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16)빗물에 씻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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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16)빗물에 씻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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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걸 좋아한다고 자처하던 나.

사실은
비가 내리는 걸 좋아한다고 바득바득 우기지는 못한다.

내리는 비를 뚫고 걸을 용기.
비속을 뚫고 나를 보낼 용기는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
제 몸도 못 가누고 휘청휘청 곧 자빠질 것 같은?아이가 커다란 우산을 둘러쓰고 아이들과 작은 개천으로 변한 듯 물이 길 위로 범람하는 자리의 한가운데 휘청거리며 위태롭게 서 있는 나를 본 어머니는 득달같이 달려와 잡아다가는 눈물이 내를 이룰 만큼 혼쭐을 내셨었다.

그 뒤로 난 비를 맞는 게 싫어졌던 것 같다.
어머니는 혹여, 부실한 자식이 큰일이나 치르지 않을까 겁이 더럭, 났을 게다.
또래보다도 한참은 작아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유급을 시켜 3살이나 아래인 아이들과 학교를 다녔던 나는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졸업을 앞둔 6학년짜리 언니의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다. 

저도 작은 몸에 책가방을 멘 동생을 등에 업고 손엔 제 책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학교를 가면 언니는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우선 볼일을 보게 한 뒤에 교실로 데려다주곤 했다.

그리고 짬짬이 쉬는 시간이 되면 찾아와 나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곤 했다. 언니는 저도 어린 나이였음에도 제 몸 가누지 못하는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참 분주하고 어렵게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 나이에도 내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나는 가만히 앉혀두면 하루 종일이라도 있었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니는 것이었다.

한번은 언니가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하는 바람에 옷에 실례를 해야 했었던 적도 있고, 한번은 담임선생님의 팔에 번쩍 들려서 화장실로 가야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
어린 나이에도 번쩍 들려진 허공에서 나를 향하던 그 많은 시선들이 얼마나 따갑게 다가오던지.... 지금도 가끔은 기억에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떠오를 때면 알지 못하는 무엇이 가슴을 찌르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게도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조차도...

그렇게 앉아 혼자 생각에 젖었을 저녁 무렵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벨소리에 놀라 허둥거리며 끙끙... 용을 써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세우느라 혼자 북새통을 한참이나 벌이고 난 뒤에서야 현관 앞에 서게 된다. 

“누구세요?”
조급한 마음에 온몸으로 문을 밀어 열어본다.
같은 아파트의 건너편 동에 사시는 어른이 열린 문 사이로 서서 서성이는 모습
 
장애인야간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학교에서 학생을 위해 이동지원을 하는 차를 운전해주시게 되면서 알게 된 그분은 아파트에 같이 입주하게 된 이웃사촌.
가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시는 성품이 선한 분이시다.
"아, 있었네요? 허허... 나 뭐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 예. 선생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면 해드릴게요..."


"응,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인터넷을 잘 못해서 그러는데... 뭣 좀 찾아줄 수 있겠어요?"
"아, 예. 그럼요... 제가 찾을 수 있으면 찾아드려야죠... 타자연습은 잘 되세요?"

"아. 예... 그때 윤미씨가 그걸 가르쳐 준 뒤로는 그게 없어지지 않고 잘돼요... 내가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꺼서 그랬던가, 봅니다. 타자연습 하고나서 가르쳐 준대로 끌 때도 종료, 그걸로 끄니까 이젠 잘 돼요. 허허허..."

눈이 선한 선생님은 그저 뭐든지 고맙다고 자식뻘이나 되는 어린 내게도 존댓말을 하신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그분이 원하는 걸 찾아 메모지에 적어 드리자 고맙다고 또 허허... 웃으시고는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시고는 돌아가신다.

그분이 걸어가시는 등을 바라보면서 조금 전까지 떠오르던 것들에 대한 민망함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언제나 나는 늘 받아야 하는 것들에만 마음을 기울였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는 것에는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나.

부족하고, 아쉽고, 서운했던 것들에만 마음이 가고 만족이라고는 없던 나는 내 주위를 둘러싼 내 가족, 내 지인, 주변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은 그리 많이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오늘
비가 정말 지겹게 내리는 휴일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고, 그래서 삶의 터전도 새로이 닦고 있는 50초로 어른이 세상 부러운 것 하나 없는 듯, 선한 눈빛을 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에 나는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하던 다짐을 허물어지게 한다.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살아야지
하던 내 홀로서기의 시작에 쥐어지지 않는 주먹을 불끈! 쥐던 낯부끄러움을 내리는 빗물에 슬며시 내어놓아 나의 이기심을 씻어내고 싶어진다.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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