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빚어내는 제주의 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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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빚어내는 제주의 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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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62) 역사속의 제주농업문화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까마득한 부족 국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의 제천 행사에서 남녀가 무리를 지어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삼국지』위서 동이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행사를 연례적으로 치르면서 음주 가무를 겸하였기에 제주 술의 민속도 이런 식으로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제주 술에 관한 문헌이 매우 빈약하여 구체적인 것을 파악할 도리가 없지만, 현존하는 기록에서 그 내력을 대략 유추해 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주를 많이 빚는다(多用燒酒)”고 하였고, “봄과 가을에는 광양당(廣壤堂)과 차귀당(遮歸堂)에 남녀가 무리를 지어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又於春秋 男女群聚 廣壤堂 遮歸堂 具酒肉祭神)”고 하였다. 이 기록은 제주에서는 소주가 많이 음용되었고, 제주시 광양당과 고산리 차귀당의 당제와 같은 무속 의례에 술이 이용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중종실록(中宗實錄)』 1515년(중종 10)조에는 제주에서 사망한 제주목사 성수재의 시신을 호상해 오는 내용 중에 “성수재는 일찍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번 변방 소임을 역임하여 자못 청렴하고 유능하고 명망이 있는 자였다. (중략) 그는 소주(燒酒)를 좋아하여 병을 얻어서 죽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제주에 소주, 즉 고소리술이 많이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1520)에는 “벼는 매우 적기에 지방 토호들은 육지에서 사들여다 먹고, 힘없는 자는 밭곡식을 먹으므로 청주는 매우 귀하며, 겨울이나 여름은 물론이고 소주를 쓴다(而稻絶少 土豪貿陸地而食 力不足者 食田穀 所以淸酒絶貴 冬夏 勿論用燒酒)”라 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제주도민의 대부분이 밭곡식을 먹는 까닭에 청주는 매우 드물고 밭곡식으로 만든 소주를 주로 음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기록들을 요약하면, 제주에서는 쌀로 빚은 청주는 매우 귀해서 정치적으로 지배층에 속하는 토호들이나 마시는 정도였고, 서민들이 음용하는 술은 잡곡으로 빚은 소주였으며, 제주의 토착 신앙인 무속의 당제나 굿에 술이 제물로 쓰였다고 하겠다. 이는 제주의 술은 주로 제사에 많이 이용되었음을 말하는 기록이다. 예전에 제주도를 ‘당 오백 절 오백’의 섬이라 하였다. 사실 섬 전역이 성역화될 정도로 무속 신앙이 성행하던 곳이 바로 제주도다. 춘하추동 가릴 것 없이 당(堂)에서 제를 지내고 굿판을 벌였다. 이때 당신(堂神)에게 반드시 술과 고기를 갖추어 제사를 드렸는데, 신에게 올리는 강신잔(降神盞)에 따르던 술이 다름 아닌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다.

예로부터 제주는 육지와는 달리 논이 거의 없고 토양이 척박하여 거친밭에서 잘자라는 밭작물을 주로 경작하여 왔다. 잡곡으로는 좁쌀, 대소맥, 밭벼, 기장, 피, 수수 등이 있었으며 이를 주식으로 삼아왔고 술을 빚었다.

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곡물을 발효시켜 청주의 제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익힌 곡물의 가루를 발효시키면, 탁배기의 형태로 혼탁하였다가 발효가 끝나면 상층부와 하층부로 분리된다. 결국 상층부의 맑은 술이 청주인 셈이므로 청주는 있는 것이고, 다만 쌀로 꼬두밥을 지어 발효시킨 후 용수를 박아 퍼내는 육지식 쌀 청주는 제주에는 없었다. 제주에서는 토양이 척박하여 거친 밭에서도 잘 자라는 밭 작물(조, 보리, 밭벼, 기장, 피, 메밀, 수수)을 주로 경작해 왔다. 잡곡 중에서도 조 농사는 가뭄에도 잘 견디는 여름 작물로 가장 많이 재배되었기 때문에, 제주 농경의 기층 문화를 이루는 곡물이다.

특히 좁쌀은 종피가 두꺼워 누룩을 넣어도 발효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좁쌀을 가루로 내어 구멍떡인 ‘오메기떡’을 만들고, 이것을 누룩과 함께 발효시키는 것이다. 발효가 종료되면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리되는데, 전자를 ‘윗국’, 후자를 ‘아랫국’(또는 밑국)이라 부른다. 윗국은 암갈색의 청주이고 아랫국은 탁주가 된다. 청주는 고급 술로 제의나 귀한 손님 대접에 쓰고, 탁주는 일용주로 마시거나 고소리(또는 소줏돌)에 얹어 소주(고소리술)를 내리는데 사용하였다. 제주의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이 등장하고 나서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고려시대 몽골인이 제주에 정착하면서 전래된 술이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개성과 안동에 소주가 유명한 것은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그 지역에 주둔했던 결과이다. 제주는 남송과 일본 공략의 전초 기지가 되었고 몽고군의 목장이 되면서 100년 가까이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1273년(원종 14)에 몽골병 500명을 제주도에 주둔시켰고, 1275년(충열왕 원년)에 국립목마장을 제주 성산 수산평에 설치하고 이를 관리·감독하기 위하여 죄수 140여 명과 왕후·왕족들이 몽골에서 제주로 왔다. 또한 1282년(충열왕 8) 일본 정벌에서 패한 원은 제주에 몽고군 1,400여 명을 주둔시키고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이와 같이 원의 제주 목마장의 건설과 함께 몽골인이 제주에 유입되면서 고소리술 빚기가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에 널리 보급되어 저장용 술로 자리 잡아 제주의 대표적인 술이 되었던 것이다.

오메기술의 재료로 사용되는 차조(왼쪽)와, 차조로 만든 오메기떡

오메기술, 고소리 술과 함께 제주에는 보신주와 약용주 활용의 흔적이 많다. 제주의 한라산은 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듯이 산열매와 약초의 종류가 다양하여 약용주를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소주에 여러 가지 약재나 꽃, 열매를 침지하여 술을 빚은 가향증류주가 많고, 약재나 꽃 또는 열매를 오메기술을 빚을 때 미리 넣어 만든 약용가향 곡주류가 특별하게 발달되었다. 오합주는 오메기술을 이용여 참기름, 계란, 꿀, 생강등을 첨가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보신주이다. 회복기 환자와 몸이 허하면 오합주를 마셨다. 이외에도 증류 소주나 발효주(탁주·청주)에 동물성 식품을 첨가시켜 발효시킨 술(깅이술·지네술·뱀술)과 발효가 다 될 무렵 동물성 식품을 넣어 숙성시킨 후 고소리로 증류한 약용주(매술·닭고기술·돼지고기술)를 제조하기도 하였다. 이들 약용주가 신경통에 주로 사용된 것은 제주의 공기가 습해 신경통을 앓기 쉽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차조와 오메기술(왼쪽)과 고소리 술 닦기,「제주100년」>
차조와 오메기술(왼쪽)과 고소리 술 제조 모습, 사진 참조=<제주100년>

이러한 제주의 술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제주에서는 각 가정마다 오메기술, 고소리술과 함께 보신주, 약용주 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일제 침략기를 거치는 과정에서의 농업의 수탈과 함께 해방 이후 주류(酒類)에 대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하여 「주세법」(1949)을 제정하여 가정에서 술 빚는 것을 불법화하고 단속을 행하면서 가정에서는 밀주를 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도 일제의 「주세법」이 그대로 통용되고 양곡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양곡관리법」(1950)을 제정하여 밀주를 엄하게 단속하였다. 이와 같이 술 정책에 국가가 관여하고 통제함으로써 제주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현존하는 한국의 민속주 중 구멍떡으로 빚은 유일한 술로 그 보존 가치가 높다. 또한 제주 한라산의 산열매와 약초 등을 활용한 약용주 및 가향주 등은 미래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를 활용하여 술의 맛을 좌우하는 효모를 개량하고 술에 적합한 농산물 품종을 발굴하여 다른 지역의 술과 차별화시킨다면 제주의 술은 양주, 맥주, 와인, 사케 등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명주(名酒)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도(1998), <제주도의 식생활>; 서부농업기술센터(2011), <제주농산물로 우리술만들기>; 제주여행정보매거진 아이러브제주 (2009), <제주의맛 오메기술>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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