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예산' 금물...갈등문제 사회적비용 손실, 만회 방법은?
설 연휴가 시작됐으나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다. 시끌벅적한 모습도 사라지고, 민생현장에서는 한숨소리만 크게 들려온다. 곳곳에서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관광객 급증에 따른 관광산업 호황으로 올해 제주 경제성장률이 7%대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서민경제의 체감은 그리 썩 좋지 못하다. 당장에 감귤값 하락 등으로 성난 농심이 들끓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상 유례없는 예산파국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작년 연말 도의회 예산심의에서는 제주도 올해 예산안 3조8194억원 중 1636억원이 '묻지마 식'으로 삭감됐다. 이를 두고 '막장 예산', '보복성 예산', 누더기 예산' 등 온갖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화살은 의회로 집중됐다.
물론 원희룡 제주지사의 '의회 무시' 내지 '감정 자극' 등 과정상의 원인제공 논란이 있으나 계수조정을 통해 의결한 예산안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응당 의회가 져야 할 몫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갈등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지 모르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도민의 소중한 예산을 볼모로 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에 예산파국사태 수습책으로 긴급하게 편성된 1634억원 규모의 제1회 추가경정예산도 갈등의 회오리 속에서 장기간 방치되거나 제2의 예산파국으로 치달을 우려를 더욱 크게 한다.
농어업인들과 장애인,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예산파국 사태 장기화에 큰 우려를 표명하며 설명절 이전에 추경안을 처리해줄 것을 바랐지만, 추경 조기처리라는 '설 선물'은 없었다. 설 연휴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추경예산이 설명절은 고사하고, 2월 내 처리도 사실상 무산됐고, 3월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추경안을 제출한 시점에서는 빠른 심의가 예상됐으나 원희룡 지사의 언론 인터뷰 발언을 기점으로 해 또다시 감정적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의회는 오는 27일까지 정책협의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3월2~3일 중 원포인트 임시회를 개최해 원 지사를 출석시킨 가운데 긴급 도정질문을 갖는다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원 지사가 예산문제는 정책협의 대상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하면서, 예산심의 일정은 3월초 긴급 도정질문이 끝난 후에야 잡히게 됐다. 다행인지, 의회 내부에서도 긴급 도정질문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서 오는 24일 의회운영위원회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추경예산 마저도 또다시 장기간 방치되면서 자칫 귀중한 '골든타임'을 놓쳐 지역경제 악영향을 미치는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를 갖게 한다.
설 연휴를 맞아 도정과 의회 두 기관의 수장이 설 민심을 읽겠지만, 추경안이 의회로 제출된 이상, 도의회의 빠른 결단이 요구된다.
우선 의회는 구성지 의장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추경을 제출하라"고 언급한 바 있는 만큼, 이미 제출된 추경안에 대한 조속한 처리의지를 보여야 한다.
시간을 두고 심의하겠다는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으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이 입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책협의회', '긴급도정질문'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의사일정을 전면 재조정하는 방법으로 해서라도 2월말 별도 임시회를 연다든지, 늦어도 3월 임시회에서는 처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불안해하는 도민들에게 더 없는 '설 선물'이 될 것이다.
두번째, 추경예산 심의를 하게 된다면 심의의결권은 분명하게 행사하되, 지난 연말과 같은 예산에 '감정'을 결부시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번에 묘하게 다시 꼬인 감정적 충돌상황은 두 기관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예산심의는 어디까지나 '도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풀어야 할 것이다.
세번째, 제주도가 '예산개혁'을 선언적으로 발표한 만큼, 도의회도 이 예산개혁이 실제적으로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심도있게 검토하고 견제하는 한편, 의회 내부 오랜 관행인 계수조정 등 심의과정의 개혁방안도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삭감과 증액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선심성 예산, 우선순위가 잘못됐거나 문제가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삭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는 의회의 중요한 기능인 동시에 권한이다.
그러나 '증액' 관행은 냉철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산증액은 제9대 도의회 때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해, 2011년 247억, 2012년 331억원, 2013년 365억원, 2014년 519억원 등 계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의 제주도에 대한 기관 종합감사에서는 이러한 선심성 증액에 대해 집행부가 재의요구를 하지 않은데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꼭 감사원 지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해마다 연말이 되면 증액예산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어 이에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많은 민원을 접하게 되고, 그 속에서 어떤 예산이 시급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예산반영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가 수반돼야 그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지역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액을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필요한 지역민원이라면 계획을 수립하고, 각각의 계획들은 일반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타당성 및 우선순위 등을 검토한 후 반영돼야 한다.
꼭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계획서 내지 설명서를 제시할 정도로 해 조정을 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절차는 편성과정에서 이뤄지면 더없이 좋은 것이다. 중요한 지역 민원사업이 이번 편성과정에서 기회를 놓쳤다면, 다음 추경 때 편성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증액'에 집착하기 보다는, 계수조정의 원칙과 기준을 담은 의회부분의 예산제도 개혁 내용을 선언적으로나마 제시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어쨌든 이번 추경예산과 관련한 공은 도의회로 넘어왔다. 추경예산 규모가 원안수준인 1634억원에 이르는 만큼 심도있는 심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증액'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원 지사의 말에 불쾌해 하는 분위기도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또다시 파행이 빚어지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추경예산이 시급히 처리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번 기회에 '예산제도 개혁'을 일궈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파국 문제는 이제 도정과 의회의 단순한 갈등 문제 차원만이 아니다.
지난 3개월 예산갈등'이 빚어져 크나큰 사회적 비용 손실을 초래됐다. 또 예산의 수혜자인 도민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손실된 비용과 피해를 보고 있는 도민들을 생각한다면, 그동안의 논쟁이 헛되지 않도록 '예산개혁'이라는 발전적 성과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제주도정과 의회의 갈등상황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제주도민의 설 민심이 아닐까.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