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 모형선택, 충분한 장단점 논의.도민 자기결정권 중요
민선 8기 제주도정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과 관련해 벌써 논란이 분출되고 있다. 도의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현안과 이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와 발전적 대안이 도출되기도 한다.
반면, 이번 논란은 성격이 좀 다르다. 이제 막 새로운 도정이 출범하고, 공론에 부칠 안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터져나온 점은 다소 의외다. 단순히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공론진행 절차와 관련한 일종의 방법론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도의회 임시회에서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김경학 의장까지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여러 가지 지적들이 나왔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사실 큰 줄기는 하나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해 '답을 미리 갖고 가는 것 같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떤 유형의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할 것인지, 모형 선택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짜여진 수순으로 흐를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제주도정은 8월 중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 본격 가동하는 한편,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모형 개발 및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다는 계획이다. 무려 15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용역은 내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세부적 계획 수립 및 제주도에 적용할 새로운 모형 개발을 목표로 한다.
용역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지역.연령별로 300명 규모의 주민참여단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행개위 검토를 거쳐 2024년까지 주민투표를 통해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확정하고, 2026년 지방선거 때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일정을 담은 로드맵은 오영훈 도지사의 공약 내용을 거의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오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2년 내 주민투표를 통해 기초자치단체 도입 여부를 결정하고, 4년 후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제는 행개위 구성 및 용역 착수를 앞둔 시점에서 도정 안팎의 구상이 전해지고 있다는데 있다. 바로 '정해진 답' 논란이다. 이 논란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나온 도지사 구상, 민선 8기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서 진행했던 정책토론에서 촉발됐다.
오영훈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행정구역 재편 방향과 관련해, "과거 4개 시.군의 부활이 아니라 인구 증가 등 변화된 시대에 맞춰 5~6개의 새로운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2개 행정시 체제를 5~6개로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지사의 구상은 제왕적 도지사의 권력 집중 폐단을 막음과 동시에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취지이다. 현재와 같은 도시와 농촌이 결합된 도농복합체제는 맞지 않고, 방대한 제주시권을 분산해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권역을 편성해야 제대로운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핵심공약인 '15분도시 제주'와도 연계된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위원회의 정책토론에서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모형과 관련한 전문가 검토 의견으로 '기관통합형'을 제시했다. '기관통합형'은 법인격 기초자치단체를 신설하되, 기초의회만 주민직선으로 구성하고, 기초자치단체장은 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안이다.
현재 국내 기초자치단체의 일반적 방식인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모두 주민직선으로 선출하는 방식은 '기관대립형'으로 분류했는데, 이 방식보다는 기관통합형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물론 '5~6개 행정체제' 구상이나, '기관통합형' 모형은 민선 8기 도정의 공식적 안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용역을 통해 세밀한 검토가 이뤄지겠지만, 행여나 도지사의 의중으로 전해지면서 용역 결과나 행개위의 논의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도 있다.
도의회에서 '정해놓은 답'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의회의 지적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검토용역과 행개위 논의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제로베이스 상태여야 한다. 특정 안에 대한 별도 검토를 주문하는 과업이 지시되거나, 도지사의 생각이 전해지는 것은 객관성 위협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더욱이 행정체제 개편이나 모형 선택은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제시되고 있는 안 역시 정기능적인 부분이 감안된 결과이지만, 예상되는 한계나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5~6개의 기초자치단체 체제로 개편될 경우 주민들에게 촘촘한 행정서비스를 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제주도의 면적과 인구수 등에 비례해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고, 기초단체 수가 많아지면서 시민들이 오히려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의원 내각제와 유사한 형태의 '기관통합형' 모델에 대해서는 논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제기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첫째, 기초자치단체 도입 논의가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과 주민의 자치권 확대를 위한 것인데, 기관통합형으로 갈 경우 기초의원은 직접 뽑되, 시장은 간선으로 가면서 '반쪽 자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초자치단체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선거과정에서 적격성 등에 대한 검증을 할 기회조차 없는 문제가 있다. 주민들에게는 선거를 통해 '동네 의원' 성격의 기초의원을 뽑을 권한만 주고, 기초의원 중에서 다시 한명을 시장으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주민 자치권의 제약에 다름없다. 시장 선출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주민 설득도 쉽지 않을 것이다.
셋째, 기관통합형 모델의 기초자치단체장 선출방식은 과거 많은 폐단으로 폐지된 간선제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성격은 다르지만, 제주에서도 과거 교육의원 또는 학교운영위원들이 선출하는 교육감 간선제 시행과정에서 많은 폐해와 폐단이 나타나 결국 직선제로 전환한 바 있다. 기초의원에서 시장을 선출하고자 할 경우 이러한 폐해가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처럼 행정구역 설정과 기초자치단체 모델 선정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충분한 검토 속에 결정돼야 할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도민의 선택이다. 도정이 해야 할 일은 행정체제 개편 방향이나 모형에 대한 각각의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도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기초자치단체 도입 논의와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제주특별법 개정 등 법과 제도를 조속히 개선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특정 방향이나 모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철저히 삼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어떤 안이 바람직한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모형의 선택은 철저하게 도민의 자기결정권에 의해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정해놓은 답'으로 짜맞추기는 절대 안될 일이다. <헤드라인제주>
시장은 주민들이 직접 선거라야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