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20) 호텔거지는 아무 생각 없는 비아냥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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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20) 호텔거지는 아무 생각 없는 비아냥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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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코로나로 힘든 세상이다. 하시라도 바이러스를 옮기게 될까봐 마스크 쓴 채 조마조마하면서 살아가는 낯선 세상이 2020년이다. 더 문제는 그로 인해 촉발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두가 전전긍긍이라는 것. 코로나 방역은 개인이 조심하고 애쓰면 그래도 선방할 수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경제는 개인이 어떻게 할 대응하기가 어렵다. 부자면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더 코로나로 인한 각자의 어려움을 안은 채 속앓이를 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이에 정부만으로만 안 된다. 정부에게만 기대서는 안 되고, 공동체적 접근이 요청된다. 사회 곳곳에서 전개되는 작지만 진정성 있는 배려와 돌파가 그것이다. 

코로나로 외출과 모임이 줄어드는 만큼 의식주 가운데 먹고 입는 데는 돈이 덜 들어간다. 문제는 주거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가행진을 하는 전월세 세방 살이는 고달픔 그 자체이다. 특히 돈도 없고 반듯한 직장도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모든 게 다 갖추어진 집을 장만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 문득문득 하늘을 처다볼 때마다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게다. 그래도 당장은 그저 하루하루 조금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한 잠을 잘 수 방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면, 우선 그것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버티어 보겠다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심정일 것이다.

남아도는 오래된 호텔을 장기 숙박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그건 치솟는 주거 여건에 대한 하나의 고육지책이자 응급처방일 뿐이다. 호텔만이 아니다.  빈집이나 폐옥 등 안 쓰고 있는 주거지들을 찾아내어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야말로 정부정책의 첫걸음일 것이다.

사실 2017년 빈집을 활용하는 데 행ㆍ재정적 지원을 할 수있도록 '빈집특례법'이 제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빈집이나 폐옥도 하나씩 재활용해 나가는 준공공주택 접근은 말만 요란할 뿐,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과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주의 경우만 보더라도 2019년 현재 6,600호에 딜하는 빈집을 어떻게 활용할 지, 지혜를 모을 때이다. 기본주택론을 굳이 아파트에만 초점 맞출 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집과 호텔 등을 통해 주거 공급에서 총동원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호텔을 공공주택용으로 활용하자는 의제 제기는 부분적으로는 호텔의 과잉공급으로 인한 호텔 경기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텔이 장사가 잘 되고 있다면, 호텔은 단기 숙박용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호텔 수요 진작을 관광객에게만 의존하기가 어려울 만큼 사정이 급변했다. 한 때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려오는 관광호황 때 여기저기에 지어진 호텔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아 보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관광이 된서리를 맞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다. 객실판매율이 30~40프로라니, 말이 되는가.

그렇게 호텔업계 살리기 차원이면서 동시에 집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호텔을 공공주택용으로 활용하자는 데. 웬 호텔거지라는 조롱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호텔거지'라는 신조어를 누가 만들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좀 더 사려깊은 자세가 요청된다. 코로나로 인해 매일 매일  어찌할 수 없는 불안과 좌절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고 해도 그런 조롱과 비아냥과 같은 가학적인 배설로는 아무런 미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우선 호텔거지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 거지라기 보다는 호텔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맞다. 공공주거용 호텔에 사는 사람은 결코 부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거지라 칭하는 건 일종의 모욕이다.

고시촌이나 기타 어설픈 단칸방 보다는 호텔이 훨씬 지내기가 좋다는 점에서, 호텔거지는 아무 생각도 없는 비아냥일 뿐이다. 오히려 침대와 욕실 등 기본적인 것들이 갖추어 있다면 외부활동이 왕성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 매력적일 수도 있다. 

일보 양보하여 여기서 질문 하나. 가난한 사람은 호텔에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오히려 월세든 전세든 일반적으로 살기가 편한 아파트에서 거주할 만큼 돈이 없는 사람이 아파트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정돈이 잘 되어 있는 호텔에서 살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하나의 좋은 주거 대책이 아닐까. 그러니 아직 안정된 주거 문제를 채 해결하지 못한 처지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아담한 주거를 제공해 주는 것에 대해, 그렇게 거지 운운 하면서 딴지 놓을 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물론 찬찬히 살펴보면, 호텔을 이른바 청년 주거시설로 활용한다고, 그게 얼마나  주거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오래된 호텔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기 임대해서 산뜻하게 리모델링하여 널리 장ㆍ단기간 거주에 도움을 주자는 것은 매우 효능감이 높은 생각이다. 만혼과 비혼으로 젊은층의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음에 비추어 보면, 주거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도 보다 다차원적일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 종합대책만 쳐다볼 게 아니라 하나씩 모아 십시일반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게 아닐까.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주지하다시피 대개의 경우 기존의 오래된 호텔은 교통이 좋고 주변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는 그만큼 호텔에서 산다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편의를 제공해 준다는 걸 뜻한다. 호텔은 1인 가구에게 청소ㆍ쓰레기 처리ㆍ이부자리ㆍ수건 등 일상 생활에서 귀찮은 것들을 매우 쉽게 효율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미혼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호텔이 개인 프라이버시와 자유로움을 충분히 누리면서 쓸 데 없는 시간을 줄이고 나만의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호텔은 여행가서 부자만 숙박하는 그런 곳이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편견과 선입관이 호텔거지라는 이상한 용어를 낳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아니면 주거는 2인 이상 가족이 사는 아파트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호텔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주거 문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호텔은 가난한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1달 살이ㆍ반년 살이 또는1년 살이로 집을 떠나 살아야 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잘 갖추어진 주거형태로 새로이 변신하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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