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人제주] (7)호주 출신 '제주해녀' 세린 히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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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제주] (7)호주 출신 '제주해녀' 세린 히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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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뭔가 굉장한 곳이죠."

바다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같이 살아온 말뜻 그대로의 해녀(海女)가 있다.

그 주인공은 세린 히바드(51, 호주)로, 그는 지난해 9월 제주시 한림읍 주민자치위원회가 설립한 한수풀 해녀학교를 외국인 최초로 졸업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큼 넓고도 깊은 그의 바다사랑 이야기 속으로 '풍덩' 들어가 본다.

24일 오후 찾아간 그의 집은 바다를 사랑하는 그답게 삼양 검은모레해변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제주를 처음 찾은 것은 지난 2004년으로, 제주에 산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웨일스에서 대학을 다닌 기간을 제외하고 한 곳에 이토록 오래 머문 적이 없다는 세린.

"파푸아뉴기니에서 선박 관련 일을 하다가 비자 문제로 떠나야 했을 때 울산에 있던 친구가 말했어요.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쳐보는 게 어떠겠냐고. 그래서 영어교육프로그램인 EPIK 신청을 위해 시드니에 있는 에이전시를 찾아갔죠."

이 때 세린의 취미, 특징 등에 대해 묻던 에이전시는 세린의 근무지를 울산이 아닌 제주로 정했다.

세린이 열대와 같은 뜨거운 날씨, 수영, 스쿠버 다이빙 등 바다와 관련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에이전시의 배려였다.

그렇게 세린은 '1년만 살아보자'는 계획으로 제주에 오게 됐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제주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린 히바드. <헤드라인제주>
# 제주해녀보다 더 해녀다운 호주해녀, 세린

세린은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는 단순한 영어 교사가 아니다.

호주 출신, 어부, 배를 만드는 조선공, 수중고고학 전공, 요트조종자격 보유 등 세린의 인생은 바다에서 시작해 바다와 함께 진행중이다.

그가 처음 해녀를 알게 된 것은 '제주라이프'라는 잡지를 통해서였다.

"제주라이프에서 해녀학교와 해녀에 대해 읽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제가 어부였을 때 저는 바다를 통해 삶을 유지했었고, 해녀들의 삶도 바다에서 건져낸 해산물로 유지되잖아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저는 바다 위에서, 해녀들은 바다 밑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이것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죠."

그는 단걸음에 해녀학교가 문을 연 한림읍 귀덕2리로 찾아갔고, 그 곳에서 '정말 해녀가 되보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해녀학교장인 임명호씨는 그에게 교문을 열어줬다.

해녀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의 화려했던 바다에서의 경력답게 물질에 있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해녀가 해산물을 체취할 때 튜브와 같은 용도로 쓰는 '테왁'을 만들 때 있었던 일이다.

일찍이 세린이 어부일 때 그물 손질하는 법을 익혔던 그에게 줄을 꼬아 그물을 만드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해녀사회에서 그물 손질은 남자들의 일이라 여겨졌대요. 그래서인지 제가 테왁에 쓰일 줄을 별 어려움 없이 꼬니까 해녀들이 모두 놀라던데요."

그는 헤엄, 숨 오래 참기에서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헤엄 시합이 열리면 여성 중에서는 그와 상대할 자가 없어 남성과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귀덕2리 어촌계에서 물질을 가장 오래했던 해녀보다도 물 속에서 숨을 오래 참은 그는 다른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물 속에서 5분 가량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했다.

"저보고 호주 땅 중간쯤에 있는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살라고 하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라며 몸서리 치는 세린. 그가 왜 5년이 넘도록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가에 대한 힌트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 "제주 굿...Good!!"

해마다 입춘이면 나무로 만든 소 '낭쉐'가 제주시청부터 중앙로까지 발길을 옮긴다.

세린은 "와우!"라는 감탄사로 그 장면을 봤던 순간을 대신했다.

"저는 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것은 서양에서 나왔고, 그 모든 것은 서구화될 것'이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점점 서구화되어 가는 제주에서 본 동양적이고 오래된 '굿'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보통사람을 대신해 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니...놀라웠죠."

'굿 매니아' 아니랄까봐 그의 집 곳곳에는 무속 의례에 쓰이는 깃발 형태인 '기메'가 걸려있었다.

가끔 그의 집을 찾는 손님들은 그에게 묻는다고 한다.

"세린은 기독교인 아니었어?"

"그게 뭐 어때서? '기메'는 문화적인거지 종교적인게 아니야."

이번주 금요일에 있을 송당굿과 토요일에 있을 와흘굿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던 그의 모습에서 그가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다른 힌트를 발견했다.

세린 히바드. <헤드라인제주>

# 눈 뜨고는 차마 못 볼 '쓰레기'

그런데 불현듯 그는 제주와의 '이별'을 선포했다. 이유인즉, 그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바다가 오염되는 모습을 더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어 내년에 호주로 돌아간다는 것.

그는 바다, 해녀, 굿만큼이나 '환경'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 일화로, 해녀학교 재학시절 그는 잠수를 하면 항상 테왁 가득 쓰레기를 담은 채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 모습에 다른 학생들은 웃어 넘겼지만 다음주, 그 다음주, 시간이 갈 수록 그에게 호기심을 품게 됐다.

"바다는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바다는 우리가 존중하고, 아끼고, 보살펴야 할 존재예요. 한 점의 쓰레기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우리 바다를 죽이고 있어요."

함부로 버려져 있는 모든 쓰레기에는 '주인'이 있다는 세린.

한여름 밤 가족, 친구, 연인 등은 시원한 밤을 보내기 위해 종종 그의 집 근처인 삼양검은모레해변을 찾는다.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신 뒤 쓰레기만 남겨둔 채 떠나가는 그들을 본 후로 세린은 어설프지만 단호한 말투로 한 마디 건넨다고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 주세요"라고.

"천혜의 환경을 지닌 제주는 한국의 녹색 수도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한 그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합니다"고 덧붙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등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이와 같은 용기를 지닌 사람들은 20년쯤 지나면 영웅이 될 거예요. 사람들이 굳이 용기를 내지 않고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등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들이 하기만 한다면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린이 말한 '용기'가 없다면 앞으로 제주에서 해녀, 바다, 굿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다.

불현듯 '용기있는 자만이 가는 손님 발길을 돌리고 환경을 살린다'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글귀가 떠올랐다. <헤드라인제주> 

[세계人제주] 연재는...
 
 
 
 
   
▲ 조승원 기자

[세계人제주] 연재는 국제자유도시 제주에 거주하거나 제주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그들의 눈에 비친 제주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영어 인터뷰에 서툰 면이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진솔하고 따뜻함이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습니다. 능수능란한 의사소통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가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또 직업전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프로'다운 끼를 발휘하려는 그들의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정말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좋아하고, 제주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외국인 분들을 알고 있는 독자여러분의 추천을 바랍니다.

기획연재 담당기자 조승원(사무실 064-727-1919, 010-239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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