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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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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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기확 /서귀포시 대륜동주민센터

신달자의 수필집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글을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잠깐 소개하며 편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 이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외할머니의 인생을 제 입장에서 요약한다면 석 줄이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살다가 어디서 죽었다.’ 이러면 끝날 것 같은데 저희 외할머니는 굉장히 절박하셨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풀어 쓰면 책 열 권은 나올 것이다. 아니 열권이 뭐냐, 백 권도 나오지……. 쯧쯧…….’ ”

신달자의 위 글귀를 접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누구나 어떤 삶을 살던 결코 평범한 삶은 없다는 것, 외부에서 보면 평범해 보여도 정작 자신은 누구나 특별한 삶을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아들의 돌잔치에 읽었던 “아들에게 주는 편지” 기억하십니까? 그때 당시 글을 쓰고 읽으면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때 저는 백수였잖아요. 저는 아이의 아빠로 백수인 것도 괜찮았지만, 부모님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가 직장을 그만둔 것을 숨기셨죠. 일부분을 잠깐 소개해볼까요?

“이훤아, 아빠의 일생일대 목표는 평범함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풍요가 아닌 우리가 누리며 기뻐할 수 있는 넉넉함으로 살자꾸나. 사랑한다.”

아버지에게 죄송합니다. 고백합니다.

아들이라는 녀석은 서른두 살의 나이에 다섯 번째 직장. 하나뿐인 며느리는 여섯 번째 직장. 부모님이 피땀 흘려 마련해주신 신혼집은 여섯 번의 이사로 야금야금 전세금을 까먹었습니다. 저는 항상 평범함을 바랐지만 계속 그렇지 못했고 그만큼 부모님은 제가 안정이 되지 않음을 속상해 하셨죠.

아버지의 삶은 어떻습니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장남이란 무게를 졌지만 동생 네 명을 시집장가 보내고 자식 두 명도 남부럽지 않게 결혼식을 치러내셨죠. 심지어 3남4녀 중 장녀인 어머니와 결혼하셔서 처갓집 식구들의 대소사도 챙기시고 처제, 처남들을 결혼시키셨죠.

정리하면 몇 줄 되지 않는 아버지의 청년, 중년, 장년시기이지만 이제 와서야 저는 아버지의 삶도 특별했음을 계속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신달자 씨의 외할머니처럼 소설로 쓰면 백권이 나올 것이라는 특별한 인생.

저는 40대에 신춘문예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때 소설은 아버지의 인생을 그린 내용이 될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인생. 나의 아버지의 삶.

홍기확 서귀포시 대륜동주민센터 행정주사보.<헤드라인제주>
우리가 살았던 산동네 237번지. 제 어린시절의 거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이죠. 그 집의 사과나무 두 그루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는 큰 녀석, 다른 하나는 비쩍 마른 작은 녀석이었죠.

사과나무집. 그 때부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넓은 마당에 아버지는 수많은 화초들을 길러내셨죠. 지나가는 사람마다 서울에 이렇게 화초가 많은 예쁜 화단이 있는 집이 있었나 하며 칭찬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저희 세 식구가 제주도에 정착하려고 내려온지 벌써 7개월이 되었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주도로 내려오시면 제일 먼저 저는 마당이 넓은 집을 지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마당에 아버지와 함께 화초를 가꾸려고 합니다. 우리 집의 마당은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이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계십시오.

<홍기확 서귀포시 대륜동주민센터 행정주사보>

#외부원고인 기고는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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