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야! 아버지다!"....AI 복원 영상으로 76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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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야! 아버지다!"....AI 복원 영상으로 76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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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추념식, AI로 복원한 '아버지와의 만남' 영상 눈물바다
화북 곤을동에서 토벌대에 죽임 당한 아버지...70년만에 재회
"꿈에서라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 비록 만질 수는 없지만..."

"옥자야! 아버지다! 오래 기다렸지?"

3일 제주4.3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엄수된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는 추념식 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AI) 기술로 76년 전 아버지의 얼굴을 복원해 딸과 만나는 영상을 선보였다. 

유족들은 크게 흐느꼈고, 참석한 내빈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유족사연 소개의 주인은 4.3 당시 부모, 형제를 모두 잃고 타지에서 힘들게 지내다 20대 때 제주로 돌아온 김옥자 할머니.

AI 기술을 통해 제작한 영상을 통해 76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김옥자 할머니.
AI 기술을 통해 제작한 영상을 통해 76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김옥자 할머니.

김 할머니의 사연은 배우 고두심 씨가 소개하고, 손녀 한은빈 학생의 편지 낭독에 이어 인공지능(AI) 기술로 김옥자 어르신의 아버지를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해 딸과 재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고두심씨가 사연을 소개했다. 

"1948년 4월. 봄내음 가득했던 제주는 점점 찢기는 상처와 고통으로  평온했던 섬 전체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속에 정체된 시간처럼 멈추어 버린 듯 했지만, 가족들은 그저 이 고통의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습니다. 이후, 늦가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옥자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 마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며칠 뒤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를 보살피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신 뒤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이르러서는 당시 옥자 할머니의 어머니가 곤을동 인근 화북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부모를 잃은 언니와 동생마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서천 꽃밭으로 떠났습니다. 다섯 살 나이에 홀로 남겨진 옥자 할머니의 70여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습니다. 4.3의 시련은 이렇게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다섯 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 놓았습니다."

유족사연을 낭독한 김옥자 어르신의 손녀 한은빈 양.
유족사연을 낭독한 김옥자 어르신의 손녀 한은빈 양.
유족사연을 함께 전하고 있는 배우 고두심.
유족사연을 함께 전하고 있는 배우 고두심.

손녀 한은빈 양도 말문을 열었다.

"저는 오늘 할머니의 아버지이며 저에게는 증조 할아버지이신 사무치게 그리운 이를 향해 할머니를 대신해 70년 넘게
가슴에 묻어온 사연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할머니는 새해 달력을 걸 때면 버릇처럼 ‘음력 동짓달 스무날 찾아보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날이 ‘가메기 모른 시껫날’이라고 합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까마귀조차 모르게 지내는 제사라고 하는데 이날이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에요. 아직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저로서도 억울하게 죽은 것도 원통한데 홀로 남겨진 딸자식이 되어 어두운 그늘 속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을 거두지 못합니다."

"1948년 늦가을 어느 날 할머니의 가족들은 곤을동으로 피신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튿날 ‘옥자야. 아부지 집에 강 소 촐 먹이고 금방 돌아오켜.’ 라는 말을 남기고 가시나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이 흐른 봄 어느 날 증조할머니께서도 곤을동을 흐르는 화북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셨습니다. 뒤이어 할머니의 언니와 남동생도 잎새 한 잎 틔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막내 이모 손에서 자라다 열다섯 살이 되자 육지로 올라가 부산과 포항 등지를 전전하며 채소장사, 공장 여공, 식모살이 등 힘겨운 삶을 이어가며 살아남으려고 그리움을 망각 속에 던져버리셨어요."
 
"이처럼 억척스럽게 세월을 버티다 20대에 귀향해서 결혼하고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서 한 가족의 눈물겨운 내력을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너무나 슬픈 사연을 지녔지만 손자들 앞에선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밝고 강인한 분이라고 여겨왔는데요. 저도 한 살 두 살 세상을 배우다 보니 할머니의 미소 뒤에 숨겨진 아픔을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가장 큰 슬픔은 이제는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망각입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꿈에 나왔는데도 나가 몰라봐실지도 모르주.’ 단지 망각뿐일까요. 사실 저희 증조할아버지는 토벌대가 돌로 머리를 내리쳐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합니다. 십여 년 전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할 때 유골이 나타났는데 얼굴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오목한 뒤통수 뼈 한 조각만 있었다고 해요. 할머니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큰 아빠는 ‘저 손바닥만 한 뒤통수 뼈가 어머니가 기억해야 할 아버지 얼굴이고, 제가 기억해야 할 외할아버지 얼굴이구나예.’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얼굴 없는 얼굴이 저 또한 기억해야 할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입니다."

"5년 전이었어요. 제 할머니는 오랫동안 애써 외면했던 곤을동의 잃어버린 마을 터를 70여 년 만에 찾아가셨어요. 말 한마디 없이 한참을 둘러보고 돌아서며 길가에 우뚝 선 소나무 앞에서 ‘저 소낭은 그때도 딱 저만큼 커났져.’라고 하셨대요.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제 할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다섯 살 옥자’에 머물고 있지만 그리움에 사무친 아버지의 얼굴은 그 시간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요."

AI를 통해 복원된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AI를 통해 복원된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옥자야! 아버지다! 오래 기다렸지?"라는 아버지의 말이 애닲게 다가온다. ⓒ헤드라인제주
AI를 통해 복원된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AI를 통해 복원된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이리오렴 우리딸~". ⓒ헤드라인제주

유족 사연이 소개되는 동안 무대 스크린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만남 영상이 펼쳐졌다. 인공지능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복원하고 영상을 제작하게 된 설명도 이어졌다.

"4·3 당시 다섯 살이었던 어린 김옥자 할머니는 한 평생인 76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합니다. 단 한번이라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으셨던 그 간절함에, 이번 추념식에 즈음해 AI기술을 통해 이뤄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만질수는 없지만 복원을 위한 미래세대들의 많은 노력으로 김옥자 할머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만져 볼 수도 안아 볼 수도 없는 아버지 이지만, 그토록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어 했던 다섯 살 어린 소녀는 76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꿈에 그리던 아버지와 짧은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낮 설기 만한 아버지, 복원이 된 모습으로 그 따뜻한 말들을 전해주신 나의 아버지.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 놓은 아버지로 기억될 수 밖에 없지만, 이 짧은 만남은 김옥자 할머니 뿐만이 아닌 제주 4.3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영령들을 위로하고,  미래세대들이 기억하고 공감하기 위한 마음에서부터 제작이 되었습니다.

AI로 복원된 아버지는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유족 여러분들이 그토록 그립고 보고픈 4.3의 희생자 들이십니다. 이제 시렸던 겨울을 이겨낸 따뜻한 4.3의 봄바람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의 씨앗이 널리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유족 증언을 바탕으로 수천장의 인물 사진을 참고해 AI기술로 복원하는 과정을 거쳐 김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고(故) 김병주 씨의 생전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해 이날 딸과 다시 만났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다섯 살이라는 나이만 잊어버리지 않아요. 이 사진이 아버지 얼굴 닮았나요. 아버지 얼굴이면 닮았다고 말 좀 해주세요”라며 깊은 그리움을 표했다.

딥페이스 기술을 활용한 영상으로 재현한 고 김병주 씨는 "옥자야! 아버지다! 오래 기다렸지?", "이리 와.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빠가 한번 안아보게”라며 다정하게 말했다. 객석 맨 앞에 앉아 이 영상을 지켜보던 김옥자 할머니는 오열했다.
 
가수 인순이 씨는 ‘아버지’를 열창하며 유족을 위로하는 무대를 선사했다. 고두심 씨는 “시렸던 겨울을 이겨낸 따뜻한 4·3의 봄바람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의 씨앗이 널리 펼쳐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유족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유족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왼쪽)과 고기동 행안부 차관(가운데)도 함께 유족 사연을 듣고 있다.
3일 거행된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
3일 거행된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
눈물을 흘리고 있는김옥자 할머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김옥자 할머니.
추모공연을 하고 있는 가수 인순이. ⓒ헤드라인제주
추모공연을 하고 있는 가수 인순이.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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