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시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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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1> 김명식 시인

김명식 시인을 아십니까?

김명식 시인은 올해 67세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도인(道人)의 모습입니다. 강원도 화천시 선이골에서 다섯 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선이골은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외진 마을입니다. 시를 쓰고 원초적 우리말 우리글의 얼과 뜻을 되새기면서, 흙을 떠나지 않으려고 우리 토종 씨앗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평화 사상으로 시를 쓰고 명상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봄은』, 『낫과 호미』, 『한락산에 피는 꽃들』 등의 시집을 상재하셨고, 제주4.3자료집인 『제주민중항쟁』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김명식 시인.<헤드라인제주>
김명식의 선생의 시집 『사랑의 깊이』출판기념회가 지난 1월 21일,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문학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이 시집은 문무병 김수열 시인이 주도로 ‘김명식 시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꾸려 십시일반 모금하여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명식 시인이 보내온 262편의 시들 중에서 70편을 고르고 내용에 맞게 4개의 부로 나누는 일을 하였습니다.

제주4.3에서 많은 분들은 현기영 선생을 떠올리지만, 김명식 시인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제주민중항쟁』책자 설명패널에서 ‘1989년 김명식은 국내외 자료들을 묶어 제주민중항쟁 3권을 펴냈다. 김명식은 이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김명식 시인을 처음 만난 건 1988년입니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열린 제주4.3인 강연에서 김명식 시인은 ‘제주4.3은 민중항쟁이다!’라고 당당하게 설파하셨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어느 뒤풀이 장소에서 ‘이제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며 선생님께 「눈이 내리면」이라는 헌시(獻詩)를 바쳤습니다.

눈이 내리면
북풍한설 반동의 눈이 내리면
덮힌 채 감춰진 비린 것들을 생각합니다
누적된 인간의 야만과 폭력의 더께를 생각합니다
온통 추악한 현실의 이면과 해빙(解氷)의 혁명을 생각합니다

눈이 내리면
한 계절이 다하듯 절명의 눈이 내라면
겨울 끝자락 밀어내는 복수초를 생각합니다
선이골 설한(雪寒) 이겨내는 식생들을 생각합니다
우주의 새봄 일구는 생명 품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 졸시, 「눈이 내리면」 중에서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조촐한 뒤풀이 자리에서 선생은 저를 느닷없이 ‘좃밸래기’라고 불렀습니다. 영문을 몰라 멍한 저에게 선생은 저의 시집 『삼돌이네집』 중의 「이쁜 물고기」라는 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른 시집은 잘 안 읽어도 김경훈의 시집은 끝까지 읽었다. 선이골의 우리 아이들도 다 읽었다. 그래서 김경훈의 독자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별로 시답잖은 시입니다만 시 전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여섯 자 길이 정도 되는 대나무를 들고
이쁜 애와 바다낚시에 나섰다
이쁜 애는 금방 낚시에 재미를 붙였다
난생 처음 물고기를 낚은 그 애가 말했다
“어머 어머! 이 고기 너무 이쁘다. 이름이 뭐니?”
“……………”
나는 끝내 작고 이쁜 물고기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이쁜 애는 나에게 바다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 말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쁜 애는 금새 낚시에 싫증을 냈다

그 이쁜 물고기의 이름은 제주말로
‘좃밸래기’였다
- 졸시, 「좃밸래기」 전문

시집 『사랑의 깊이』에는 제주4.3에 대한 것이나 소위 투쟁을 이야기하는 시는 단 한 편도 없습니다. 제목처럼 온통을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코 날 서지 않되 절대 흐릿하지도 않습니다. 사상은 분명하되 그 실천은 아주 다정한 사랑입니다. 김명식 시인은 이 ‘사랑’을 ‘따뜻한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따뜻한 혁명이 제주에서 시작되어 함흥까지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김명식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제물로」라는 시입니다. ‘제물’은 ‘자연’의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바람 불면 바람이 되어
비가 내리면 비가 되어

아, 눈이 내린다
눈이 되어 하얗게 살아도 좋으련

서리가 내리면 서리가 되고
안개 짙어지면 짙은 안개가 되리라
- 김명식 시인의 시 「제물로」 전문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느껴집니다. 바람이 되고 비가 되고 서리가 되고 안개가 되는 것은 결국 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물이라는 지고의 鄯善이자 도(道)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물은 자세를 낮춰 아래로만 흐르지만 온갖 생명을 품으며 거대한 바다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번 분노하면 물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그것이 따뜻한 혁명입니다.

김명식 시인의 바람대로 이 따뜻한 혁명이 한반도와 사해(四海)에 넘쳐들어 온통 사랑으로 충만한 그런 세상이 어서 오기를 희구합니다. 세상의 온 산과 들 골짜기마다에 다시는 슬픔이 드리워지지 않는 그런 역사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런 세상에선 저 또한 김명식 시인을 닮아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서리가 되고 안개가 되어 함께 무위자연하리라 다짐합니다.<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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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11-03-02 15:18:14 | 211.***.***.43
좋은 글, 기다하겠습니다.

시를 읽다 2011-01-27 15:21:03 | 121.***.***.51
4.3사업소 공무원이네? 경력은 민중적 저항시인같아 보이는데.
김명식 시인님의 겨울 눈 시도 참 좋지만, 그시를 맛갈나게 재해석해 써내려간 님의 글이 더 좋구려

너무 좋습니다 2011-01-27 14:46:51 | 59.***.***.81
시사성 글만 접하다 시 문학글을 보니 정말 좋네요
쉬어가는 타임에 읽으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