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6) 미안한 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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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6) 미안한 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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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미 객원필진

늦게 공부를 한다고 앞뒤도 안보고 짐 싸들고 기숙사로 들어가 지낸 다섯 달 동안 손에 쥐고 있던 돈을 졸졸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처럼 쓰고 보니 생계가 막연해지게 된 채, 한 학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혼자 ‘다 늙어서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야....’ 괜히 나를 향해 돌도 한번 던지고,
‘이제 아니면 언제 하냐?’ 나를 향해 대들어보기도 하는 희한한 꼴을 구경꾼도 없이 혼자 하고 놀았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앉아 걱정을 이마에 늘어뜨린 채 있다가 누군가에게서 주워들은 창업교육 소식이 갑자기 떠올라 나비의 날갯짓 만에도 폴랑폴랑 들썩거리는 불안한 마음에 더욱 귀가 얇아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낑낑대며 찾아가 교육을 받았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창업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공무원들과 경제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와 강의를 하고는 있었지만 당장이 급한 상황에 빠져 마음만 조급한 나는 암담하고 갑갑한 마음에 강의를 집중할 수가 없어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고 앉아 주변을 생각 없이 두리번거리다 한자리 건너 옆자리에 앉은 아는 얼굴을 향해 문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장애인 행사에는 어쩌다 한번 가게 되는 날라리회원인 나와는 다르게 행사 때마다 참 열심히 참석하시는 분....

제주도에선 널어진 게 ‘삼춘’ 이라고는 하지만 그 분은 매일 복지관에 찾아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참여하셔서 늘 뵐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게 만드시는 분 중에 한 분인 삼춘은 점심을 드시려 함께 오신 듯 절친해 보이는 ‘소나이삼춘’과 앉아 멀리 있는 주인을 불러 뭐라뭐라 주문을 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삼춘을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반가움에 빤히 보고 있던 내 시선이 식당 안을 둘러보시던 삼춘의 시선과 마주쳤다.

나는 얼굴만 아는 분이라 그저 고개만 끄덕, 하고 인사를 하고 웃었다.
“잘도 오랜만이다예...”

속으로 웅얼거리는 내말을 알아들으셨을까... 삼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눈가에 자글거리는 세월을 만들고 또 나를 향해 웃어주신다.
그러는 사이에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쟁반을 들고 삼춘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올려놓은 것은 달랑 소주 한 병과 말간 소주잔 두 개.

한 여름.
점심 밥 때에....
고기와 밥이 넘쳐나는 밥집에서 점심으로 삼촌의 상에 올려진 것은 쉬어터진 싸구려 김치 한 접시 없는 소주 한 병과 술 회사 이름만 떡 하니 박힌 야박한 유리잔 두 개.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삼춘에게 ‘왜 밥은 안 먹느냐?’ 물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물어보지 못하고 이유도 없이 목이 메고 심장이 울컥거려대는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 나를 모르는 삼춘은 일행분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드신다.

그렇게 혼자 복닥거려대는 내 앞으로 흰쌀밥과 고깃국이 턱하니 눈치 없이 올려놔졌다.
하지만 온 몸을 다해 울컥거리는 심장과 아릿한 눈가로 몰리는 물기를 견뎌내느라 난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밥을 노려보면서 복닥복닥 속을 볶아대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더 먹크라? 양! 이디 술 호나 더 줍써!...”
“그만 해여 게!... 밥은 안 먹으멍, 술만 먹잰 마랑!... 밥 먹으라. 나 사주마, 이?....”

“술 먹으민 밥은 나, 못 먹은다... 술 먹으민 밥은 안 받아... 술, 더 헐띠야? 양! 이디...”
“아, 데서. 난, 그만 먹크라. 미신, 술만 먹엉도 살아져 게!... 걸라! 가게.” 

그새 비워진 빈 술병을 보며 주인을 향해 술을 달라 외치는 '여자삼춘'과 요기를 하라 달래는 '소나이삼춘'의 오가는 소리는 도란도란 정겹기보다 투명한 소주 색깔처럼 칼칼 쓴 내나는 잘 벼려진 송곳이 되어 처량 맞게 복닥거리고 있는 내 속을 홰홰 휘젓고 다니며 취할 수 없는 독기를 풀어댄다.

“그만 허잰? 무사 게? 혼잔 더 허라! 이? 나 산덴 허난! 양! 이디 술 호나만 더 줍써!”
“아~ 그만 행 걸어! 되수다, 술 그만. 가게... 일어나라... 헌저...”
“... 에이고, 촘!... 혼잔 더 허랜 허난 게!... 경허라, 게건... 술값 받읍써! 얼마꽈?...”

'소나이삼춘'의 재촉에 마지못해 술자리를 털어내는 우렁찬 삼촌의 음성엔 맑은 술 빛에 반사되어 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우영밭의 가지처럼 아픈 생채기가 난 채, 어지럽게 흔들린다.

“미안허다 이... 오랜만이 바신디... 나, 낮이 술 먹었쟁, 욕허지랑 말라이...”

등을 두드리는 두툼한 손길에 시선을 들어 본 삼춘의 눈은 붉은 물기가 고여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크고 맑은 눈이 멋져서 늘 부럽다 하던 삼촌의 술 빛을 얻은 물기로 젖은 채 웃고 있는 눈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무작정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구, 아니마씸... 나가 삼촌을 어떵, 경 생각헙니까 게... 맹심행, 혼저 갑써예...”
“기여. 고맙다. 먼저 가마이... 먹엉 가라... 다시랑 또 보게...”
“예... 삼촌, 맹심행 갑써예!”

마비된 뻣뻣하고 기력 없는 한쪽 다리를 툭, 툭, 내디디면서 삼촌은 열려진 식당 문을 밀듯이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삼촌은 평범한 시골의 아낙 이였을 게다. 밭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고, 남편과 더불어 부모를 봉양하면서 겪는 인생의 풍파를 당연한 듯 살던...

장애란 올가미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잃고, 한쪽 팔과 손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삼촌은 우영밭에 심어 키운 풀노물이며, 풀고추, 부루들을 솎아내 자식의 발에 신길 운동화 한 켤레, 남편의 밥상에 올릴 막걸리 한 되, 노부모의 주전부리를 위해 낡은 몸빼 속 안주머니를 하루씩 채우며 땀 흘리는 걸 행복해 하셨으리라.

그런 삶의 땀을 이젠 흘리지 못하는 미안함, 죄스러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설움을 삼촌은 어찌 다 감당하셨을까?...

나는 자식도 없고, 내 밥벌이를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도 흰머리 성성한 부모에게 의탁한다.
그런 나는 과연 오늘 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받은 이 한 끼 밥상을 버릴 자격이 있을까?...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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