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서 6월의 제주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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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서 6월의 제주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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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66)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세시(歲時)는 자연의 주기이며 곧 농사의 주기이다. 절기에 따라 농업생산의 공동체가 절기에 맞게 치르는 명절, 의식, 놀이의 관습인 제주의 세시 풍속을 살펴봄으로서 제주에서 농업의 흔적과 맥락을 월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1월의 세시풍속으로는 정월멩질, 마을 포제, 당굿 신과세제, 대보름 떡점, 입춘, 신구간이 있다. 정월멩질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므로 한 해의 안녕과 무사, 풍요를 기원하는 세시가 많이 행해지는 날이다. 마을 포제는 정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포제단에서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를 말하며 당굿 신과세제는 마을 본향당의 신에게 신년 인사를 드리는 굿이다. 대보름 떡점은 대보름날이 되면 시루떡을 쪄서 그 해의 운수를 점치는데, 이를 ‘떡점’이라 한다. 입춘은‘새 철 드는 날’이라고 하여 쌀밥을 해서 먹으며 입춘축을 써서 대문·마루·고방·부엌·외양간 등에 붙인다.

입춘날 보리밭에 가서 보리를 뽑아 보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 뿌리가 하나이면 흉년이 되고, 보리 뿌리가 셋이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2일까지 약 7일간을 신구간이라 한다. 이 기간에는 지상에 있는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린 시기이므로, 인간은 신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평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사나 묘지 손질, 그리고 변소 수리나 집 수리 등을 한다. 신구간을 이용해 이사와 집 수리를 하는 이유는 이 기간이 제주에서 가장 추운 시기로, 이사나 집 수리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한기를 이용하여 중요한 일들을 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월 세시 풍속으로는 영등굿, 방애불 놓기가 있다. 2월은 영등달로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시기이므로, 바다에 배를 띄워 항해하는 일을 금한다. 바다를 생업으로 삼는 어부와 해녀들은 굿을 하며 한 해의 무사와 풍요를 기원한다. 영등신은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제주 섬으로 들어오고 15일이 되면 우도로 해서 섬을 떠나는데, 영등신이 들어올 때는 ‘영등 환영제’를 하고 영등신이 떠날 때는 ‘영등 송별제’를 한다.

영등신이 들어와서 제주 섬을 돌면서 들판에는 오곡의 씨앗을 뿌려 주고 바다에는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 준다. 영등신이 섬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배가 항해하는 것을 금한다. 영등굿을 할 때 해녀들은 바다에 좁쌀을 뿌리며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한다. 방애불 놓기는 2월이 되어 땅에 눈이 녹으면 목장에 불을 붙여 묵은 해의 풀과 진드기 등을 죽인다. 이를 ‘방애불’이라 하며, 방애불을 붙여야만 새해의 고운 풀을 우마가 먹을 수 있고 우마의 진드기를 없앨 수 있다. 봄철 목장에 불을 붙이던 ‘방애불 놓기’를 축제화한 것이 ‘새별오름 들불축제’이다.

2월의 영등신을 배방선에 띄우는 의식(사진 왼쪽), 2019 고사리 축제 홍보 포스터.
2월의 영등신을 배방선에 띄우는 의식(사진 왼쪽), 2019 고사리 축제 홍보 포스터.

3월 세시 풍속으로 묘제[時祭], 한식과 청명, 고사리 꺾기, 미역해경이 있다. 묘제란 이미 지제(止祭)된 조상들을 위한 제의로, 정유(丁酉)일이나 정사(丁巳)일에 선묘에 가서 지낸다. 제주의 경우 선묘는 입도(入島)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묘제에 필요한 경비는 종중전(宗中田)을 사들이고 소작료 등을 확보하는 게 상례이나 집집마다 추렴하여 경비를 마련하여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묘제를 통해 친족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후일로 잡는다. 이날을 특히 명절로 삼지는 않지만, 집안에 따라서는 ‘문전멩질’이라 하여 해 뜨기 전에 간단히 제사를 지낸다.

모든 제물은 전날 마련해 둔 찬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며 찬 음식을 먹는다. 이날 성묘를 하며 산소를 보수할 데가 있으면 손질한다. 한식날은 현인(賢人) 개자추(介子推)가 불에 타서 죽은 날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식명절을 금지시키면서 새벽에 간단히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청명은 동티가 없는 날이라 하여 겨울 동안 돌보지 못한 산소를 돌아보고 손질한다. 청명날 날씨가 너무 맑으면 그 해는 흉년이 들고 날씨가 흐리고 어두워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3월 보름부터 4월 보름 사이에 고사리를 꺾는다. 꺾은 고사리는 살짝 삶아 말려 두었다가 명절이나 제사 때 고사리나물을 만들어 상에 올린다. 집에서 쓸 만큼의 고사리를 남겨 두고 친척집이나 친하게 지내는 집에 나눠 주거나 판다. 일상 음식으로 돼지뼈 삶은 물에 고사리를 넣은 ‘고사리 육개장’을 만들어 먹는다.

제주의 해녀들은 3월이 되면 날을 정해 겨울 동안 키운 미역을 캐기 시작하는데, 이를 ‘메역해경’ 또는 ‘메역해체’라고 한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바다로 나아가 미역을 캐며, 각자 캔 미역을 말려서 먹을 것을 남기고 수협이나 상인에게 판다. 요즘은 양식미역에 밀려 채취와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4월 세시 풍속으로 초파일(부처님오신날) 연등 달기, 머리 깎기가 있다. 불교 신자들은 음력 4월 8일 절을 찾아가 등을 달고 불공을 드린다. 이날 절에서는 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절을 찾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4월 초파일에 아기의 뱃속 머리를 깎아 주면 머리칼이 검어지고 잘 자란다고 한다. 과거 절에 가서 주지승에게 아기의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하여 자른 머리카락을 받았다고 하며, 대나무에 끼운 무쇠칼로 깎았다.

5월 세시 풍속으로는 단옷날 백초 캐기, 개역(미숫가루) 만들기, 쉰다리 만들기 등이 있다. 단옷날 백 가지 풀을 뜯어다 처마 밑에 걸어 말려 두면 만병을 고치는 약이 된다고 믿는다. 말린 풀은 아기를 낳은 산모의 약으로 사용하고 태어난 아기의 목욕물에도 사용된다. 그 외의 질병에도 백 가지 약초를 달인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비가 오는 날에는 밭일을 할 수 없으므로 무쇠 솥두껑에 보리를 볶아 가루를 내어 개역을 만든다.

개역은 여름철 간식이 되는데, 살짝 변해 가는 보리밥에 비벼 먹거나 물에 타서 먹기도 하며 가루를 들고 다니면서 먹기도 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에 타서 먹으면 더위를 식히고 배를 든든하게 해 주는 좋은 여름철 음식이다. 여름철 쉽게 변해 가는 보리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 시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순다리[쉰다리]라고 한다. 순다리는 술이 되기 바로 전 단계로, 맛은 달콤하고 새콤하다. 일꾼들을 모아 일을 하는 날에는 미리 준비하여 나눠 먹는다. 유산균 음료라 하여 근래에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

6월 세시 풍속으로 밭 밟기, 메밀 파종, 닭 잡아 먹는 날, 꿩사냥이 있다. 여름철 좁씨를 파종한 뒤 우마(牛馬)의 발로 밭을 단단하게 밟아 준다. 밭 주인은 밭밟기를 하기 전에 쌀밥과 구운 생선을 준비하여 그날 밭 밟는 우마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제석할망’[농경의 여신]에게 ‘밭 밟는 고사’를 지낸다. 밭을 밟은 때 수십 마리의 우마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밭 밟는 소리」라고 하며 지금까지 전승된다.

음력 6월이 되면 메밀 파종을 한다. 메밀 파종은 여름철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므로 농부들은 전날 밤 밭에 가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 더워지기 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이날 농부의 식사는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로 이를 먹어야 메밀 농사가 잘된다는 속신이 있다. 음력 6월 20일 집집마다 닭을 삶아 백숙으로 먹고 그 국물에 쌀을 넣어 죽을 쑤어 먹는다. 어린 아이에게 회충이 많으면 앵두나무 가지와 황토물을 한 사발 같이 넣어 삶아 먹여서 회충을 없앤다고 한다. 중병으로 허약한 사람에게는 오골계를 삶아 먹이고, 부인병으로 몸이 허약한 사람은 황계[붉은 닭]에 마늘·지네·백도라지를 같이 넣어 죽을 쑤어 먹인다. 속신에는, 여자는 수탉을 먹어야 좋고 남자는 암탉을 먹어야 좋다고 한다.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조를 이루어 꿩 사냥을 한다. 여름철이 되면 꿩이 털갈이를 하여 멀리 날지 못하기 때문에 꿩을 쉽게 잡을 수 있다.

꿩 사냥은 오름 위에서 망을 보는 사람과 꿩을 쫓는 개가 서로 팀을 이루는데 오름 위 높은 곳에서 꿩이 날아가는 방향을 본 사람은 개에게 그 방향을 알려주고 쫓아가 잡게 한다. 그날 잡은 꿩은 한데 모아 서로 나누는데, 개에게도 사람 한 몫의 꿩고기를 나눠 준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도 교육청(1996), <제주의 전통문화>; 진성기(1997), <제주의 민속>; 국립문화재연구소(2001), 제주도·세시풍속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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