치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동시에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 촛불을 든 다수의 시민, 언론에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 등 많은 시민들의  꾸준한 정치적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대의민주주의 못지 않게 참여민주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수백조의  국가예산을 집행하는 대통령과 관료집단에게 정당이 최소주의적 민주정으로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크다. 

그래서 촛불정국 이후  '운동권적 민주주의관'의 득세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운동권적 시각의 편협성과 오만에는 문제가 있음에는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현금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운동권 때문이라는 일방적 규정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유는, 운동권 못지 않게 수구적 반공주의자들의 무모함도 한 몫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정이 위기라는 전제도 합당한 지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필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민주정은 미국이나 서유럽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나름 잘 운영되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이라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강고함을 적절히 견제함은 물론이고 언제든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 있음을 투표행위를 통해 확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이 무서운 만큼이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탄탄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대선을 10개월 정도 앞둔 현 시점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의 면면을 보면, 더욱 한국의 민주정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최장집 교수는 이재명ㆍ윤석열 두 사람이 정당정치 밖에서 여론지지에서 1위와 2위를 다투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닌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ㆍ 일반화하는것인 아닌지. 이재명은 민주당 경선을 통해 경기지사 후보가 되었고 민주당의 정강정책내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윤석열은 야당후보들이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여겨진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것이 아니라 한국 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운동권적 민주주의관이 민주당을 흔들고 있는 만큼이나 수구 반공주의적 역사관도 국민의힘의 정상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한국의 양당정치가 시대의 요구에 맞춰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은 정당 밖에서 선택지를 찾을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을 시사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선거 전에는 정당 밖 인물에게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이 실제 대선에서 기존 정당 밖 후보를 선출한 경우는 없었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정주영, 박찬종, 문국현, 안철수, 반기문 등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한 때 이 분들이 바람을 일으켰던 이유도 정당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선 때마다 제3후보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분출한다는 것은 정당이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임을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자체 당후보 대신 제3후보를 통해 당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한 민주당은 민심을 읽지 못한 무능력 그 자체였다. 

문재인대통령이 임기초 내걸었던 분권형 개헌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댸통령제와 선택적 친화력을 보이고 있는 기존의 양당제 구도하에서 이득을 누리고 있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애써 분권형 개헌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언제든 촛불을 들 준비가 되어 있고, 선거 때는 정당 후보만이 아닌 제3후보에 대한 선호를 보이며 기존 정당을 일깨우는 국민, 투표 잘 하는 국민들이 바로 한국형 민주정의 미래가 아닐런지.

1987 이후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내용적으로 국민의 직접 참여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양길현 /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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