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캐나다인, '비치발리볼' 기획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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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캐나다인, '비치발리볼' 기획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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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제주] (28) 원어민 교사 댄 네이븐의 '아름다운 생각'
"떠나간 친구 그리며 대회 기획...남은 자녀 도와요"

2년 전 한 캐나다인이 세상을 떠났다. 제주 여자인 부인과 슬하에 3살과 4살 자녀만을 남긴 채.

갑작스런 작별에 그의 친구는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하지만 슬퍼하며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친구의 남겨진 가족들을 돕자'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시작된 '자선 비치발리볼 대회'가 올해로 벌써 5회째를 맞았다.

대회를 주선한 댄 네이븐(Dan Nabben, 캐나다, 31)은 친구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5회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댄이 퓨리 비치발리볼 대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댄은 지난 2003년 제주를 찾았다. 그보다 앞서 제주에 살고 있던 사촌의 권유에 의해서다. "제주는 멋진 곳이니 한번 와보는 게 어때?"라는 사촌의 제안에 제주를 찾은 댄은 그 후로 제주에 정착했다.

학원가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던 그는 지금은 정식 원어민 강사로 등록돼 한림고와 한림공고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를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에게 비보가 날아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퓨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것.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절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게 믿을 수 힘들었으니까요. 한동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죠."

하지만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 만은 없었다. 떠나간 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잠겼다.

그러던 중 친구가 남긴 부인과 자녀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자녀들은 당시 1살과 2살. 부인 혼자서 갓난 아기 둘을 키우기에는 경제적으로 버거워 보였다.

친구를 위해 돈을 모으기로 했다. 친구가 떠나간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어도, 경제적 도움은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뜻이 맞는 친구 몇명이 모였고, 자선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런데 절친한 친구도 아니면서 왜 굳이 어려운 일을 맡으려 했을까. "절친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봐요. 정말 친한 친구라면 친구 가족의 곁에 있으면서 힘이 되어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 퓨리 비치발리볼 대회 5회째...참가 문의 쇄도

댄 네이븐. <헤드라인제주>
막상 돕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다양한 물건들을 경매에도 올려보고, 직접 만든 티셔츠와 베개도 팔아봤다.

"그 정도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좀더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자선 대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친구의 이름을 딴 '제주 퓨리 비치발리볼 대회'가 기획됐다. 대회 참가비로 일정액을 걷고, 대회장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팔아 성금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마저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대회를 치르는데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모으는 게 어려웠어요.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이메일 보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죠."

그의 정성이 통했을까. 대회가 거듭될수록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오히려 주변의 친구들이 댄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와 대회 참가를 신청한다고 했다. 바다 건너 다른 지역에서도 참가자가 줄을 잇고 있다.

인맥이 늘어나고 자신감이 붙은 댄은 비치발리볼 뿐만 아니라 볼링, 배드민턴, 축구 등 다양한 종목으로 자선 대회 규모를 늘려갔다.

다음달과 7월에는 5회 비치발리볼 대회를, 6월에는 배드민턴 대회를, 12월에는 볼링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 "조의금도 좋지만, 그래서는 고인을 추억할 수 없죠"

대회 규모가 커지고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모아진 성금도 제법 늘어났을 법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도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목적으로 참가해 스포츠를 즐기고, 퓨리를 추억할 수 있길 바라요. 또 참가자들이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라 참가한 이유를 분명히 했으면 해요."

우리의 추모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하는 '조의금' 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다는 댄.

"캐나다에서 자선 대회는 흔히 볼 수 있어요. 저희 어머니도 실천하고 계시고요. 한국의 조의금 문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고인을 추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선 대회는 떠나간 이를 추억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 간 퓨리를 추억하며 모인 성금은 퓨리 자녀의 대학 입학금으로 사용될 것이라 했다. 두 자녀의 고등학교 졸업 시점을 만기로 해 차곡차곡 은행에 쌓이고 있다.

퓨리 비치발리볼 대회를 설명하고 있는 댄. <헤드라인제주>

# "제주 떠날 때까지 계속 도울 겁니다"

퓨리 가족을 돕는 목적으로 시작된 그의 자선 사업은 대회 규모와 함께 대상 또한 확대됐다. 댄은 요즘 제주시 이호동에 거주하고 있는 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이호에 79세 할머니와 어린 두 손자가 살고 있는 가족이 있어요. 할머니가 유일한 부양자인데 월 20만원의 생활자금만을 지원받고 있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이 할머니 가족을 돕고 싶었고, 돕기로 했습니다."

댄은 언제 제주를 떠날지 모르지만, 그가 떠날 때까지 자선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자선 대회의 규모를 더욱 키우고 싶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그리고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비치발리볼을 함께 즐기고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하고 싶으시면 5월27-28일 이호해수욕장으로 오세요."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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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야기 2011-04-27 21:25:37 | 211.***.***.245
새계인제주 잘읽고 있습니다 서구권뿐만 아니라 중화권 유학생들 이야기도 추가됐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