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좌우(左右)가 아니라 시비(是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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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좌우(左右)가 아니라 시비(是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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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6> 민주화 바람과 민중의 각성

인터넷으로 ‘오마이뉴스’나 ‘한겨레’를 보는 저에게, 일전에 어느 지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왜 왼쪽만 치우치게 보느냐? ‘조선일보’ 같은 오른쪽 것들도 같이 봐야 균형된 시각을 갖게 되지 않느냐?”고요.

저는 그에게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문제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의 시각이다. 나는 ‘바른’ 언론을 보고싶은 것이다!”고요.

물론 왼쪽이나 오른쪽에도 모두 옳고 그름이 있을 겁니다. 어느 한쪽만 항상 옳고 다른 쪽은 항상 그르다는 것은 선악(善惡)의 아전인수(我田引水)일 뿐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도 어느 한켠에 노무현이 있다면, 다른 한켠에 이명박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 속에도 모두 옳고 그름이 있거늘, 어찌 이 사회를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라는 천박한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계는 왼쪽 정부든 오른쪽 정부든 집권세력을 향한 민중들의 거센 저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의 불길이 이집트로 옮겨 붙어 마침내 무바라크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렸습니다.

리비아에서도 내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카다피 친위병력이 반군을 공격하는 등 교전이 격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 사이로 도미노처럼 봉홧불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오래된 물은 썩기 마련이듯, 오래된 권력도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1990년에 소련이 망하기 전에 고르바쵸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걸 들고 나왔었습니다. 그건 결과적으로 보면 그 전의 사회주의는 ‘짐승의 얼굴’을 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당의 관료화와 부패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인 인민들을 궁지로 몰아넣게 되고 결국 인민들에 의해서 체제가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옳은 일을 옳다고 하는 것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

그것이 의(義)다
그 중간은 없다

옳은 일을 옳지 않게 하는 것들에 맞서
옳지 않은 일을 옳게 만들어간 죽음들
그것이 4·3이다

그래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의(義)다
- 졸시, 「의(義)」 전문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은 결국 의(義)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진보건 보수건 간에 그 구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누가 정말로 의로운 일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 판단기준이 될 뿐입니다. ‘의로운 일’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회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공자(孔子)는 70에 이르러서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했노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하고 싶은대로 행하여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았다’라는 뜻인데요. 이는 사리사욕을 다 물리쳐서 공리(公利), 즉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헌신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종심소욕’만 해버리는 것을 우리는 ‘독재’라고 부릅니다. 그런 권력을 우리는 ‘독재권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권력들은 모두 무너졌고, 지금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생목숨 다섯이나 앗아가고 유족들의 절박한 외침마저 뭉개버리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의 짐승 들에게, 나는 횃불의 호흡으로 분명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저지른 불의를 용서치 않으리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아 배를 더 불리고 있는 얼굴 가죽 개가죽 같은 놈들에게, 나는 광장의 외침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저지른 불의를 우리가 응징하리라!”
 

‘설총비결’에 ‘무례무의(無禮無義) 인도절(人道絶)하니 가련창생(可憐蒼生) 자진멸(自盡滅)이라’, ‘예나 의도 없이 인륜의 도가 다 끊어져 가련한 백성들 저 스스롤 죽이는구나’라고 한 것이 바로 오 늘을 두고 이르는 말이니

오늘, 축배를 들며 날뛰는 이들이여,
그러나, 오늘 너희들의 탐욕과 탕진의 웃음이 훗날 오물이 되어 너희 얼굴에 되떨어지리라
백성과 하늘을 거역하는 자에게 이미 저주는 시작되었나니
“정의의 이름으로 너흴 용서치 않으리라!”

한 사람의 저주가 다른 한 사람의 가슴에 가서 송곳으로 박히듯,
그 박힌 자리에서 우리들 죽음을 딛고 생명의 물결이 소생하리니
만인의 원망은 만인을 일으켜 정의가 넘쳐나게 하리라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그런 세상 이루어지리라
- 졸시, 「정의의 이름으로 너흴 용서치 않으리라!」 전문


가장 정의롭지 못한 어떤 권력은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슬로건을 걸었었고, 가장 공정하지 못한 어떤 권력은 ‘공정사회’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곧 불의이고 공정은 곧 부정(不正)일 뿐입니다. 불의와 부정이라는 알맹이의 껍질에 정의와 공정이라는 사탕발림한 것입니다.

구린 데가 많은 권력일수록 포장을 좋아하고, 불안한 정권일수록 성벽을 높이 쌓습니다. 그것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진보든 보수든 모두 같습니다. 무력의 채찍을 본(本)으로 하든 금력의 당근을 본으로 하든, 사람(人)과 백성(民)을 본으로 하지 않는 정권은 모두 똑같습니다.

지금 세계는 사람을 본으로 하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몇 년 사이 민주주의가 많이 후퇴되었다는 이 나라에도 어디선가 나비 날갯짓 하나가 바람을 불러 모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민중의 각성이라는 그 바람 말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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