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판결'...행정당국 그래도 할 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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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판결'...행정당국 그래도 할 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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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 법원판결의 의미와 전망
"명확한 근거없는 행정처분이 문제"...시국 현수막 논란 새국면

특정사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한 현수막이 내걸릴 때마다 '공공성'을 내세워 철거를 해왔던 행정당국이 이젠 종전의 명분으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제주지법 행정부가 11일 '현수막 게시신고 반려처분 취소청구 소송'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원고인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서귀포시당원협의회 남원분회의 승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현수막 게시'의 정당성을 다투는 작은 사안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법률에 의한 명확한 근거없이 이뤄진 행정당국의 관행에 일격을 가하는 의미있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한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6월29일 민주노동당 남원읍분회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은 해군기지 철회로부터!"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옥외광고물 표시허가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촉발됐다.

현수막의 내용만 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의견광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시각은 달랐다.

서귀포시는 해군기지 문제의 경우 국방부장관이 국방.군사시설사업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거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실시계획을 승인한 점, 그리고 옥외광고물법 제5조 제2항 제6호의 규정에 위배되는 점 등을 들며 이 신청서를 반려했다.

신청에 따라 당일 하루 내걸렸던 현수막은 곧바로 철거됐다.

민주노동당은 정당 활동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한 처분이고, 옥외광고물법상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철거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모두 이 2가지 모두 취소돼야 한다며 서귀포시를 상대로 해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국가계획에 의해 승인 결정이 난 사항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옥외광고물법 관련규정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었다.

서귀포시는 이 두가지를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고, 전자의 사항은 후자의 법률에 의해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즉, 해군기지 반대의견을 담은 현수막의 경우 옥외광고물 관련규정에 의해 내걸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해군기지 문제와 옥외광고물 관련규정은 별개로 해석했다.

특히 서귀포시가 현수막 게재신청을 반려한 결정적 근거로 삼았던 옥외광고물 제5조 제2항 제6호의 규정을 극히 예외적인 규정으로 판단했다.

제5조는 '금지광고물 등'에 관한 내용으로, 광고물에 표시해서는 안되는 내용을 적시하고 있는데, 서귀포시는 이 중 제6호의 '기타 법령의 규정에 위반되는 것'을 들었다.

해군기지 사업이 국방부 장관의 승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므로, 이를 제6호에 대입해 반려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제6호의 '법령의 규정에 위반되는 것'이란 말 자체가 용어의 정의나 구체적 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는 의료법이나 약사법 등과 같이 다른 법령에서 광고를 금지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규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해군기지사업의 실시계획이 승인된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법령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즉, 서귀포시의 현수막 게시신청 반려처분은 옥외광고물법상 근거없이 이뤄진 위법한 처분이어서 취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수막을 철거한 조치에 대한 취소처분에 대해서는 공권력 행사를 통해 철거가 완료되면서 이미 그 효력이 없어진 만큼, 이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행정당국이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 관련 법률적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과도하게 권리를 침해한 사례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미가 크다.

역으로 말하면, 앞으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영리병원이나 FTA 등 시국과 관련한 현수막을 합법적인 영역 속에서 내걸고자 할 경우 행정당국은 이를 제한할 이유가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현수막 문제에 있어 행정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시국 현수막 대부분이 합법적인 영역의 틀인 공식 현수막 걸이대에 내걸리기 보다는 집회현장이나, 숨바꼭질식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실정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극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설령 제한하더라도 법률로서 행해져야 하고, 이 경우도 그 사유가 명확해야 하며, 피해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 패소한 서귀포시는 이러한 당연한 원칙을 저버리고, 표현의 자유를 현격히 침해했다는데 잘못이 크다 할 것이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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