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허믄 그치룩 글을 잘 써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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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떵허믄 그치룩 글을 잘 써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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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36> 글쓰기와 문화권력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정반대로 글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난해한 문장으로 이론적인 냄새를 풍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허세일 뿐입니다. 하기야 대중이 이해 하기 어려운 힘든 글을 써야 그들에게는 이익입니다. 어려운 단어들을 골라 쓰며 복잡하게 말해야 지식인 대접을 받으면서 특권층처럼 군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지식인들이 회의에 초대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강연에 알맹이가 있 습니까? 쉬운 말로도 더 깊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 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노암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중에서

'글쓰기와 문화권력'이라, 뭐 대단한 글은 아니고요. 글을 쓰는데 있어 지나치게 어렵게 현학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그 심리는 어떤 것일까 잠깐 생각해봤어요. 많이 배우고 알고 있어서 그걸 과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요. 글을 쓰는 그 당시의 자기주관에 지나치게 몰입되어서 자기만의 논리나 감정 속에 매몰된 그런 글일 수도 있겠고요.

어쩌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서 널어놓다보니 장황해지기도 하겠고요. 또는 자신이 확실히 잘 알지도 못하는 것 까지도 그 글에 집어넣다보니 산만해지기도 하겠지요. 또는 자신이 더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누군가에게 추궁당할까 봐, 쫓기듯이 누가 잘 알지 못하도록 일부러 어렵게 쓰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쩌면 이건 스스로 자기비하의 소치는 아닐까요. 지나치게 어렵거나 현학적인 글은 잘 들여다보면, 주어와 술어가 모호하고,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문단이 될 정도로 아주 길어요. 또 전문 용어가 쓸데없이 많이 나오고요, 영어나 일어식의 문어체 투가 많고 전체적으로 문장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뭔지를 모르게 돼요.

주제가 불분명해지는 것이지요. 자기주장이 분명하면 글 자체도 분명해지는 법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과시욕에서 출발한 글쓰기는 자기만족은 될지언정 자기비하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기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그 자신은 나중에 그 글을 보면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 서정홍의 시, 「시인이란」전문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항간에 유행한 적이 있는데요. 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문화를 통해서 일정한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것을 문화권력이라고 한다네요. 문화를 향유하는 기존의 기득권층을 겨냥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요, 요즘 활발히 활동하는 신흥세력들의 기득권화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문화가 특권층만 독점하는 것을 철폐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히려 특권층이 되어 문화의 민주화, 민중들에게 돌려줘야 할 사명감을 잊어버리는데 대한 자기비판이기도 합니다. 모든 자료와 정보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좌중의 모든 주도권을 행사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독불장군들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권력이나 권위를 지극히 혐오해서 그걸 누리고 호사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게 안 보는 편입니다. 제주작가회의 모 형과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무슨 무슨 장이라든가 무슨 무슨 대표라는 걸 절대로 갖지 말자!’고 다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형과 이런 다짐을 했으므로 저가 먼저 깨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라고 하여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민주적으로 정당하게 행사하는 권력은 바람직합니다. 지금은 비록 그 숫자가 적고 힘이 작을 지라도 존중받아 마땅한 세력들입니다. 그들의 권력은 일부 가진 자의 권력이 아니라 문화 민주주의를 위한 공동체 문화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조직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반민주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은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문화권력 중에서 최고의 권력은 아마도 조 뭐라든가 중 뭐라든가 동 뭐라든가 하는 거대언론들일 겁니다. 이들이야말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현란한 말의 성찬과 허구의 기사들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화권력보다는 조금 작은 의미로 쓰이는 문학권력이나 문단권력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서울 중심의 일부 유명세의 작가나 문학지 등의 단체가 행사하는 권력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지방이나 여성 등 비주류의 문인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소외당하기도 합니다. 저는 바로 이런 ‘권력’에게 한 판 실감나게 당해보기도 했어요.

모름지기 선배는
후배를 등쳐먹을 수 있어야 한다
후배의 작품을 가로채고
후배를 종으로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선배의 똥구멍이나 닦게
크지 못하게 그냥 놔두어야 한다
그렇다 근엄하게 눈빛 빛내며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고
후배는 영원히 봉이다라고
철저히 세뇌시킬 수 있어야 한다
-졸시, 「선배론」 부분

그런데 대체로 이런 ‘선배’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글을 어렵게 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이건 또 하나의 권력의 횡포라고 느꼈어요. 그렇지 않나요. 이건 글 자체에 대한 모멸이자 독자들에 대한 고문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보세요!

어떤이 : 어떵허믄 그치룩 쉽고 재미나게 글을 잘 써집니까?
김경훈 : 그거 알젠허믄 막걸리 한두 되 정도로는 안될 건디?

저도 이렇게 자신을 ‘튕기고’ 있습니다. 권력의 마각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아차! 아, 이래서 권력화가 무서운 것이구나! 권력의 단맛에 빠지면 오로지 유아독존이 되어서 대중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 거구나! 이런 생각에 머리털이 쭈뼛 서면서 두려워졌어요.


그렇구나, 적은 외부에만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도 나를 노리고 옥죄고 있는 것이구나! 부당한 권력에 대한 항거를 포기하거나 복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권위의식을 가질 때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되는 것이구나!

아, 그러면 이 글도 어렵게 비쳐지지는 않을까?
아, 나는 스스로 권력자연權力者然 하지는 않았을까?
아, 나도 어느 순간 제주작가 모 형과의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닐까?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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