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주민 vs 이주민' 대립프레임 논란...왜 자꾸 구설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마을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는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논란과 관련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행한 발언 때문이다.
원 지사는 경자년 새해를 앞두고 지난 31일 저녁 방송된 KBS '7시 오늘 제주' 인터뷰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갈등문제에 대한 입장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 발언내용은 매우 의아스럽고 황당하다.
"기존 마을주민들은 제기했던 요구가 반영이 되었으니 허가를 빨리 내달라는 입장이고, 특히 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서는 반대하면서 찬반양론이 평행선을 긋고 있어, 행정이 난감한 입장이다"라는 것이 발언이 핵심이다.
단순히 마을 내에서 찬반논란이 벌어지면서 조정이 쉽지 않다는 취지가 아니다.
선흘2리 마을 구성원 중 기존 주민들은 그동안 요구해온 사항들이 반영됐으니 사업허가를 빨리 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는 반면, 이주민들을 중심으로는 반대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논란을 '기존 주민 vs 이주민' 갈등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지사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가뜩이나 주민들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도지사가 나서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을공동체 구성원에서 '기존주민'과 '이주민'의 대립 프레임으로 설정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왜 '기존 주민 vs 이주민' 대립 프레임을 설파하고 나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우리나라 대표적 생태마을로 전 국민적 관심을 받는 마을이었던 선흘2리가 지금의 분란에 휩싸인 것은 불과 1년 전이었다. 지난해 4월 마을회 임시총회에서 결정된 내용은 '동물테마파크 반대'였다.
당시 반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모 이장은 지난해 4~5월 기자회견과 도청 앞 집회 등을 통해 선흘2리 주민들뿐만 아니라 선인학교 학부모들까지 이 사업에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주민'을 중심으로 한 반대가 아니라, 마을회의 공식적 입장이 반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6~7월 정 이장은 반대위를 탈퇴했고, 마을총회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사업자와 상생협약을 체결하면서 지금의 주민분열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지금의 논란을 '기존주민 vs 이주민' 갈등으로 설명했다. 가뜩이나 분열된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선흘2리 주민들이 3일 원 지사의 발언을 두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악의적 프레임'이라고 규탄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둘째, 원 지사의 발언은 제주공동체에서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제주도로 이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제 제주도 공동체에서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어느 지역,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이주민들과 기존 토착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체 문화 관점에서 볼 때 '제주도민'과는 구별되는 '이주민'으로 칭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도지사가 그렇게 부르니 더욱 기가 차다.
셋째, 원 지사의 발언은 현재의 갈등문제를 이주민과 기존주민의 대립으로 설정하면서, 행정당국의 '책임' 부분은 교묘히 덮어버리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원 지사는 '찬반양론이 평행선을 긋고 있어, 행정이 난감한 입장이다'라고 했다. 이주민과 기존주민이 저렇게 싸우니 중재자 내지 심판자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책임 회피를 위한 화법에 다름 아니다. 사실 동물테마파크 논란은 행정당국의 책임이 매우 크다.
그동안 이뤄진 진행과정만 봐도 그렇다.
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은 2005년 제주도 투자진흥지구 1호로 지정됐으나, 업체 부도로 인해 공사가 전면 중단됐고 2015년 투자진흥지구에서 해제됐다. 이 과정에서 공유지 되팔기가 버젓이 행해졌으나 도정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또 이번 사업 재추진 과정에서는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면제되는 의아스러운 일이 있었다. 사업이 중단된지 상당기간이 경과했고, 사업계획도 전면 수정됐음에도 제주도정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면제하고 약식 영향평가인 '재협의' 수준으로 갈음했다.
제주도정은 법대로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노골적 '봐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환경영향평가법 제32조 규정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는 기존 협의 내용에 반영된 사업.시설 규모의 30% 이상 증가되거나 공사가 7년 이상 중지된 후 재개 등에 해당될 경우 재협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업의 최초 공사 중단일은 2011년 1월 14일, 사업자가 기반공사와 부지 정리를 목적으로 재착공을 통보한 날은 2017년 12월18일이다. '7년' 경과를 불과 한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재착공 통보가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 절차는 '면제'로 귀결됐다.
뿐만이 아니다. 환경영향평가법에서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당시 '예측하지 못한 사정이 발생해 주변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재평가를 하고 그에 따른 행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제주도정은 막무가내였다.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도지사가 환경영향평가 재이행을 요구할 수 있었으나, 제주도정은 '재이행을 하지 않아도 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방어적 논리만 폈다. 제주도정에 있어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한낱 면책 조항에 지나지 않았다. 환경단체 등에서 수 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모두 '문제 없음'으로 일축했다.
제주도정의 이해 못할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의 찬반 논쟁 흐름에 제주도정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제주도정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의심 살만한 일은 분명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레가 바로 지난해 7월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특위의 제주동물테마파크 현장 방문시 제주도청 담당국장이 공개적으로 '마을회의 입장은 찬성'이라고 밝힌 일이다. 마을회에서 4월 임시총회에서 '반대'를 공식입장으로 채택했고, 5~6월 주민들과 학부모들의 반대집회는 물론, 전국 시민사회에서 반대 여론이 확산되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담당국장의 발언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령 자신이 개인적 루트를 통해 알아본 정보였다 하더라도, 공식 입장인 것처럼 포장하며 그것도 도의회 답변 자리에서 발언한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담당국장은 사실과 다른 뜬금없는 발언을 한 후, 어떤 해명도 없었다.
여기에 의구심을 증폭시킨 것은 담당국장의 발언이 있기 전인 5월 말 원 지사가 반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을 이장을 사업자와 만났던 사실이 최근 확인되면서 논란을 샀던 일이다. 원 지사는 공식 면담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으나, 정작 담당부서에서는 당시 배석했으면서도 잘 몰랐던 일인 것처럼 주장하다가 뒤늦게 말을 번복했다.
사실상 6개월간 '쉬쉬' 해왔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뭔가 떳떳하지 못한 면담이었을 것이란 추론을 갖게 한다. 일부 반대주민들이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는 과정에 제주도정에서 뭔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영향평가 절차 생략, 담당국장의 거짓 발언, 도지사와 이장의 비밀회동 논란, 그리고 새해벽두 등장한 '기존 주민 vs 이주민' 프레임. 이 일련의 일들이 모두 우연히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다. 분명한 것은 제주도정이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논란의 심판자 내지 조정자로서가 아니라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이번 원 지사의 '이주민' 프레임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