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제주인 배우 김철의씨의 '입국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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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인 배우 김철의씨의 '입국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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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4>조선적(朝鮮籍)이라는 것

오는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제주문예회관에서 제5회 4・3평화마당극제가 열립니다.

광주와 청송, 안산과 부산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당극단이 공연을 펼칩니다. 저마다 생명과 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공연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마당극제에 초청된 일본 「극단 항로」의 재일 제주인 배우 김철의씨는 올해로 내리 세 번째 제주행이 끝내 무산됐습니다.

외교통상부는 김철의씨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 요청에 대해 내리 3년째 ‘불허’ 판정을 내렸습니다. ‘마당극제 참가’라는 분명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여행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조선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에 대한 입국 거부는 위법’이라는 서울 행정법원의 명문 판결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입국불허 조치는 계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4월 17일 일본 오사카 관음사에서 열린 현지 제주4·3위령제에서 초연된 「극단 항로」의 ‘蛇の 島(뱀의 섬)’ 공연은 관객들을 울음바다로 몰아넣었습니다.

재일(在日) 3세들인 김철의씨와 김민수씨의 2인극으로 진행된 이 공연을 보고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원들도 눈시울을 붉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공연을 보고 감동한 제주4・3유족회 회장 등이 김철의씨의 고향방문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지만 입국불허의 견고한 문은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4.3위령제에 초연된 극단 항로의 공연 '사의 도' 중 4.3희생자들의 종이 위패와 그들에게 바쳐진 꽃들 .<헤드라인제주>.<헤드라인제주>

이쯤에서 ‘조선적(朝鮮籍)’이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선뜻 북한의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연상키 쉬우나 그건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2백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강제징병과 징용으로 일본에서 머물 때 일본 정부는 이들에게도 일본국적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뒤 일본 정부는 이들에게 일본국적을 무효화하고 일괄적으로 한일병탄 전의 국호인 ‘조선’국적으로 바꿔버립니다.

박정희 정권시절 체결한 한일협정 이후에 재일동포들은 국적을 한국 또는 북한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과 북 모두를 인정하지 않거나, 분단되지 않은 ‘하나의 조선’을 염원하는 사람들은 그냥 ‘조선적’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적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무국적’이라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입니다.

한일병탄으로 어긋나기 시작한 재일 조선인들의 삶은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망가지고 뿌리 뽑히게 되는 것입니다.

재일동포들이 이중 삼중의 차별과 소외,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도 아닌,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단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녀야
강휘선 무용단의 어엿한 한 사람으로 제주에 온
재일 조선인 4世 소녀야

올해 네 살된 너는
밝은 미소로 기차놀이 무용공연을 하였지
휴전선도 없고 분단의 아주 사소한 앙금도 없이 너는
한반도가 너의 길이 되어 달리고 또 달렸지

무대 위 커다란 소나무 팻말에 적혀 있는
‘판문점’이라는 흉물의 뜻을 너는 알까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금줄을 너는 알기나 할까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채 알기도 전에
너는 열네 살이 되겠지 그때가 되면 너는 덜컥
가슴을 치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외국인 등록갱신’이라는 쇠망치 소리를 듣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소녀야
태어나서 자란 나라와 조국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재일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너는 스스로 뼈아프게 되새기겠지
차별과 소외라는 것에 대해서도 너는 온몸으로 느끼게 되겠지

너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너에게 고스란히 유전되는 고통의 정체에 대해
민족이나 조국 그리하여 자기정체성에 대해
너는 무수한 날밤 지새우며 고민하겠지

그러나 소녀야
그 모든 아픔을 너의 세대들에게만큼은 물려줄 수 없구나
너가 오늘 달리고 달린 그 길이 꿈이 아니라고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이라고
나는 지금 너에게 말하고 싶구나

소녀야
재일 조선인 4세 소녀야
이 제주에서부터 백두까지 통일의 선로를 하나씩 놓자꾸나
너희의 꿈을 위하여 못난 어른들은 선로의 침목이 될지니

소녀야
너희들은 마음껏 내달리거라
10년 후에는 너희가 주인되는 세상이 되리니
너희의 마음 속에는 오직 푸른 꿈만 가득하거라
나의 딸, 조선의 소녀야
- 졸시, 「재일 조선인 4세 소녀에게」 전문


이제 다시 처음의 공연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단지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입국을 거부하고 국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비인도적이고 몰상식한 처사일 뿐입니다. 해외 여행증명서 하나를 받는 데도 수모를 겪어야 하는 것이 2011년 재일 조선인들의 처지이자 한반도의 인권 현실입니다.

현 정부에 들어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여파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나는 내 몸에 흐르는 제주의 핏줄을 사랑합니다. 올해가 안되면 내년에 다시, 내년에 안되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서, 죽어서 뼈 한 조각으로 남아도 제주 땅에 오겠습니다.” 다만 제주 공연의 성사를 위해 국적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김철의씨의 비장한 말입니다.

그는 ‘왜 지금 이 시대에 조선 국적을 가지느냐?’는 질문에 “나는 역사의 비극을 잊지 않고 전하기 위해 조선 국적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그의 신념은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제주에서부터 백두까지 통일의 선로를 하나씩 놓’고 우리들이 그 ‘선로의 침목이 될’ 각오와 실천이 있는 한 분명히 그의 꿈은 이루어지리라 확신합니다. 그 꿈을 우리가 함께 꾸는 한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의 공연을 보며 함께 웃고 함께 울게 될 것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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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 2011-04-28 08:43:54 | 211.***.***.39
조선국적을 버리지 못하는 그의 이유가 큰 감동입니다
분단시대의 아픔이 일본에서도 이렇게 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